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굉사박학 宏詞博學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2. 11:06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굉사박학 宏詞博學


클 굉宏 말씀 사詞 넓은 박博 배울 학學

아주 크고 깊이 있는 문장의 말씀과 넓고 윤택이 나는 학식 또는 글 잘하고 학식이 깊음

이 성어는 실학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대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선생의 경세유표(經世遺表) 제15권 춘관수제(春官修制)에 과거지규 일(科擧之規 一)에서 발췌하다

凡擧子之選 自年二十以上 至年四十九 범거자지선 자년이십이상 지년사십구
若年滿五十者 罷而免之 약년만오십자 파이면지 
年五十罷免者 歸於治選 년오십파면자 귀어치선
臣謹案 神異夙就者 十五六歲 已足充選 신근안 신이숙취자 십오륙세 이족충선 
然早年登科 古人謂之不幸 연조년등과 고인위지불행 
宜至二十 許赴科擧 不可改也 의지이십 허부과거 불가개야 
臣又思之 愛人以德 君子之至意也 신우사지 애인이덕 군자지지의야
世固有宏詞博學 세고유굉사박학 
不遇知己 以至於窮老者 불우지기 이지어궁로자 
齊瑟不諧 楚玉屢刖 제슬불해 초옥루월 
雖亦人世之至冤 수역인세지지원 
然白首龍鍾 曳裾入庭 연백수룡종 예거입정
與鄕里小兒 爭其技能 여향리소아 쟁기기능 
斯豈有恥者之所忍爲乎 사기유치자지소인위호 
其立心之鄙陋旣如此 기립심지비루기여차 
則國家得斯人 亦安所用之哉 즉국가득사인 역안소용지재 
五十而免 斷不可已 오십이면 단불가이 
況治選之法 有足以處是乎 황치선지법 유족이처시호

무릇 과거시험 응시자를 선발함에는 나이 20세 이상부터 49세에 이르기까지로 하며
만약 나이가 만 50세인 자는 어 이상 그만두도록 해야 한다
50세가 되어서 문무선에 그만둔 자는 치선으로 돌린다 
신이 생각해보니 재주가 특이하고 남달라 조숙한 자는 15~6세면 선발에 충수 될 만도 하다 
그러나 소년(조년)등과를 옛 사람은 불행이라 일컬었으니
마땅히 20세가 이른 뒤에 과거볼 수 있게 함은 고치면 아니 된다
신이 또 생각해보니 사람이 덕으로써 사랑함은 군자의 지극한 뜻이다 
세상에는 아주 크고 깊이 있는 문장의 말씀과 넓고 윤택이 나는 학식이 있으나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벗을 만나지 못해서 궁곤하게 늙음에 이르러서
제왕에게 거문고를 가져갔으나 조화되지 못했고 초나라에 옥을 바치고도 발꿈치를 꺾였듯이 
비록 또 그렇다면 인간 세상에 지극히 원통할 것이다 
그러나 병든 늙은 몸으로 옷깃을 끌고 과거장에 들어가서 
같은 향리에 젊은 사람들과 더불어 기능을 경쟁하는 것은
어찌 수치심이 있는 자가 참고 시험볼 일인가
그 마음가짐이 속되고 남루함이 이와 같으면
즉 국가에서 이 사람을 뽑아서 또 어디에 안전하게 쓸 수 있을까 
50세에 그만두게 하는 것은 단연코 그만둘 수 없으며
하물며 치선의 법이 이런 사람을 처우하기에 족함이 있다

이 성어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선생이 순조 8년(1808) 유배지 강진군에서 짓기 시작하여 순조 17년(1817) 집필을 끝낸 국정(國政)에 관한 일체의 제도와 법규의 개혁에 대해 논한 경세유표(經世遺表) 제15권 춘관수제(春官修制)에 과거지규 일(科擧之規 一)에서 발췌하였는데 선생은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菴) 여유당(與猶堂) 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는데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 牧民心書 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으며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며 선생은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개혁사상은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혁명론이었다기보다는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량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고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당쟁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정치 참여로부터 소외되었던 근기(近畿)지방의 남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통치방식에 회의를 갖고 있던 지식인들은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들이 존중하는 성리설과는 달리 선진유학에 기초한 새로운 개혁의 이론을 일찍부터 발전시켜 이들의 학문적 경향을 근기학파라는 범주 안에 선생은 바로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이러한 학문적 분위기를 접하고 성장하면서 선생 스스로도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학습하였기에 실학의 대가가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아주 크고 깊이 있는 문장의 말씀과 넓고 윤택이 나는 학식을 의미하는 오늘의 성어 굉사박학(宏詞博學)을 간단하게 줄이면 글 잘하고 학식이 깊은 사람을 말 할 수 있는데 굉사박학(宏詞博學)의 경지에 오르려면 어릴 때부터 꾸준히 쉼 없이 책을 옆에 끼고 다독과 정독을 하고 유능한 선생님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해야 솔직히 가능한 말일 것이나 이런 경지에 오르는 분은 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늦었지만 결코 늦지 않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책을 옆에 끼고 지내라고 주위에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다 많이 알지는 못하더라도 단 하나라도 제대로 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것이기에 또 그 하나로 인해 둘 셋 점점 그 영역이 넓혀져서 어느 날 자신도 모르는 한 분야의 수장이 되고 또 어느 날 박학의 위치에 설수도 있다고 믿으며 필자도 하나하나 공부하는 과정에 굉사박학(宏詞博學)의 성어도 만나고 또 전서풍의 휘호도 하고 성어풀이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길 수 있다고 본다

桓紀 9217년 9월 17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