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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차문화에 대한 소고

백운선사 김대현 2017. 6. 15. 11:24

 

고려시대 차 문화에 대한 소고

 

 

시냇가의 차잎은 이른봄에 싹트게 하니

황금같은 노란 움 눈속에 자라났네

남쪽 사람은 맹수도 두렵지 않아

험난함을 무릅쓰고 칡넝쿨 휘어잡고

간신히 채취하여 불에 말려 단차 만드니

( 이규보선생시 유차중에서 절임 )

 

고려개국 공신의 후손이고 오백년 종가집꽃차를 이야기하다보니 우연히 고려시대 차문화가 궁금하다

 

차문화가 언제부터시작일까 누가 묻는다면

거침없이 단군 조선개국이전부터 일것이라 믿는다

 

다만 필자는

책자와 언론 인터넷매체에 알려진 고려시대 차문화를 살짝 엿보고자 한다

 

차문화가 융성하다라고 이야기하는 고려시대는 태조 왕건황제때부터 이미 차를 다루는 관리 감독청이 있었으며 사헌부 관리들이 법을 집행하기전 공정하고 바른판정을 위해 반드시 차모임을 한후 판결에 임했다는 기록이 있다

 

관리감독청 다방 차군사 다원 차전과 차방을 두었으며 고관 대작들부터 일반시민이 이용할수 있는 차방까지 있었으니 차문화가 대단했음을 알수 있다

송나라 사신 정극인이 지은 고려도경에 연꽃모양의 은뚜껑으로 만들어진 차잔을 사용하고 오악과 사신들에게 차를 다 돌린 후 격식에 따라 모두 동시에 차를 마셨으며 고려사람들은 차를 끓여내는데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기록으로 전한다

 

고려시대의 차는 단차 뇌원차 엽차( 녹차) 말차(가루차)등이 있었으며 특히 떡차 형식의 단단한 단차로 만들어서 이 단차를 부셔서 끓는 물에 휘젖거나 찻사발에 점다하여 차유로 마시거나 끓여 걸러내어 맑은 차탕으로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인터넷및 고려시대차문화에서 발췌 인용함]

 

차를 마신다고

차를 덖는다고

다완을 빚는다고

도인이 되겠는가

 

인의예지신 오행을 행하고 덕을 쌓아야 도인 선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암투병중 창가 침상에 앉아 모은 글과 생각을 정리 하다

 

 

사진: 고려시대 햇무리굽다원[ 출처 인터넷더블어님자료]

 

자료출처 [ 일월산약초골 종가집꽃차 김대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