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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단군세기 서문(檀君世紀 序文)

백운선사 김대현 2018. 6. 3. 10:33

단군세기 서문(檀君世紀 序文)  


爲國之道莫先於士氣莫先於史學何也史學不明則士氣不振士氣不振則國本搖矣政法歧矣 蓋史學之法可貶者貶可褒者褒衡量人物論診時像莫非標準萬世者也斯民之生厥惟久矣創世條序亦加訂證國與史竝存人與政俱擧皆自我所先所重者也

위국지도막선어사기막선어사학하야사학부명칙사기불진사기불진칙국본요의정법기의 개사학지법가폄자폄가포자포형량인물논진시상막비표준만세자야사민지생궐유구의창세조서역가정증국여사병존인여정구거개자아소선소중자야

나라를 위하는 길에, 사기(士氣)보다 먼저인 것이 없고, 사학(史學)을 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으니 이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학(史學)이 밝지 아니하면 사기(士氣)를 펼 수 없고, 사기를 펼 수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사(政事)와 법령(法令)이 갈라진다.

무릇 사학(史學)의 법(法)은 내칠 것은 뿌리치고, 좋은 일은 기리며, 사람과 사물을 저울질하고, 시대와 상황을 논하고 진단함이 만세(萬世)의 표준이 아니 되는 것이 없다.

이 나라의 백성이 살아온 지도 오래이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질서가 잡히고 또한 더하고 고치고 증명하여 왔다. 나라는 역사와 더불어 존재하며 사람은 정사(政事)와 더불어 갖춰지고 드러나는 것이니 모두가 자아(自我)에 우선해야 하며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바이다.

 

 

嗚呼政猶器人猶道器可離道而存乎國猶形史猶魂形可失魂而保乎竝修道器者我也俱衍形魂者亦我也故天下萬事先在知我也然則其欲知我自何而始乎夫三神一體之道在大圓一之義造化之神降爲我性敎化之神降爲我命治化之神降爲我情故惟人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

오호정유기인유도기가리도이존호국유형사유혼형가실혼이보호병수도기자아야구연형혼자역아야고천하만사선재지아야연칙기욕지아자하이시호부삼신일체지도재대원일지의조화지신강위아성교화지신강위아명치화지신강위아정고유인위최귀최존어만물자야

아아! 정치(政治)는 마치 기(器)와 같은 것이며, 사람은 마치 도(道)와 같은 것 같은데 기(器)가 도(道)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나라는 마치 형(形)과 같고 역사는 마치 혼(魂)과 같은데 형(形)이 혼(魂)을 잃어버리고 보존할 수 있겠는가?

도(道)와 기(器)를 더불어 닦는 것은 나 자신이다.

형(形)과 혼(魂)을 더불어 갖추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런 까닭에 천하의 모든 일은 나 자신을 먼저 아는 데에 있다.

그러한 즉 나를 알고자 하면 스스로 어찌 시작해야 하겠는가?

무릇 삼신(三神)의 도(道)는 대원일(大圓一)의 뜻에 있다.

조화(造化)의 신(神)이 내려 나의 성(性)을 이루고,

교화(敎化)의 신(神)이 내려 나의 명(命)이 되며,

치화(治化)의 신(神)이 내려 나의 정(精)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사람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고 가장 높은 것이다.

 

 

夫性者神之根也神本於性而性未是神也氣之炯炯不昧者乃眞性也是以神不離氣氣不離神吾身之神與氣合而後吾身之性與命可見矣性不離命命不離性吾身之性與命合而後吾身未始神之性未始氣之命可見矣故其性之靈覺也與天神同其源其命之現生也與山川同其氣其情之永續也與蒼生同其業也乃執一而含三會三而歸一者是也故定心不變謂之眞我神通萬變謂之一神眞我一神攸居之宮也知此眞源依法修行吉祥自臻光明恒照此乃天人相與之際緣執三神戒盟而始能歸于一者也故性命情之無機三神一體之上帝也與宇宙萬物混然同體與心氣身無跡而長存感息觸之無機桓因主祖也與世界萬邦一施而同樂與天地人無爲而自化也

