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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당선생 서세 500주년 연시례 재현행사 2017년9월 7일

백운선사 김대현 2017. 9. 10. 06:39

 

 

 

 

 

 

 

 

 

 

 

 

 

 

 

 

♧보백당 김계행(17대조부님)선생

서세 500 주년 延諡禮를 오랜준비

끝에 안동문화원과 함께 열었다.

 

조선 국왕은 종친이나 문무관 중에서 정2품 이상의 실직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인품이나 학식과 충절 등을 고려해 시호를 내렸다. 보백당 김계행 선생 서세 500주년을 기념해 임금이 내린 시호를 맞이하는 ‘연시례’ 재현 행사가 7일 열렸다.

 

묵계서원 ‘연시시 일기’ 참고

 

170여명 선시단 행렬 진행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묵계서원. 취타대를 앞세우고 포졸과 부사, 각부현령, 유림단, 풍물패 등 170여 명 규모의 예조에서 나온 선시단이 묵계서원 진도문을 지나 보백당 김계행 선행의 후손 앞에 도착한다. 곧바로 임금이 내린 시호(諡號) 교지(敎旨)를 맞는 문중 후손과 지방 유림, 지역 관원들은 이를 경축하는 ‘연시례’(延諡禮)를 연다.

 

안동문화원은 7일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1431∼1517) 선생 서세 500주년을 기념해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임금이 내린 시호를 맞는 ‘연시례’ 재현 행사를 마련했다.

 

시호(諡號)는 종친이나 문무관(文武官) 중에서 정2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사람이 죽으면 생전의 인품·학식·충절 등을 고려해 국왕이 내리는 호(號)를 말한다. 훗날 범위가 확대돼 정3품 이상이나 유현(儒賢), 절신(節臣) 등에도 시호를 내렸다.

 

이날의 연시례 재현은 지난 2015년 보백당 종가의 유물에서 1868년 당시 묵계서원에서 봉행됐던 ‘보백당선생 연시시 일기’(寶白堂先生 延諡時 日記)가 발견되면서 재현할 수 있게 됐다. 일기에는 시호를 청하는 내용과 서원과 사당의 수리, 행사 전반에 대한 논의 내용 등 연시례에 관한 일련의 과정들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날 행사는 오전 10시 묵계리 마을회관부터 묵계서원까지 170여 명의 ‘선시단 시가행렬’이 진행되며 시작됐다. 예조에서 선시단이 묵계서원 진도문을 지나면서 ‘시호맞이’ 행사를 했고 곧이어 서제가 올려졌다.

 

서제는 연시례 행사를 무사히 마치도록 천지신명에게 고하는 의식으로 여기에는 권영세 안동시장과 김성진 안동시의회 의장, 이재춘 문화원장이 초헌과 아헌, 종헌으로 각각 참여했다.

 

서제가 끝나고 사당인 ‘창덕사’에서 선생의 신위를 모시고 나오는 ‘출주’ 행사와 함께 묵계서원 입교당에서 본격적인 연시례 행사가 열렸다. 모시고 나온 신주는 위판(位版)을 개제(改題)해 봉아하는 등의 의식을 행한뒤 다시 사당에 안치됐다.

 

연시례에는 가야금 병창, 민요 등 식전행사와 안동시장이 부사로, 읍·면·동장이 각부 현령으로 참여했다. 부사와 선두예관(당상관)은 말을 타고 각부 현령을 포함한 참여자들은 관복과 예복을 입는 등 생동감 있게 ‘연시례’를 재현했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전국적으로 시호를 받은 유명인물은 많지만 연시행사를 정리해 보존한 자료는 거의 없는 실정으로 ‘보백당선생 연시시 일기’가 발견되면서 자칫 사라질 수 있었던 전통문화 재현이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사라져 가는 소중한 우리 전통문화를 발굴`재현해 계승하고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계행 선생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이고 시호는 정헌(定獻)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대사간과 대사헌, 부제학 등 3사의 청요직을 지낸 청백리로 1859년(철종 10년) 이조판서, 양관 대제학으로 추증됐다.

 

‘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 ‘우리 집의 보물은 오직 청백뿐이다’라는 유훈을 남겨 청백리의 표상으로 추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