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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석학자들이 단군의 역사가 역사임을 입증하는 자료

백운선사 김대현 2018. 6. 12. 14:24

경축 북미정상회담 2018년6월12일 싱가폴



외국의 석학자들이 단군의 역사가 역사임을 입증하는 자료

 

 

 

                                                           일월산인 김대현 2018612


 

단군의 역사 조선의 역사 우리의 역사를 우리는 잘 모르는데 외국의 석학들은 우리의 역사를 꿰뚫어보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우리가 살아도 되나 싶다

멀쩡한 역사를 신화요 전설로 치부하고 교육을 받았으니 어찌 우리가 우리라고 할 수 있나

해방이후 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소위 위정자란 놈들과 사학자들은 자기들 뱃속 기름기만 채웠지 백성이 알아야 할 역사는 내팽겨 버렸다

지금 이 시각에도 소위 보수라는 가짜 놈들은 왜놈들 앞잡이 노릇하며 민족을 노예로 만들려고 혈안이다 경기도 유망한 정치인을 개잡듯 잡아놓고 왜놈앞잡이 남 뭐시기 밀자고 난리다 왜 오늘 날 이와 같이 사회 혼란이 자초 되었나 바로 일본식민지하에서 벗어나도 벗어나질 못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속국이 된 남쪽이다 보니 어쩌랴

오늘 북미회담 잘 성사되고 우리도 작전권 가져오고 그리고 남북이 평화롭게 자유왕래하고 어느 시점에 통일이 되길 바라면서 남북이 통일 된 이후에도 이와 같은 역사의 혼란은 없애야 하겠기에 필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지거리를 하면서 글로서 남긴다

 

아래는 외국의 석학자들이 단군의 역사가 역사임을 입증하는 자료들이다

 

(1) 서량지(徐亮之) 교수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

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학자 서량지가 한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 교수는중국사 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10월초판)에서 이렇게 썼다.

“4천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 (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그는 또 이렇게 썼다.

"()과 주()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

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서량지 교수는 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달력)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나라, ()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 가 없다.”

역법은 사실 동이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세석기(細石器) 문화를 지닌 부족이 최초로 거주한 곳은,

지금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근처이다.

곧 중국의 전설 가운데 등장하는 염제신농 등의 본래 종족이 있던

곳이다.”“동방 인종의 오행(五行) 관념은 원래 동북아에서 창시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東方人種之五行觀念 原係創始于東北亞洲).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

 

(2-1) 장개석(蔣介石)


중국 총통 장개석(1887-1995)은 이시형 상해 임시정부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고향이 옛날 백제(*대륙백제) 땅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선조는 대륙의 주인이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소?

그러니 나라를 빼앗겼지."

 

(2-2) 임어당(林語堂)

 

중국이 자랑하는 20세기 최대 학자 임어당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 박사 .

중국의 석학이요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임어당(1895-1976)

만난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여담으로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안호상 :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한글전용에 문제가 많다."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임어당 :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자는 당신네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를 우리가 빌려 쓰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습니까?"

무안을 당한 안호상 박사는

이후 평생을 민족사관에 매진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3) 왕동령(王棟齡)

중국 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지방은 본래 묘족(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史記) (五帝本紀).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

그는 이런 글도 썼다.

 

“4천 년 전 () 현재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묘족(苗族)은 오늘날 현재 중국변방에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묘족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치우천황을 기리는 정통 구전가요가

올라 있어 원문과 함께 번역해 실린다.

 

蚩尤挽歌 ( 苗族 傳統 口傳 歌謠 묘족 전통 구전 가요)

千古奇才橫空賢 천고기재 횡공현

可堪倂論炎黃間 가감병론 염황간

五兵刑法君始点 오병형법 군시점

九黎生氣衝云天 구려생기 충운천

席卷中原華夏聯 석권중원 하화련

血染江河五千年 혈염강하 오천년

英名不因濯鹿敗 영명불인 탁록패

老黑石山百花鮮 노흑석산 백화선

 

천고세월 뛰어난 기재 영웅치우 천왕은

염제황제 더불어도 가히 론함에 비하랴

오병기와 형법을 만드신 임금이시여

구리백성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남도다

염황제 화하연맹 중원쳐서 석권하니

오천년 강물결은 붉은피로 물들었네

영웅성함 탁록패배 원인은 아니지만

늙었어도 흑석산 백화들은 뚜렷하도다


예기(禮記)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묘족은 구려(九黎)의 후예다. 구려를 묘() 민족의 선조로 삼고 있다.”

; 苗九黎之後 九黎爲苗民先祖 [禮記]

 

(4) 임혜상(林惠詳) 교수

홍콩대학의 임혜상(林惠詳) 교수는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맹자가 말하기를()임금은 동이(東夷) 사람이다라고 하였으니,

오늘날 우리가 순()임금은 은()나라 사람의 조상임을 추측하여 알 수 있다.

은나라 사람이 바로 동이인데 동방에서 흥기(興起)하였다."

(흥기 ; 흥하여 일어나다)

 

(5)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그의 저서고사변(古史辯), 1927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현조(玄鳥)는 은()나라 사람과 동이(東夷)

조상신이다.”; 玄鳥是殷人東夷的祖先神.

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

태호(太昊), 제준(帝俊), 제곡(), 제순(帝舜), 소호(小昊),

그리고 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6) 대만학자 노간(勞幹)

대만학자 노간(勞幹)은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들은 동방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자와 인()자는 통용된다. ()자와 인()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먼저 ()을 사용하였다고 하면 후대에 와서 서방에서 기원한 부족들이 이를 빌어 전 인류의 명사로 쓴 것이다. 만일 이()가 먼저 문화를 이루어 앞서 나갔다면, 이 사람들이 먼저 사용한 사람 인()자는 전 인류적인 이름에 들 것이다.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려 쓴 것이다.”

 

(7) 중국학자 필장박(畢長樸)

중국의 학자 필장박은중국인종북래설(中國人種北來說)에서 중국의 고대 문헌, 고고학적 유물, 언어적 특성, 인류학적 특성, 민속 문화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중국 인종의 시원(始原)이 북방의 시베리아 일대와 동북아 쪽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필장박은 위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 문자(文字)가 만들어진 것은 필시 중국 중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계통은 멀리 추운 북방에서 시작된 것을 계승한 것이다.” ;

中國文字之制作 必非始于中國中原而係遠始于寒的北方.

 

(8) 일본학자 고꾜 야스히꼬(吾鄕淸彦)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이렇게 썼다.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9)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나 주()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리고,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10) 소련의 역사학자 시로코고르프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

중국사에서 이렇게 썼다.

"BC 3,000년경 동이족은 이미 황하 양자강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

 



桓因桓雄檀君天帝 太三聖祖崇敎 國宗院

환인환웅단군천제 태삼성조숭교 국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