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억절부과 抑絶浮誇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9. 09:3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억절부과 抑絶浮誇

누를 억끊을 절뜰 부자랑할 과

 

허황하게 자랑함을 억눌러 끊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고 학자였던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선생의 시문집인 기언(記言)권오(卷之五)에 박덕일이 문학을 논한 일에 대한 답장 경진년에 씀(答朴德一論文學事書 庚辰作)에서 발췌하다

 

惟平生篤好古文 專精積久 유평생독호고문 전정적구

至於白首 而其所得如此 지어백수 이기소득여차

穆行事愨直 不趨世俗蹊徑 목행사각직 불추세속혜경

文詞逼古 又不喜蹈襲後世翰墨工程 문사핍고 우불희도습후세한묵공정

詆誹異端 抑絶浮誇 저비이단 억절부과

尋追古人遺緖 兀兀忘飢寒 심추고인유서 올올망기한

迨老死而不悔者 將擧一世 태로사이불회자 장거일세

而稱我爲一人 穆不必多讓 이칭아위일인 목불필다양

來書所譏 似若近矣 然傳不云乎 래서소기 사약근의 연전불운호

孔子之門 亦稱文學子游 子夏 공자지문 역칭문학자유 자하

孟子傳堯舜孔子之道 而孟子稱雄辯 맹자전요순공자지도 이맹자칭웅변

此何可易言也 차하가역언야

其言語其文章 一出於道德而不悖 기언어기문장 일출어도덕이불패

足以繼古而傳後 족이계고이전후

則古聖人賢人之敎人勉人者此也 즉고성인현인지교인면인자차야

穆窮思畢精竭力 願欲企及而不能者 亦此也 목궁사필정갈력 원욕기급이불능자 역차야

又何辭也 顧不敢當也 우하사야 고불감당야

惟吾子復之 유오자부지

 

생각해보니 평소에 고문을 진짜 좋아하여 오로지 오랫동안 정신을 모아써서 쌓았지만

백발에 이르러 터득한 바가 이와 같을 따름입니다

목은 행하는 일이 성실하고 강직하여 세속의 지름길은 따르지 않았으며

문장에 있어서도 고문을 가까이하고 또 후세가 다듬어 지은 글을 답습하길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단을 배척 비판하고 허황하게 자랑함을 근절하고

부지런히 고인들이 남겨놓은 사업을 찾아 배고픔과 추위도 모두 잊고

늙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이 한 세대를 모두 들먹여

나 한 사람을 위해 칭하더라도 목은 반드시 여러 번 사양하지 않을 겁니다

보내 주신 편지에서 충고는 근사합니다 옛 책에서도 이르지 않았습니까

공자의 문하에서도 문학으로 자유와 자하를 칭하였고

맹자는 요순과 공자의 도를 전수하고도 맹자를 웅변으로 칭하였는데

이것을 무엇으로 가히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 언어와 문장이 하나하나가 도덕에서 나오고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아

족히 옛것을 계승하여 후세에 전하는 것이니

옛 성인과 현인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권면한 것이 즉 이것입니다

목은 생각과 정신과 모든 힘을 다하여 꾀하기를 원했으나 능히 못한 것도 이것입니다

또 무엇으로 사양하겠습니까 돌아보니 감히 담당할 수가 없을 따름입니다

생각건대 그대는 다시 보아주시길 바랍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고 학자였던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선생이 박덕일선생 문학을 논하면서 주고받은 서신 중에 경진년에 쓴 답장편지글(答朴德一論文學事書 庚辰作)중에 말미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박덕일선생과 주고받은 편지글이기에 박덕일선생에 대해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자료가 바로 검색되지 않아 모든 촉을 동원하여 알아보니 덕일은 자였으며 본명은 길응 임을 겨우 찾아내어 선생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하며 덕일선생은 미수선생과 동시대 서너 살 아래 인물인데 아쉽게도 세상은 일찍 하직한 분으로 박길응(朴吉應 1598~1656)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일(德一) 호는 진정재(眞靜齋) 박억년(朴億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세민(朴世敏)이고 아버지는 현감 박신(朴信)이며 이안눌(李安訥)의 문인이며 음보로 찰방이 되어 1634(인조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간원정언 사헌부지평 사간원사간 사헌부집의가 되었으며 곧 이어 세자보덕이 되었다가 승정원승지를 역임하고 참판에 이르렀으며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성인이 되는 방법 곧 학행일치의 법을 연마하였으며 뒤에 장현광(張顯光)을 사사하여 그가 지은 우주요괄(宇宙要括)을 상고하고 잘못된 곳을 고쳐 임금께 차기(箚記)를 붙여 올렸으며 또 안회의 일생을 연구하여 그의 장점을 표출하여 학안록(學顔錄)이라 이름을 붙이고 또 자기의 의견서를 첨가하여 왕에게 올려 인정을 받았다 시호는 충숙(忠肅)공이시다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선생은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하셨으며 글씨는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작품으로 삼척의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시흥의 영상이원익비(領相李元翼碑) 파주의 이성중표문(李誠中表文)이 있고 그림으로 묵죽도(墨竹圖)가 전하며 저서로는 동사(東事) 방국왕조례(邦國王朝禮) 경설(經說) 경례유찬(經禮類纂) 미수기언(眉叟記言)이 있으며 1691년 선생의 신위를 봉안하는 사액서원으로 미강서원이 마전군에 세워졌고 나주의 미천서원 창원의 회원서원에도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허황하게 자랑함을 억눌러 끊다라는 오늘의 성어 억절부과(抑絶浮誇)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 아니지만 자기 자신의 처지가 어떤 경지에 도달하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자기가 세상을 다 아는 양 떠들어 되는 분 또는 단정해 버리는 분들이 생각 외로 세상엔 너무 많다 특히 우리 주위에도 혹여 나 자신이 그러하지 않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있는 말이다 허황된 이야기를 과감하게 끊은 것 또한 좋은 인품과 성품으로 가는 길에 하나이니 억절부과(抑絶浮誇)를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기록에 남긴다

 

桓紀 9217924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