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묘언령기 眇言逞技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11. 11:02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묘언령기 眇言逞技


애꾸눈 묘眇 말씀 언言 굳셀 령逞 재주 기技

애매모호한 말로 재주를 부리다

이 성어는 조선 선조 문신 낙전당 신익성(樂全堂申翊聖1588~1644)선생의 시문집 낙전당집(樂全堂集) 권오(卷五)에 전주 부윤으로 임지에 가는 막내 외삼촌을 전송하는 서(奉送季舅氏全州府尹序)에서 발췌하다

翊聖不可以眇言逞技 익성불가이묘언령기 
將信其辭而無諱可乎 장신기사이무휘가호 
公於世 固寡合矣 공어세 고과합의 
知公者 量乎國 不能十之五 지공자 량호국 불능십지오 
號知公者 或稱其剛直 호지공자 혹칭기강직 
或稱其介潔 不知者曰 혹칭기개결 불지자왈 
剛直近於小恩 介潔似乎違俗 강직근어소은 개결사호위속 
毋論不知知之 足以盡公乎哉 무론불지지지 족이진공호재 
公處則陽浮慕之 出輒畏忌 공처즉양부모지 출첩외기 
使公不得安於朝 사공불득안어조 
自釋湖節 浮謗盈車 자석호절 부방영차 
而廑一敝曹 而又不免一麾出矣 이근일폐조 이우불면일휘출의 
公促駕疾馳 無毫幾微見 공촉가질치 무호기미견 
則人稱其雅量 즉인칭기아량 
而公之意 何知外內 君所使命也 이공지의 하지외내 군소사명야 
何知善惡 盡其力職也 하지선악 진기력직야 
修吾職以肅君命 分也 수오직이숙군명 분야 
唯知天下有大分而已 유지천하유대분이이 
一切進退毀譽 何足以嬰其中乎 일절진퇴훼예 하족이영기중호 
翊聖嘗竊頌公矣 익성상절송공의

익성이 애매모호한 말로 재주를 부릴 줄을 몰라서 
장차 그 말을 믿을 수 있게 숨기지 않고 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공은 세상과 한 결 같이 합당하게 맞는 부분이 적었다
공을 아는 자를 나라에서 헤아려 보면 열에 다섯도 되지 않을뿐더러
공을 안다고 부르는 자 중에는 혹 공의 강직함을 칭하기도 하고 
혹 그의 성질이 굳고 깨끗함을 칭하기도 하는데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말하길
강직이란 은혜가 적은 쪽에 가깝고 개결이란 시대풍속에 어긋난 것과 흡사하다 라고 하니
공을 아는 사람이건 공을 모르는 사람이건 공을 다 안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공이 있는 곳이 즉 조정이면 겉으로만 사모하다가 공이 물러나면 갑자기 두려워하고 꺼리니
공으로 하여금 조정에 편안한 마음을 얻을 수 없게 했다
스스로 충청도 관찰사를 그만두니 부질없이 비방하는 소리가 수레에 가득하였으니
겨우겨우 한번 호조에 있다가 또 한 번 외직으로 나가는 것을 면하지 못하였다
공이 말을 재촉해서 얼른 내려가고 털끝만큼도 어떠한 기미도 보이지 않으니 
즉 사람들이 공의 넓은 아량을 칭송하였다 
그렇지만 공의 뜻은 어찌 내직과 외직을 알겠는가 임금이 내린 명인바인데
어찌 좋고 나쁨을 알겠는가 오직 맡은 직임을 힘껏 다하였으니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닦아서 임금의 명을 정중히 받드는 것이 분수이다 
오직 천하에 큰 나눔의 직분만이 있음을 알았을 뿐이니 
일체의 진퇴와 덕담과 악담이 어찌 공의 심중에 걸린 것에 만족했겠는가
익성은 일찍부터 공을 몰래 칭송하였다

이 성어는 조선 선조 문신 낙전당 신익성(樂全堂 申翊聖1588~1644)선생이 전주 부윤으로 임지에 가는 막내 외삼촌 잠와 이명준(潛窩 李命俊 1572~1630)선생을 전송하는 서(奉送季舅氏全州府尹序)에서 발췌하였는데 잠와 이명준선생은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창기(昌期) 호는  또는 잠와 또는 퇴사재(退思齋)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이며 이정암(李廷馣) 이항복(李恒福)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01년(선조 34) 생원시 합격 1603년 정시(庭試) 갑과1(甲科1)에 장원 성균관전적에 임명되고 예조와 병조의 좌랑을 지내고 160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를 다녀와 형조좌랑 병조정랑 서원현감 평양서윤 등을 역임하고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 때 영덕으로 유배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장령 영남암행어사 충청도관찰사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세자를 모시고 전주로 피난 그 뒤 형조참판 강릉부사 1630년 시폐(時弊)를 논하는 소를 올려 대사간이 되었다가 병조참판을 거쳐 병으로 사직하였으며 1644년 좌찬성에 추증되고 저서로는 잠와유고(潛窩遺稿) 4권이 있다

낙전당 신익성선생은 문장과 시 서에 뛰어나고 특히 김상용(金尙容)과 더불어 전서의 대가였었으며 서예로는 회양의 청허당휴정대사비(淸虛堂休靜大師碑) 광주(廣州)의 영창대군의비(永昌大君碑) 파주의 율곡이이비(栗谷李珥碑)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낙전당집樂全堂集) 낙전당귀전록(樂全堂歸田錄) 청백당일기(靑白堂日記) 등을 남겨 놓으신 선생님의 행장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애매모호한 말로 재주를 부리다의 오늘의 성어 묘언령기(眇言逞技)에 뛰어난 분들이 요즈음 부쩍 늘어났다 싶을 정도로 눈에 띄게 보이는데 그들의 대다수는 공정과 국민을 밥 먹듯 들먹이며 그들이 말하는 그들의 국민은 바로 자기와 자기 주변에 무리를 무리가 아니라 국민이 되는 오늘 날 말장난의 서글픈 마당이 되었으니 진짜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살피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그들의 마수걸이 턱에 놀아나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날뛰는 형국이 바로 오늘 날이니 한마디로 안타까울 뿐이다 묘언령기(眇言逞技)에 능란하고자 하지 말고 마음 씀씀이를 제대로 가다듬어 만국민이 함께하는 진정한 위정자들이 나오길 바라며 묘언령기(眇言逞技)를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아 놓아 수신에서 경계의 말로 삼고자 한다

桓紀 9217년 9월 26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