선교랑동와이공정빈지묘갈명宣敎郞東窩李公廷彬之墓碣銘 묘비명 묘비문
公의 諱는 廷彬이고 字는 晦卿이며 永川李氏로 高麗 領同正 李磚이 시조이시다 네 번 傳하여 諱 暉는 神虎衛保勝郎將上護軍이시며 또 네 번을 傳하여 諱麗는 高麗國이 끝남을 當하여 國號로 이름하고 隱遁不仕하다 세월이 지나 高祖 諱世憲은 贈左承旨이며 曾祖 諱汝諧는 贈吏曹參判이고 祖 諱 光俊은 江原道觀察使로 재직하고 이후 嘉善大夫禮曹參判兼 同知經筵義禁府 春秋館 成均館事 五衛都總府副總管 추증되셨으며 監司公派祖이시다
考 諱民寏은 1600년 文科別試에 及第한 뒤 藝文館檢閱 待敎 奉敎를 거쳐 世子侍講院司書 司諫院正言 兵曹佐郞 弘文館修撰에 이어 平安道巡撫 兼 暗行御史를 맡았으며 외직으로는 忠原縣監 永川郡守 東萊府使를 다시 掌隷院判決事 戶曹參議 刑曹參判을 거쳐 慶州府尹으로 벼슬길을 마감하였으며 뒤에 吏曹判書에 추증되고 哲宗 辛酉에 忠簡公 諡號敎旨를 받았으며 저서로 建州見聞錄과 紫巖集이 있다
公은 1617년 光海丁巳 十月 初八日生이고 1668년 顯宗戊申 十月 三十日卒하셨으며 享年52세이다 宣敎郞 東窩公은 총명과 예지가 絶倫하고 孝誠과 友愛가 出衆하며 어린 시절부터 많은 書籍을 두루 섭렵하였다 더욱 性理學에 着意發得하고 밝힌바 많았으나 은덕을 本然之性으로 삼아 세상에 드러내지 아니하고 벼슬에의 恩寵을 받지 않으니 모두가 이를 哀惜히 여겼다 셋째兄 漫翁公이 祭文에 至極한 好友에 온門中이 感服하고 뛰어난 文才에 온 同輩들이 推重하네라고 하였고 妹婿 宋世彬 역시 그 祭文에 詩禮를 듣고 배워 聖賢의 道를 希求하였네 文行과 德行은 鄕郡에 두드러졌고 學問은 經書와 史書를 達通하셨도다라고 극찬하였다
公은 仁慈하고 벗을 사귀기를 心誠으로 다함을 좋아하여 자기를 경계하는 바탕으로 삼았다 포항 寶鏡寺 계곡을 당시의 名士 文人墨客과 유람하고 명사위인들 수십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바위벽에 公의 존함과 진실한 벗 忠友라는 뜻 깊은 두 글자를 암각하니 오늘날까지 전한다
公은 본래 겸손하여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號를 東窩라고 했으며 저술한 居憂錄 永慕錄 關東錄등 五代孫 志發이 遺事를 지어 家藏되어 전하다가 아쉽게도 유실되어 더 이상 볼 수 없어 안타깝고 한스럽다
公의 配位 宜人 豊山柳氏는 參奉 元慶의 따님이고 後配 靑松沈氏는 通德郞贈戶曹判書 儒訓의 따님이다 슬하에 장남 諱 重炯은 宣務郞이고 配는 務安朴氏 文度의 따님이며 3남5녀이니 장남 諱 秀遠은 遺稿가 있으며 配는 星山李氏 翊夏의 따님이며 後配는 達城徐氏의 漢錫따님이며 2남 1녀이다 차남 諱 秀埈은 配가 豊川任氏 世章의 따님이며 1남2녀이다 삼남 諱 秀泰는 1728년 의병장으로 추천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配는 安東權氏 郡守 聖矩 따님이며 3남3녀이고 장남 諱 猶龍은 장손으로 出后하였다 5녀의 壻 崔夏 瑜 忠州人이며 1남이고 壻 郭在三은 玄風人으로 2남1녀이며 壻 沈遇良은 靑松人 府使이며 1남이며 壻 呂鳳擧는 星山人 進士이고 1남2녀이며 壻 洪命甲은 缶林人이며 4남이다
公의 차남은 諱 重熤은 通德郞이고 配는 慶州崔氏 宣敎郞 翊南의 따님이며 1남3녀이고 장남 諱 秀載는 1728년 從兄 石圃公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였으며 配는 順天金氏 南柱의 따님이며 1남 3녀이다 3녀의 壻 李元晳은 星州人이며 1남3녀이며 壻 許軾은 陽川人이며 2남이고 壻 朴春元은 順天人이며 1남2녀이다
公의 2녀 壻 崔慶濡는 慶州人이며 2남3녀이고 公의 壻 崔慶漫은 慶州人이며 2남1녀이다
이후 세월이 흘러 오늘 날 公의 후손은 내외 현손을 합하여 수백여인이 살고 있으며 모두가 公의 음덕으로 공직사직 사업경제 문화예술 사회전반에 걸쳐 각 분야에서 두루두루 실력을 발휘하며 각기 맡은바 책임을 즐겁게 다하는 훌륭한 인재들로 빛나는 芝蘭玉樹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公의 음덕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후손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며 자손들이 멋있게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현상을 서술하게 된 것은 公이 逝世하신지 三白餘年이 지난 오늘에 후손들이 뜻을 모아 飛鳳山 자락에 蘇轍이 侍郞벼슬때 잠시 머물다 간 名地인 蘇侍郞골에 公과 公의 枝下 자손 神位를 함께 移葬하여 先祖共同墓域을 造成하기로 하고 새로 碑를 세워 銘文을 남기고자 하신다면서 외가로부터 묘비의 문장과 붓글씨를 청탁 받고 詩書畵 三絶에 겨우 흉내만 내는 졸렬한 학업이지만 외손으로 거절하지를 못하고 감히 銘을 짓는다
- 중략-
檀紀 4353년 閏4月 玄外孫 安東人 白雲金大顯 삼가 짓고쓰다
※ 비석 비문 묘비문 묘비명 묘갈명 묘석 묘비 돌 비문작성 비문짓기 비문쓰기 비문찬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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