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白雲의 囊裏談筆] 산고수장 山高水長

백운선사 김대현 2020. 6. 20. 12:21

백운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白雲囊裏談筆]

 

산고수장 山高水長

뫼 산높을 고물 수긴 장

 

높은 산 길게 흘러가는 강물

덕행이나 지조가 높고 깨끗함을 높은 산과 길게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신라 중기의 학자인 고운 최치원(崔致遠857?)선생의 시문집 고운집(孤雲集)에 고운선생사적 사적(孤雲先生事蹟事蹟) 청학동비명(靑鶴洞碑銘) 정두경(鄭斗卿)편에서 발췌하다

 

余濠梁秋水 憶莊生之胷襟 여호량추수 억장생지흉금

穎川淸風 夢許由之氣像 영천청풍 몽허유지기상

讀劉向傳 誦屈原辭 독류향전 송굴원사

石門嵯峨撫 古今而長歎 석문차아무 고금이장탄

雙溪淸淺 訪隱逸之遺蹤 쌍계청천 방은일지유종

先生之風 山高水長 선생지풍 산고수장

 

나는 호량의 가을 물고기의 즐거움에서 장자일생의 흉금을 떠올려보며

영천의 맑은 바람 청풍에서 허유의 기상 같은 꿈을 꾼다

유향의 열선전(列仙傳)을 읽고 굴원의 어부사(漁父辭)를 외우고

높고 우뚝 솟은 석문에서 고금을 어루만지며 장탄식한다

맑고 얕은 쌍계에서 은일의 남은 발자취를 찾으니

선생의 풍도는 높은 산과 같고 끝없이 길게 흐르는 강물 같으시다

 

위의 글은 지리산 청학동에 조선 후기 문인 학자인 동명 정두경(東溟 鄭斗卿 15971673)선생이 쓴 청학동비명(靑鶴洞碑銘)문에 있는 내용이다

 

이 비의 서두에서 왈약고려백제신라 국수일역 월유봉래 영주방장 산칙삼신 적기부상 독생기이 오호 단목지진인일거 공여태백지산 동명지린마불반 지유조천지석 상고지현풍이원 장생지비계무전(曰若高麗百濟新羅 國雖一域 粤有蓬萊 瀛洲方丈 山則三神 積氣扶桑 篤生奇異 嗚呼 檀木之眞人一去 空餘太白之山 東明之麟馬不返 只有朝天之石 上古之玄風已遠 長生之秘計無傳)

고려 백제 신라로 말하면 나라는 비록 한 지역에 있으면서 이에 봉래 영주 방장의 산이 있는데 즉 삼신(환인 환웅 환검)산이다 그 삼신의 기운이 부상에 모여서 기걸한 인물이 특출하게 태어나셨다 오호라 단목(檀木)의 진인(眞人) 단군이 한번 떠나자 태백산만 공허하게 남게 되고 동명의 인마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다만 조천석만 남아 있다 상고의 현풍은 이미 멀어지고 장생의 비결은 전해질 수 없게 되었다

 

이 비의 서두에 우리의 상고사에 대한 간략한 이런 짧은 문장도 우리의 문헌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다행히 동명 정두경선생이 남긴 글에서는 삼신이나 단군등 상고사에 대한 글들이 짧지만 다수 전하는 글들이 있다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유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고사는 요사하다 괴이하다라고하여 남은 기록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는 어리석은 우를 한두 번이 아닌 수없이 반복하여 우리의 상고사를 우리가 우리 스스로 우리의 조상들이 불살라 버렸으니 또 고려황조의 황제들의 영정과 고려실록을 조선조에서 불살라버리고 고려실록을 조선조에서 다시 쓰게 만들었으니 세계 최고 과학적인 문자기호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마저도 명으로 고려황제영정을 불살라 버렸다는 기록들이 엄연히 남아 있는 이런 기록들을 보고 필자는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얼빠진 짓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유교의 훌륭한 면도 받아들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천부경을 더 연구하고 학문으로 승화 시키고 홍범 홍익의 정신 삼성신의 얼 우리의 상고사를 함께 펼쳤다면 아마 우리나라는 전 세계를 이끌어가는 선도국이 되고도 남았을 것을...지금이라도 절대 늦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면서 산은 높고 물은 하염없이 길게 흐른다

 

산고수장(山高水長) 문창후 고운선생의 발자취에 누가 아니 되게 필자의 졸필로 산고수장(山高水長)에 먹물을 묻힌다

 

환기 9217년 윤428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