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력혈경침 瀝血罄忱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0. 14. 12:27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력혈경침 瀝血罄忱

거를 력피 혈빌 경정성 침

 

피를 토하면서까지 온 정성을 다 쏟다

 

이 성어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 학자인 문정공(文正公)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1570~1652)선생의 시문집인 청음선생집(淸陰先生集) 권십오(卷十五)에 월정 윤근수선생에 대한 제문(月汀先生祭文)에서 발췌하다

 

昔者明廟親政 朝廷更化 석자명묘친정 조정경화

求賢好士之誠 甚於飢渴 구현호사지성 심어기갈

先生以英特超邁之資 선생이영특초매지자

弱齡擢科 荐被寵渥 약령탁과 천피총악

淸途華貫 靡不歷敭 청도화관 미불력양

聲華籍甚 翕然同稱 성화적심 흡연동칭

一時儕流 咸謂先生之才不可及也 일시제류 함위선생지재불가급야

此先生立朝之始非耶 차선생립조지시비야

宣祖繼聖 將多前功 선조계성 장다전공

痛璿系受誣之未辨 통선계수무지미변

至誠奮發 期於湔滌 지성분발 기어전척

先生受命 三入帝庭 선생수명 삼입제정

瀝血罄忱 敷對明允 력혈경침 부대명윤

剗僞剔訛 昭揭祕典 잔위척와 소게비전

神人以豫 倫紀以正 신인이예 륜기이정

 

예전에 명종께서 친히 정사를 다스릴 때 조정을 다시 새롭게 변화시키면서

어진 사람과 훌륭한 선비를 구하는 그 정성이 목말라 물을 찾는 것보다 더 심하셨다

선생은 영특하고 띄어나고 탁월한 자질로

이른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임금의 사랑과 은총을 많이 입으셨다

깨끗하고 영예로운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이력이 없었으며

영화로운 기록들이 더욱 많이 들려 모두들 칭찬하셨다

이 당시의 시류는 모두 다 선생의 재주에 미칠 수 없다고 말하셨다

이것이 선생께서 조정에 나가신 일이 처음이 아니겠습니까

선조께서 성상의 자리를 계승하고 장차 전대의 임금들보다 더 많은 공을 세우고자 하셨을 때

왕실의 계보가 업신여김을 당한 것을 분변하지 못함을 애통하게 여겨

정성을 다해 분발하여 과오를 깨끗하게 씻어 낼 것을 기약하셨으며

선생은 왕명을 받아 황제의 조정에 세 번이나 들어가시고

피를 토하면서까지 온 정성을 다 쏟아서 분명하고 진실되게 펼쳐 응대하여

거짓은 깎아 내고 그릇된 것은 바르게 하여 경전은 더욱 밝게 걸어두셨으니

신인은 즐거워하고 윤리와 기강은 바르게 섰습니다

 

이 성어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 학자인 문정공(文正公)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1570~1652)선생이 월정 윤근수선생의 기일을 맞아 쓴 제문을 발췌하였는데 문정(文貞)공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1537~1616)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며 시인이고 화가이시며 영의정 윤두수의 동생이고 김덕수(金德秀)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1558년 과거 급제 후 승정원 주서 춘추관 기사관 연천군수 등을 지내다가 1563년 이량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이듬해 윤원형 심통원 등의 상소로 복직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575년의 을해당론으로 동인 서인으로 분당될 때 이황에게서 수학한 동문들을 따르지 않고 서인이 되었으며 1589년 공조참판으로 종계변무사에 임명되어 명나라에 파견 명나라 공식 기록인 대명회통의 이인임의 아들로 된 이성계의 가계를 이자춘의 아들로 수정하게 하는데 공헌을 하였으며 1590년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1등관에 녹훈되고 해평부원군으로 봉해지고 1606년 선조가 죽자 왕의 묘호를 조()로 칭할 것을 주장하여 이를 실현시켰으며 1604년에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한 공로로 호성공신2등관에 책록되고 사후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고 광해군을 수행한 공로로 위성원종공신 3등에 추록되었으며 왕조실록에 실린 선생의 인물평을 보면 사람됨이 청백간솔(淸白簡率) 문장고아(文章古雅) 필법준경(筆法遵勁) 예원(藝苑)의 종장(宗匠)이다.”라고 평한 것으로 보아 대단하신 분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저서로는 사서토석(四書吐釋) 월정집 마한사초 조경창수 등이 있고 향토지인 송도지 수필집인 월정만필 등을 남겼으며 향년 80세를 누리셨다 [위키백과 참조]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상황에 따른 유연한 판단력과 결정도 필요하지만 도리를 중히 여기며 이를 현실 정치로 끝까지 실현하고자 하는 강직함도 필요하다 병자호란 때 화의를 주장한 주화파에 맞서 의리를 중요시하며 끝까지 척화를 내세워 절개를 굳건히 지킨 이가 있으니 문정(文正)공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 1570~1652)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는 돈녕부도정 김극효(金克孝)이고 형은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이다 어린 시절 윤근수(尹根壽)에게서 수학하였으며 선생에 대한 이력은 너무나 유명하신 분이시니 다음 기회에 또 소개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음백과 참조]

 

피를 토하면서까지 온 정성을 다 쏟다 라는 오늘의 성어 력혈경침(瀝血罄忱)은 가슴에 담아 놓고 새기면서 자기가 처한 일에 지극정성 력혈경침(瀝血罄忱)의 정신으로 임한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리라 믿는다 끝까지 부단히 노력하고 궁구하고 생각해내고 피를 토하면서 까지 그 일을 관철 시키고자 한다면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흔히들 조금만 시도해 보곤 스스로 아니된다라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섣불리 포기보다는 애초에 예리하게 판단하여 아닌 길이라면 들어서지를 말고 시작했다면 력혈경침(瀝血罄忱)의 자세로 임하라고 권하고 싶은 좋은 말을 성어문집에 담으며 휘호로 기록에 남긴다

 

 

桓紀 9217828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