부성자신지근야신본어성이성미시신야기지형형부매자내진성야시이신부리기기부리신오신지신여기합이후오신지성여명가견의성부리명명부리성오신지성여명합이후오신미시신지성미시기지명가견의고기성지영각야여천신동기원기명지현생야여산천동기기기정지영속야여창생동기업야내집일이함삼회삼이귀일자시야고정심부변위지진아신통만변위지일신진아일신유거지궁야지차진원의법수행길상자진광명항조차내천인상여지제연집삼신계맹이시능귀우일자야고성명정지무기삼신일체지상제야여우주만물혼연동체여심기신무적이장존감식촉지무기환인주조야여세계만방일시이동락여천지인무위이자화야

무릇 성(性)이라는 것은 신(神)의 뿌리다.

그렇지만 신(神)이 성(性)의 근본이 되는 것이지만 성(性)이 신(神)자체는 아니다.

기(氣)가 밝게 빛나며 어둡지 않을 때에 진성(眞性)이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는 것이며, 기(氣)도 또한 신(神)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내 몸 안에 있는 신(神)이 기(氣)와 더불어 합하여진 뒤에라야 내 몸 안의 성(性)과 더불어 명(命)을 볼 수 있다.

성(性)은 명(命)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명(命)도 성(性)을 떠나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내 몸 안의 성(性)과 명(命)이 더불어 합하여진 뒤에라야 내 몸이 신(神)의 성(性)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기(氣)의 명(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성(性)의 영각(靈覺)이 천신(天神)과 더불어 그 근원(根源)을 같이 하는 것이며, 명(命)의 현생(現生)은 산천(山川)과 더불어 그 기(氣)를 같이 하는 것이며, 정(精)의 영속(永續)은 창생(蒼生)과 더불어 그 업(業)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를 잡으면 셋이 포함되어 있고(執一含三),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간다(會三歸一)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정심(定心)하여 바뀌지 않을 때 이를 진아(眞我)라고 하며, 신통(神通)하여 무엇으로든 바뀔 수 있을 때 이를 일신(一神)이라고 하니, 진아(眞我)는 일신(一神)과 거처하는 궁(宮)이다.

이 참된 근원을 알고 올바르게 수행(修行)을 하면 길하고 상서로운 것이 저절로 이르며 밝은 빛이 항상 비추게 된다.

이는 곧 하늘과 사람이 서로 어울림으로 인하여 삼신(三神)의 계율(戒律)에 맹서(盟誓)를 할 때 비로소 능히 하나라는 것에 돌아가는 것이다.

성(性), 명(命), 정(精)의 무기(無機)가 삼신일체(三神一體)의 하느님이며, 우주 만물과 더불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는 것이며, 심(心), 기(氣), 신(身)과 더불어 자취 없이 오래토록 존재하는 것이며, 감(感)식(息), 촉(觸)의 무기(無機)는 한인(桓因)의 주된 조상(祖上)이다.

세계만방과 더불어 하나로 베풀고 동락(同樂)하는 것이며, 천(天), 지(地), 인(人)과 더불어 무위(無爲)하여 스스로 변화되는 것이다.

