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익천연오 益闡淵奧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0. 31. 11:1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익천연오 益闡淵奧


더할 익益 열 천闡 못 연淵 속 오奧

더욱 깊이 오묘한 뜻을 밝히다

이 성어는 조선 숙종 때의 학자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의 유고집인 농암집(農巖集) 권삼십륙(卷三十六)에 묘표 제삼연김창흡찬(墓表 弟三淵昌翕撰)에서 발췌하다

甲戌更化 除戶曹參議 先生瀝血陳疏 갑술경화 제호조참의 선생력혈진소
大旨以不立榮途爲辭 대지이불립영도위사 
家人多勸以黽勉 가인다권이민면 
先生曰 我頭不着帽 自斷久矣 선생왈 아두불착모 자단구의 
自是連除大司諫 副提學 左右同副承旨 자시련제대사간 부제학 좌우동부승지 
吏曹參議 陞爲開城留守 리조참의 승위개성류수 
刑戶禮兵吏曹參判 大司憲 형호례병리조참판 대사헌 
而以兩館大提學 進乎刑禮曹判書皆不就 이이량관대제학 진호형례조판서개불취 
自上敦勉益至 特召伯氏議政公于榻前 자상돈면익지 특소백씨의정공우탑전 
面諭諄切 必使勸起 면유순절 필사권기 
故事所罕有也 고사소한유야 
先生猶堅持初意 以獲罪爲限 선생유견지초의 이획죄위한 
上亦不能奪焉 상역불능탈언 
先生旣絶意當世 專於爲己 선생기절의당세 전어위기
勉焉孜孜 學如不及 면언자자 학여불급 
雖以其積慘沈痼 而未嘗釋經於手 수이기적참침고 이미상석경어수
所註朱子書 益闡淵奧 소주주자서 익천연오 
其大志所欲論著 蓋不止此 기대지소욕론저 개불지차

인현왕후 복위 갑술환국 뒤에 호조 참의에 제수되자 선생은 몸과 마음을 다해 상소하였는데
그 큰 뜻은 다시는 영화로운 벼슬길에 서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가족들이 대부분 모두 억지로라도 나가라고 권하였으나
선생이 이르길 나는 머리에 관모를 쓰지 않겠다고 결단한 지가 오래되었다고 했다
그 뒤로 대사간 부제학 좌승지 우승지 동부승지 
이조 참의에 연달아 제수되고 개성부 유수
형조 호조 예조 병조 이조 참판 대사헌에 승진되었으며 
양관 대제학으로서 새로 형조 예조 판서에 천거되었지만 모두 나가지 않았다
임금으로부터 돈독한 권면이 더욱 지극해지고 백씨 의정공을 특별히 임금님 앞에 불러 
면전에서 자상하고 간절하게 유시하여 반드시 조정에 나오도록 권면하였으니
고사에도 이는 드믄 일이었다
선생은 오히려 더 처음 먹은 뜻을 죄를 얻는 한이 있더라도 굳건히 지켜 
임금도 나갈 수 없다는 선생의 뜻을 빼앗지는 못했다
선생은 당시 이미 세상에 뜻을 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배우기를 아직 미치지 못한 것 같이 부지런히 매진하였으니 
비록 자식이 먼저 죽는 일이 계속되어 병이 깊었지만 손에서 경서를 놓아보질 않았다 
선생이 주자의 책에 주석을 단 저서는 더욱 깊이 오묘한 뜻을 밝혀 놓았으니
그 큰 뜻으로 논저하고 싶었던 바가 이에 그치지는 않았으리라

이 성어의 발췌문은 문강(文康)공 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1653~1722)선생이 친형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의 묘표를 찬한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삼연선생은 본관이 안동 자는 자익(子益) 부는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며 형은 영의정 김창집(金昌集)과 예조판서 김창협(金昌協)이며 과거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아버지의 명으로 응시하여 현종 14년 진사시에 합격한 뒤 과장에 발을 끊고 백악(白岳) 기슭에 낙송루(洛誦樓)를 짓고 동지들과 글을 읽으며 산수를 즐기며 장악원주부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고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영평에 은거하고 장자와 사마천의 사기를 좋아하고 시도(詩道)에 힘썼으며 친상을 당한 뒤에는 불전(佛典)을 탐독하였으며 그 뒤 주자의 글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어 유학에 전념하였는데 1696년 서연관에 초선되고 경종 1년에 집의 이듬 해 영조가 세제(世弟)로 책봉되자 세제시강원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임하고 나가지 않았으며 신임사화로 절도에 유배된 형 창집이 사사되자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삼연선생은 형 김창협과 함께 성리학과 문장으로 널리 이름을 떨쳤고 이기설에서는 이황의 주리설과 이이의 주기설을 절충한 형 창협과 같은 경향을 띠었으며 즉 선한 정(情)이 맑은 기(氣)에서 나온다고 말한 이이의 주장에 반대하고 선한 정이 오직 성선(性善)에서 나온다고 말한 형 창협의 주장에 찬동하고 또한 사단칠정에서는 이를 좌우로 갈라 쌍관으로 설명한 이황의 주장에 반대하고 표리로 나누어 일관으로 설명한 이이의 주장을 찬성하였으며 중용의 미발(未發)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하였으며 사람의 인품(人品)을 6등으로 나누어 성인(聖人) 대현(大賢) 군자(君子) 선인(善人) 속인(俗人) 소인(小人)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였으며 저서로는 삼연집 심양일기등을 남기고 사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양주의 석실서원 양근의 미원서원 덕원의 충곡사 울진의 신계사 양구의 서암사 강릉의 호해정영당 포천의 요산영당 한성의 독충당 등에 제향 되었다[한국민족대백과참조]

더욱 깊이 오묘한 뜻을 밝히다 라는 오늘의 성어 익천연오(益闡淵奧)의 좋은 성어를 풀이하고 또 발췌문을 읽고 선생들의 행장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갈 길에서 바름이란 정의란 또 민족은 무엇이며 국가란 가족이란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영화와 절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며 또 선생이 나눈 인품의 6등급을 보면서 수확의 계절에 농부의 손아귀에 쥐어진 알곡들이 씨알이 꽉 찬 알곡과 빈 껍질만 있는 쭉정이를 거둬들이는 농부의 심정을 헤아려보며 나 이사람 자신을 수확해 갈 삼성신 하나님의 손에 농부의 수확심정처럼 어떻게 된 인간으로 받아 거둬들일 것인가 꽉 찬 알곡을 떠올려 보며 더욱 깊고 오묘한 뜻을 밝힐 수 있는 질그릇을 늦었지만 스스로 만들어 보자하며 오늘도 열심히 성어 속으로 파고들며 즐겁게 더욱 깊이 오묘한 뜻을 밝히다의 익천연오(益闡淵奧)를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년 9월 15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