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호방준결 豪放峻潔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5. 10:5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호방준결 豪放峻潔


호걸 호豪 놓을 방放 높을 준峻 깨끗할 결潔

호탕하고 걸걸하며 준엄하고 깨끗하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1527-1572)선생의 시집인 고봉선생속집(高峯先生續集)권이(卷二) 잡저(雜著)에 천사 허국 위시량의 문목에 대해 조목조목 답함(天使 許國 魏時亮 問目條對)에서 발췌하다

鄭夢周 迎日縣人 정몽주 영일현인 
爲人豪邁絶倫 有忠孝大節 위인호매절륜 유충효대절 
少好學不倦 精硏性理之學 深有所得 소호학불권 정연성리지학 심유소득 
時經書至東方者朱子集註 시경서지동방자주자집주 
夢周講說發越 超出人意 聞者頗疑 몽주강설발월 초출인의 문자파의 
及得胡雲峯四書通解 無不脗合 급득호운봉사서통해 무불문합 
諸儒皆服 推爲東方理學之祖 제유개복 추위동방리학지조 
高麗末 爲門下侍中 고려말 위문하시중 
是時 國家多故 機務浩繁 시시 국가다고 기무호번 
夢周處大事決大疑 不動聲色 몽주처대사결대의 불동성색 
而左酬右答 咸適其當 이좌수우답 함적기당
多所張設 時稱王佐之才 다소장설 시칭왕좌지재 
時俗喪祭 專尙桑門法 시속상제 전상상문법 
夢周始令士庶 倣朱子家禮 立家廟奉先祀 몽주시령사서 방주자가례 립가묘봉선사 
又內建五部學堂 外設鄕校 以興儒術 우내건오부학당 외설향교 이흥유술
其他如立義倉賑窮乏 設水站便漕運 皆其畫也 기타여립의창진궁핍 설수참편조운 개기화야 
所著詩文 豪放峻潔 소저시문 호방준결 
諡曰文忠 從祀西廡之下 後人又立書院 시왈문충 종사서무지하 후인우립서원

정몽주는 영일현 사람이다  
그는 사람됨이 호탕하며 용기가 뛰어났고 충효의 큰 절개가 있었다
젊어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부지런하여 성리학을 정밀히 연구해서 깊이 터득한 바가 있다
그 당시 동방에 들어온 경서 책 주자의 집주를 
몽주의 강설이 매우 탁월해 다른 이의 생각을 뛰어넘어 듣는 이들이 자못 의심할 정도였다
그 후 호운봉의 사서통해를 구해 보니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선비들이 다 복종하여 그를 동방 이학의 시조로 추앙하였다
고려 말기에 문하시중이 되었는데
이때는 국가에 변고가 많아 나라의 일이 매우 혼잡하였다 
몽주는 큰일을 처리하고 큰 의문을 결단함에 말과 얼굴에 동요함이 없이
좌우로 응답하여 모든 일을 다 타당하게 처리하였고 베풀고 설치한 것도 많아
당시에 제왕을 보좌할 만한 재목이라 일컬었으며 
당시의 상례와 제례의 풍속은 오로지 불교의 법을 숭상했는데
몽주가 비로소 사서인들로 주자의 가례를 본받아 가묘를 세워 조상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또 성안에 오부학당을 건립하고 밖으로는 향교를 설치하여 유가의 학술을 일으켰다
그 밖에 의창을 세워 궁핍한 이들을 진휼하고 수참을 설치하여 조운에 편리케 한 모든 계획이 그의 것이다
그가 저술한 시문은 걸걸하며 호탕하고 준엄하며 깨끗하다
문충이란 시호와 문묘 서무의 아래쪽에 배향되고 후인이 또 서원을 세웠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1527-1572)선생이 명나라 융경황제 등극 원년에 한림원검토(翰林院檢討)였던 허국과 병과좌급사중 위시량(魏時亮)을 조선에 보내 즉위를 알리는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허국 일행이 조선에 들어오는 도중에 명종이 붕어하고 선조가 왕위에 오를 때에 그들은 조선을 방문해 문묘와 성균관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조판서였던 박충원은 물론이고 고봉 기대승과도 시문을 교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맹자나 이기론 등에 익숙한 조선의 학문을 높이 사기도 하면서 이들의 물음에 조목조목 답한 고봉선생의 글이다

발췌문 서두를 조금 소개하면 본국의 어느 도의 벼슬아치나 선비 혹은 백성 가운데 이미 죽었거나 또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서 어떠한 이행과 효제와 절의가 있는지 또 공맹의 심학을 잘 알거나 기자조선의 홍범8조 주수를 아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거주지와 성명과 사실을 하나하나 기록해 달라는 요즈음으로 봐서는 매우 시건방진 그들 사신들의 무엄한 언행에 조선은 명과 형제 국으로서 명나라를 섬겼으니 그때는 이럴 수도 있었겠다 싶겠지만 그러나 솔직히 속이 뒤집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였다면 고봉선생님처럼 조목조목 답해 주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목을 치고 말았을까 목을 친다면 대전쟁이 있을 뿐이니 아마도 필자는 당연히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겠지만 만약에 벼슬을 했다면 그들과 자리를 같이 하지 않고 피했을 것 같은데 우리 고봉선생께서는 차분하게 그들의 물음에 조목조목 답한 서두에 본국은 바다 밖에 궁벽하게 위치해 있고 땅덩이는 작지만 백성들의 성품이 어질고 유순하여 선한 것에 잘 흥기하기에 이행과 효제와 절의가 있었던 사람들이 사서에 끊이지 않았으니 지금 그 수를 다 기록할 수는 없지만 우선 그중 한두 가지만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라고 하면서 이자현 한성한 김시습 손순 최누백 김자강 강렴 김덕숭등 우리 동국의 고려 신라 조선에 이르는 역사적 인물들을 열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정몽주선생에 관한 글에서 오늘의 성어의 발췌문장을 가져 온 것이다

호탕하고 걸걸하며 준엄하고 깨끗하다라는 오늘의 성어 호방준결(豪放峻潔)같은 성품을 갖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같겠지만 어찌 그 성품인품이 하루아침에 바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니 어쩌랴 그렇지만 그런 성격성품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좋은 성격의 소유자로 탈바꿈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니 호방준결(豪放峻潔)을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년 9월 20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