 

 

是故其欲立敎者須先立自我革形者須先革無形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嗚呼痛矣夫餘無夫餘之道然後漢人入夫餘也高麗無高麗之道然後蒙古入高麗也若其時之制先而夫餘有夫餘之道則漢人歸其漢也高麗有高麗之道則蒙古歸其蒙古也嗚呼痛矣向年潛淸輩之邪論陰與百鬼夜行以男生發岐之逆心相應而合勢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形魂全滅之時乎

시고기욕립교자수선립자아혁형자수선혁무형차내지아구독지일도야오호통의부여무부여지도연후한인입부여야고려무고려지도연후몽고입고려야약기시지제선이부여유부여지도칙한인귀기한야고려유고려지도칙몽고귀기몽고야오호통의향년잠청배지사론음여백귀야행이남생발기지역심상응이합세위국자억하자안어도기양상형혼전멸지시호

이런 까닭에 가르침을 세우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자아(自我)를 세우고, 형(形)을 바꾸려 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무형(無形)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알고 홀로 하나의 도(道)를 구하는 것이다.

오호라 슬프다!

부여(夫餘)에 부여의 도(道)가 없어서 훗날 한(漢)나라 사람들이 부여에 쳐들어왔고, 고리(高麗)는 고리의 도(道)가 없으니 후에 몽고(蒙古)가 고리에 쳐들어왔다.

만약 그때에 이보다 먼저 부여의 도(道)가 있었다면 한(漢)나라 사람들은 자기의 한나라로 돌아갔을 것이며, 고리(高麗)에 고리의 도(道)가 있었다면 몽고가 자기의 몽고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 슬프도다!

전에 오잠이나 유청신과 같은 무리들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은 마치 몰래 음흉한 귀신들이 밤에 돌아다니는 것과 같으며, 남생(男生)이나 발기(發岐)의 역심(逆心)은 서로 응하여 세력을 합한 것과 같다. 나라를 구한다는 자가 어찌 도(道)와 기(器)를 다 잃고 형(形)과 혼(魂)을 모두 없어져버린 때를 당하여 그 것을 뿌리치고 스스로 평안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 오잠 : 고리(高麗) 충렬왕(1236~1308)때의 간신. 충렬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왕의 총애를 미끼로 전국의 명기를 불러들여 임금이 노래와 춤을 즐기게 하였다. 임금의 부자를 이간시키고 어진 신하를 모함하였다. 충렬왕 10년(1323)에 고리의 국호를 없애고 원나라와 똑같이 다스릴 것을 원나라에 청하기도 하였다.

유청신 : 고리(高麗) 충렬왕(1236~1308)때의 간신. 어려서 몽골어를 배워 여러 차례 원나라를 다녀오는 등 외교의 솜씨가 뛰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 충숙왕 때 임금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심양왕 고를 고리의 임금 자리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미는 등 역적행위를 하다가 발각되자 귀국하지 못하고 원나라에서 죽었다.

남생: 고구리(高句麗) 보장왕 대 연개소문의 맏아들로 당나라에 망명하여 고구려 정벌의 향도가 됨으로서 고구려 멸망의 결정적 반역 행위를 한 고구려의 반역자.

발기: 고구리(高句麗) 8대 신대왕 백고의 아들. 9대 고국천왕의 동생. 10대산상왕 연우의 형에 해당한다. 형 고국천왕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동생 연우가 우왕후와 짜고 왕위를 계승하자 반란을 일으키나 막내 동생 계수에게 평정되어 자살함.

 

 

今外人干涉之政去益滋甚讓位重祚任渠弄擅如我大臣者徒束手而無策何也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一大臣之能姑無可求之爲言而乃擧國之人皆救國自期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方可得以言救國也然則救國何在哉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神市開天自有其統國因統而立民因統而興史學豈不重歟書此樂爲檀君世紀序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紅杏村 書于江都之海雲堂

금외인간섭지정거익자심양위중조임거농천여아대신자도속수이무책하야국무사이형실혼지고야일대신지능고무가구지위언이내거국지인개구국자기이구기소이위유익어구국연후방가득이언구국야연칙구국하재재향소위국유사이형유혼야신시개천자유기통국인통이립민인통이흥사학기불중여서차락위단군세기서상지십이년계묘십월삼일홍행촌 서우강도지해운당

금일에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간섭하는 정치는 갈수록 심해져서, 임금 자리를 물려주고 다시 세우는 일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고 있는데 우리 대신(大臣)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 안에 역사가 없고 형(形)이 혼(魂)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개 대신(大臣)의 능력으로는 나라를 가히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나, 바로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다 스스로 나라를 구할 것을 다짐하고 그 할 바를 찾을 때에 나라를 구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고, 그런 후에야 비로소 나라를 구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나라에는 역사가 있고 형(形)은 혼(魂)이 있어야만 한다.

