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경향미절 傾嚮彌切

백운선사 김대현 2021. 7. 21. 17:07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경향미절 傾嚮彌切

기울 경향할 향두루 미끊을 절

 

한쪽으로 치우침이 매우 지나치다 또는 쫒아가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 문신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 1620~1674)의 시문집인 목재선생문집(木齋先生文集) 권사(卷四)에 이봉언 선에게 답(答李奉彥 瑄)편지에서 발췌하다

 

遠惟庚熱 靜中 원유경열 정중

學履加衛 傾嚮彌切 학리가위 경향미절

區區 此間厄運 不幸遭金甥 夭折之慘 구구 차간액운 불행조김생 요절지참

世間多少慘喪 豈有此比 세간다소참상 기유차비

愴悼不可言 창도불가언

前者得書 辱詢句法 전자득서 욕순구법

東國文章家 於句法 全然放倒 동국문장가 어구법 전연방도

雖僕亦何由曉得耶 수복역하유효득야

自年前始知尋討句法 謂之有所得 則未也 자년전시지심토구법 위지유소득 즉미야

大抵作文句法 猶治軍 先結伍法 대저작문구법 유치군 선결오법

伍法不明 雖百萬兵 無所用之 오법불명 수백만병 무소용지

作文無句法 則雖有大海 飜瀾之勢 작문무구법 즉수유대해 번란지세

不滿 識者之一哂 無足觀也已 불만 식자지일신 무족관야이

第大海飜瀾之筆力 要從句法中推演出 제대해번란지필력 요종구법중추연출

吾東不曉句法 故亦 無此大家數 理勢然也 오동불효구법 고역 무차대가수 리세연야

大抵累字爲句 一字二字可至十餘字爲句 대저루자위구 일자이자가지십여자위구

其中字意緊重者 撥轉居之句首 기중자의긴중자 발전거지구수

聯接字 要不錯先後 련접자 요불착선후

至句末字照應 然後方爲一句 지구말자조응 연후방위일구

如漢書上帝朕本親郊 여한서상제짐본친교

而后土不得親祀 이후토부득친사

可見下字有先後處也 가견하자유선후처야

 

멀리서 생각하니 삼복더위에 조용하게 지내는 가운데

학업에 더하여 매진하신다니 쫓아가는 그리운 마음 더욱 진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저는 요즘 액운이 겹쳐 불행히도 생질 김이 요절하는 비통함을 당했습니다

세간에는 참상이 다소 있지만 어찌 여기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슬프고 서글픔이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지난번에 보내준 편지에서 욕되게도 문장의 구법을 물으셨는데

동국 청구의 문장가들은 구법에서 완전히 마음을 놓아 버렸기에

비록 저 또한 어떻게 일찍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해전부터 비로소 구법을 구하여 찾을 줄 안 터라 터득한바가 있다고 아직은 할 수 없습니다

대저 작문의 구법은 군사를 다스림과 같아 먼저 속오법을 결정하는 것처럼

속오법이 명확하지 않으면 비록 백만 병사라도 쓰일 바가 없습니다만

작문에 구법이 없으면 즉 비록 큰 바다를 뒤집는 파도의 큰 힘이 있더라도

식자의 한바탕 비웃음도 채우지 못하여 족히 볼 것이 없을 뿐입니다

다만 큰 바다를 뒤집는 필력은 구법을 따르는 가운데서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동방은 구법을 일찍 알지 못하여 그런고로 이런 대가가 없어 이치나 형세가 그러합니다

대저 몇 글자를 묶어 구가 되는데 한 자 두 자에서 10여 자에 이르기까지 구가 됩니다

그 가운데에 글자의 뜻이 긴요한 것은 뽑아서 구의 머리 부분에 두고

이어지는 글자는 선후가 뒤섞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구의 끝에 글자가 서로 잘 조응한 연후에 방이 한 구가 됩니다

한서에 같이 짐은 상제에게 본래 친히 하늘에 지내는 교 제사를 지내지만

땅의 신 후토에는 친히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에서

가히 글자가 선후의 자리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 문신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 1620~1674)선생이 손아래 후학인 허직 이선(虛直 李瑄1640~1687)과 주고받은 받은 편지중 이봉언 선에게 답(答李奉彥 瑄)편지이다

 

허직 이선(虛直 李瑄1640~1687)선생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봉언(奉彦) 이성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영기이다 아버지는 이시항이며 어머니는 이환(李煥)의 딸이다 현종 7(1666) 사마시에 합격하고 숙종 5(1679) 광흥창봉사에 임명되었다 문장이 명백하고 전아하였으며 성격은 강직하였다 봉사 재직시 관곡을 녹봉으로 나누어주고 남은 것은 관례에 따라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경재 중에서 달라는 이가 있으면 응하기도 하였는데 말을 듣지 않아 파직되었다 1683(숙종 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벼슬이 좌랑에 이르렀다

목재 홍여하선생은 본관이 부계(缶溪)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외 산택재(山澤齋) 홍경삼(洪景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덕록(洪德祿)이고 아버지는 대사간 홍호(洪鎬)이며 어머니는 고종후(高從厚)의 딸이다 효종 5(1654) 진사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이 되고 이어 대교 봉교 등을 역임하고 정언에 이르렀으며 그 후로 세월이 흘러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이어 사간에 이르렀다 1689년 부제학에 추증되고 상주의 근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목재집이 있고 편서로는 주역구결 의례고증 사서발범구결 휘찬여사 동사제강 해동성원 경서해의 등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한쪽으로 치우침이 매우 지나치다 라고 일반적으로 해석이 가능도 하지만 또한 어느 일정한 사람을 향해서 쫒아가는 그립고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라고 절절한 표현을 나타낼 수도 있는 오늘의 성어 경향미절(傾嚮彌切)과 같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가 필자에게도 있으면 시골에 묻혀 초야와 더불어 사는 삶을 편지에라도 한통 써서 적적한 마음을 토하건만 그 대신에 화선지에 그 마음을 담아 경향미절을 휘호하고 성어문집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612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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