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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원뉴스】【단독】하늘밑 첫동네 안동 길안 대곡2리 검단마을 영모정 옆에 육각정 영모쉼터 준공박운락 기자

백운선사 김대현 2023. 4. 30. 07:28

【씨원뉴스】【단독】하늘밑 첫동네 안동 길안 대곡2리 검단마을 영모정 옆에 육각정 영모쉼터 준공
박운락 기자

영모정, 아직도 버스가 없는 첩첩두메산골 명도정의의 선비골 검단마을

【안동씨원뉴스】안동시 길안면 대곡2리 261의 장소에 정헌공진사공파 18대종손 김대현씨의 부지사용 승낙과 안동시의 재정적 지원으로 농촌마을 삶의 향상을 위한 육각정 영모쉼터를 4월 26일 준공했다는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농촌마을 삶의 향상을 위한 육각정 영모쉼터 검단마을 어르신들 (사진=박운락)
농촌마을 삶의 향상을 위한 육각정 영모쉼터 검단마을 어르신들 (사진=박운락)
이곳 검단마을에는 아담하면서 한눈으로 보아도 청빈을 표상으로 삼으며 도를 삶의 지표로 삼고 수행하면서도 전혀 내색치않고 또 전형적인 이름이 알려지지않은 조용한 은둔의 선비가 도학을 궁구하던 마을임을 느낄 수가 있는 규모가 작으면서 소소하고 외부로 봐도 검소한 영모정이라는 재실이 있다.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 (사진=박운락)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 (사진=박운락)
이 영모정은 '하늘밑 첫동네'라 일컫는 아직도 버스가 다니지 못하는 첩첩두메산골 오지인 이곳에는 청백리이신 조선초기의 인물이신 안동김씨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선생의 자손 중 도학을 즐기셨던 둘째 아들 선재(仙齋) 김극의(金克義1459~1517)선생의 자손들이 거처하면서 삼성신(환인 환웅 환검(단군)의 홍익이화정신을 실천하고 선재선생의 정의명도(正義明道)의 유훈을 받들어 모시고자 지은 재실 겸 정자이다.

이 정자는 최초의 건축년도는 알 수 없으나 원래는 길안면 대곡2리 274번지에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한국전쟁때 소실되고 전쟁이후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여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 (사진=박운락)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 (사진=박운락)
이 정자는 선재선생의 후손 약 500여호의 자손과 검단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모티 가라골 한실 개맬 등 이웃 마을 대곡1, 2리에 사는 주민들의 정신적 청빈한 도를 실현한 선비마을을 대변하는 건축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건축물인 영모정은 본기자에겐 현외가집안으로 평소에 존경하던 곳이요. 이들에겐 정신적인 문화재이다.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 (사진=박운락)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 (사진=박운락)
벽포 조희룡선생의 글에 의하면 "진사공 선재 김극의선생은 대사성 보백당선생의 자제 오형제중 차남으로, 모는 증 정부인 의령남씨로 지평 상치의 딸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이며 학문을 부지런히 하여 진사과에 합격하고 문장학행으로 후진을 敎導(교도)하는 등 世間(세간)에 名聲(명성)을 떨쳤고 文科(문과)에는 應試(응시)하지 않았다.

天性(천성)이 淸廉潔白(청렴결백)하고 剛毅剛直(강의강직)하여 外物(외물)에는 추호도 動搖(동요)되는 일이 없는 분이었다.

이때 정쟁으로 執權(집권) 간소배들의 소행이 사화를 일으킴에 부 보백당선생의 獄苦(옥고)와 연산군의 暴政(폭정)에 困難(곤란)을 겪으면서 보백당선생의 辭職(사직)으로 草野(초야)로 家率(가솔)을 데리고 移徙(이사)하여 學文(학문)을 探究(탐구)하며 가난하나 草野(초야)에서 歲月(세월)을 보내며 자제들에게 이르기를 "士夫(男子의 美稱)가 成均 進士(성균진사)만은 아니 할 수 없으나 大科(文武科)(대과)에는 참여치 말라"고 말씀 하셨다.

선생은 보백당선생의 육훈 "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오가무보물 보물유청백) 우리집안엔 보물이 없다 보물은 오로지 청백뿐이다."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시다.

아쉽게도 부 보백당선생보다 먼저 세상을 뜨셨다.

死後 地方 儒生(사호 지방 유생)들이 그의 德望(덕망)을 追慕(추모)하여 和不遷(화불천)으로 지정 봉제를 지내오던 중 조선말기 당파의 혼란과 폭정에 의해 길안 내급지역에 있었던 宗宅(종택)과 정자가 소실되고 종가는 현 영양 입암으로 이주하고 대곡리 제궁골에 있었던 齋室(재실)과 관리주택 등 모든 遺物(유물)이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되고 그 후 1959년 안동 길안 대곡 검단에 선생을 추모하는 영모정을 새로 세우고 지금 후손에게는 口傳(구전)으로 전하는 것을 胄孫(주손)이 忌日(기일)을 맞이하여 家不遷位(가불천위)로 봉사하고 있다."라고 했다.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과 새로지은 영모쉼터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 (사진=박운락)
검단마을 선재 김극의선생을 추모 제향 영모정과 새로지은 영모쉼터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 (사진=박운락)
아름답게 준공된 육각정 영모쉼터를 보고 정헌공진사공파 18대 종손 김대현(씨원뉴스 대표)씨는 "마을 어르신들이 시원하게 쉴 수 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건강에도 유익하고 또 영모정과 너무나 잘 어울리게 멋있는 육각정을 짓게 재정지원해 준 안동시와 권기창시장께 감사하다"라고 전했다.

또 대곡2리 김정동 이장은 영모정의 수리와 보수 그리고 낡은 담장 교체 설치를 지난해 안동시에서 약속하고도 영모정이 개인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사유재산이라고 예정된 재정지원을 철회한 시에 섭섭함을 전하며 이름있는 문중이 아닌 이상 거의 사유재산으로 되어 있는 안동지역 뿐만이 아닌 전국적인 현상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고 강하게 유감을 표하며 다시한번 재정지원을 해 줄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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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하늘밑 첫동네 안동 길안 대곡2리 검단마을 영모정 옆에 육각정 영모쉼터 준공 - 씨원뉴

【안동씨원뉴스】안동시 길안면 대곡2리 261의 장소에 정헌공진사공파 18대종손 김대현씨의 부지사용 승낙과 안동시의 재정적 지원으로 농촌마을 삶의 향상을 위한 육각정 영모쉼터를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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