신시개천(神市開天)은 스스로 그 정통(正統)이 있었고 나라가 정통(正統)에 의해 세워졌으며 백성들은 그 정통에 의해 흥하게 되는 것이니 사학(史學)이 어찌 중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즐거움에 단군세기의 서문을 쓴다.

공민왕12년(1363) 계묘년 10월3일 홍행촌(紅杏村)의 늙은이가 강도(江都)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다.

행촌(杏村) 이암(李嵒, 1296-1364)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檀君世紀) 』

 

 

평양직할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단군능(북한국보문화유물제174호)

47명의 단군중 5번째 구을(丘乙)단군임금의 무덤

 

※ 초대단군 왕검 재위93년 : 신묘(辛卯,BC.2370)년 5월2일 인시에 태어남. 갑진(甲辰,BC.2357)년

"왕검의 아버지는 단웅檀雄이고 어머니는 웅熊씨의 왕녀이며 신묘(辛卯,BC.2370)년 5월2일 인시에 밝달나무(檀木)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 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했다. 14세 되던 갑진(甲辰,BC.2357)년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함을 듣고 그로써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의 다스림을 대행 하도록 하였다.

 

무진년(戊辰年 BC.2333) 제요도당(帝堯陶唐)때에 단국檀局으로부터 아사달의 檀木단목의 터에 이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九桓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엇다. 이를 단군 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帝位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 까지 사셨다.

 

무진 원년(BC.2333) 바야흐러 신시(神市)의 다스림이 시작 되었을 때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들이 산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살며 풀잎으로 옷을 해입고 맨발로 다녔다. 개천 1565년 상월上月3일에 이르러 신인 왕검이 오가(五加)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잡았다.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님께 제사를 올렸는데 지극한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진 마음을 함께 갖추었더라.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어 그 다스림이 높고 크고 또 맹렬하였으며 구환(九桓)의 백성들이 모두 마음으로 따르며 천제의 화신이라 하고 그를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신시神市의 옛 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고조선)이라 이름했다.

※ 2세 단군 부루 재위 58년 : 신축 원년(辛丑,BC2240)

※ 3세 단군 가륵 재위 45년 : 기해 원년(己亥,BC2182) 5월

※ 4세 단군 오사구 재위 38년 : 갑신 원년(BC 2137)

※ 5세 단군 구을 재위 16년 : 임술 원년(BC 2099)

※ 6세 단군 달문 재위 36년 : 무진 원년(BC 2083) 임자 35년

※ 7세 단군 한율 재위 54년 : 갑인 원년(BC 2047) 정미 54년

※ 8세 단군 우서한 재위 8년 : 무신 원년(BC 1993)

※ 9세 단군 아슬 재위 35년 : 병진 원년(BC 1985)

※ 10세 단군 노을 재위 59년 : 신묘 원년(BC 1950)

※ 11세 단군 도해 재위 57년 : 경인 원년(BC 1891)

※ 12세 단군 아한 재위 52년 : 정해 원년(BC 1834) 무자 2년

※ 13세 단군 홀달(혹은 대음달) 재위 61년 : 기묘 원년(BC 1782)갑오 16년

※ 14세 단군 고불 재위 60년 : 경진 원년(BC 1721)을유 6년

※ 15세 단군 대음(혹은 후흘달) 재위 51년 : 경진 원년(BC 1661)

※ 16세 단군 위나 재위 58년 : 신미 원년(BC 1610)무술 28년

※ 17세 단군 여을 재위 68년 : 기사 원년(己巳,BC 1552)갑신 52년

※ 18세 단군 동엄 재위 49년 : 정축 원년(BC 1484) 병신 20년

※ 19세 단군 구모소 재위 55년 : 병인 원년(BC 1435)기축 24년

※ 20세 단군 고흘 재위 43년 : 신유 원년(BC 1380) 신미 11년

※ 21세 단군 소태 재위 52년 : 갑진 원년(BC 1337)

※ 22세 단군 색불루 재위 48년 : 병신 원년(BC 1285)

※ 23세 단군 아흘 재위 76년 : 갑신 원년(BC 1237)

※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 경자 원년(BC 1161)

※ 25세 단군 솔나 재위 88년 : 신해 원년(BC 1150)

※ 26세 단군 추로 재위 65년 : 기묘 원년(BC 1062)

※ 27세 단군 두밀 재위 26년 : 갑신 원년(BC 997)

※ 28세 단군 해모 재위 28년 : 경술 원년(BC 971)

※ 29세 단군 마휴 재위 34년 : 무인 원년(BC 943)

※ 30세 단군 내휴 재위 35년

※ 31세 단군 등올 재위 30년 : 정해 원년(BC 874)

※ 32세 단군 추밀 재위 30년 : 임자 원년(BC 849)

※ 33세 단군 감물 재위 24년 : 임오 원년(BC 819)

※ 34세 단군 오루문 재위 23년 : 병오 원년(BC 795)

※ 35세 단군 사벌 재위 68년 : 기사 원년(BC 772)

※ 36세 단군 매륵 재위 58년 : 정축 원년(BC 704)

※ 37세 단군 마물 재위 56년 : 을해 원년(BC 646)

※ 38세 단군 다물 재위 45년 : 신미 원년(BC 590)

※ 39세 단군 두홀 재위 36년 : 병진 원년(BC 545)

※ 40세 단군 달음 재위 18년 : 임진 원년(BC 509)

※ 41세 단군 음차 재위 20년 : 경술 원년(BC491)

※ 42세 단군 을우지 재위 10년 : 경오 원년(BC 471)

※ 43세 단군 물리 재위 36년 : 경진 원년(BC 461)

※ 44세 단군 구물 재위 29년 : 병진 원년(BC 425)

※ 45세 단군 여루 재위 55년 : 을유 원년(BC 396)

※ 46세 단군 보을 재위 46년 : 경진 원년(BC 341)

※ 47세 단군 고열가 재위 58년 : 병진 원년(BC 295) : 기묘 14년 단군왕검의 묘를 백악산에 세우고 유사에게 명을 내려 사철 이에 제 지내게 하고 단제께서는 1년에 한번 친히 제사를 지냈다.

    


단군왕검의 능( 檀君王儉陵:尧陵)

단웅천왕(檀雄天王)

Beijiaocun 北郊村(북교촌) 야오두구 린펀시 산시 중국

산서성 임분시(临汾市):린펀시 중국 산시 야오두 구,CN

요임금 무덤 동쪽 에 조성되어 있는 가짜 요능.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 7Km 남쪽에 있는 부춘향 월천장촌 남쪽에 있는 곡림사에 있는 진짜 요임금의 무덤

 

북한 강동군(江東郡)에서 발굴한 대박산(大朴山) 단군릉(檀君陵)

 

 

尧陵

尧陵 [15]

尧陵位于尧都区大阳镇,世称“神林”,高50米,周长300米,在已知的三皇五帝陵寝中最为巍峨高大,为第六批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尧陵四面环山绕水,古有“山环水绕土一丘”之说。尧陵祠宇,相传为唐初所建,金、元、明、清均有修建,现存明嘉靖十八年所立的尧陵碑上刻绘着尧陵全貌图。 [15] 


출처 : 晛溪亭
글쓴이 : 晛溪亭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