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광세일현 曠世一見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0. 30. 11:0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광세일현 曠世一見

밝을 광(세상) 하나 일나타날 현

 

밝은 세상에 크게 나타나다 또는 밝은 세상에 한번 보다등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이 성어는 조선중기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1526~1586)선생의 문집인 백담선생문집(栢潭先生文集)에 백담선생문집서문 홍여하(栢潭先生文集序 洪汝河)에서 발췌하다

 

退陶老先生倡道東南 퇴도로선생창도동남

奬就後進 장취후진

一時魁碩之士彬然輩出 일시괴석지사빈연배출

若論文學之科 약론문학지과

高峰奇公栢潭具公二先生 卽其人焉 고봉기공백담구공이선생 즉기인언

蓋老先生於二公 遜皐比而不居 개로선생어이공 손고비이불거

二公則執弟禮子益虔云 이공칙집제례자익건운

栢潭始釋褐 聲譽藹蔚 백담시석갈 성예애울

人慕之如祥鸞鸑鷟 曠世一見 인모지여상란악작 광세일현

卽識者推許 즉식자추허

有以三代人物兩漢文章目之矣 유이삼대인물량한문장목지의

歷敡藝苑林館 력이예원림관

皆極一時之選 개극일시지선

而出按海臬湖閫 이출안해얼호곤

治軍毖民 政績可觀 치군비민 정적가관

 

퇴도 노선생이 동남지방에서 도로 인도하시고

후진을 장려하여 성취하게 하시니

한 때에 우수한 큰 선비들이 빛나게 성대히 많이 나왔다

만약 문학 과정으로 논하면

고봉 기대승 백담 구봉령 두 분 선생이 바로 그분들이다

노선생께서 두 분 공에게 좋은 호피방석을 양보하고 노선생은 방석을 차지하지 않으니

두 분 공들께서는 제자의 예를 더욱 정성 다해 지켰다고 한다

백담은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가 명성이 자자하게 들리니

사람들이 상서로운 봉황이 밝은 세상에 크게 나타난 듯이 사모하였고

식자들은 승인하고 추대하여

하 상 주 삼대의 인물이며 전한과 후한 양한의 문장이라고 지목하였다

예문관 한림원 등을 두루 역임하였는데

모두 그 당시의 선발된 특별한 일이다

황해와 호서지방에 관찰사로 나가서는

군사를 다스리고 백성을 위로하여 선정의 치적이 볼만하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1620~1674)선생이 조선중기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1526~1586)선생의 문집인 백담선생문집(栢潭先生文集)의 서문을 찬한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목재 홍여하선생은 본관은 군위 부계(缶溪) 자는 백원(百源) 호는 목재외 산택재(山澤齋)이고 대사간 홍호(洪鎬)아들이며 효종 5(1654) 진사로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예문관에 들어가 검열이 되고 이어 대교 봉교 등을 역임하고 정언에 이르러 효종에게 시사(時事)를 논하는 소를 올려 왕의 가납을 받았으나 반대파의 배척을 받아 고산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1년 만에 사퇴하고 1658년 다시 경성판관이 되었으나 왕의 하문에 의하여 소를 올렸으나 그 소문에 이후원(李厚源)을 논박한 구절로 말미암아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사직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켜 황간(黃澗)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에 풀려났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숙종 즉위년(1674) 2차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송시열이 추방되는 등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정권을 잡자 다시 등용되어 병조좌랑이 되었으며 이어 사간에 이르렀고 특히 주자학에 밝아 당시 사림의 종사(宗師)로 일컬었으며 1689년 부제학에 추증되고 상주의 근암서원(近巖書院)에 제향되고 저서로는 목재집 편서로는 주역구결(周易口訣) 의례고증(儀禮考證) 사서발범구결(四書發凡口訣) 휘찬여사(彙纂麗史) 동사제강(東史提綱) 해동성원(海東姓苑) 경서해의(經書解義) 등이 있다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1526~1586)선생은 조선조 명종 1(154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6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부정자 예문관검열 봉교를 거쳐 홍문관정자에 이르렀으며 1564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하여 수찬 호조좌랑 병조좌랑을 거쳐 1567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정언 전적 이조좌랑 사성 집의 사간을 두루 거치고 선조 6(1573) 직제학에 오르고 동부승지 우부승지 대사성 전라관찰사 충청관찰사 등을 지내고 1577년 대사간에 이듬 해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의 형조참의 1581년 대사헌에 이듬 해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한때 암행어사로 황해도 충청도 등지에 나가 흉년과 기황(飢荒)으로 어지럽던 민심을 수습하기도 하였으며 당시는 동서의 당쟁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나 중립을 지키기에 힘썼으며 시문에 뛰어나 기대승(奇大升)과 비견되었고 또한 혼천의기(渾天儀記)를 짓는 등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만년에 정사(精舍)를 세워 후학들과 경사(經史)를 토론하고 사후 용산서원(龍山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백담문집(栢潭文集) 및 그 속집(續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밝은 세상에 크게 나타나다 라는 오늘의 성어 광세일현(曠世一見)에서 일현(一見)은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말이다 한번 보다 크게 보다 모두 보다 한번 나타나다 크게 나타나다 등등으로 문장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이 가능하며 발췌문에서는 한번 보다 라고 하는 것보다는 크게 나타나다 라고 해석하면 더 자연스럽게 어울리기에 나타나다 드러나다 라는 뜻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광세일현(曠世一見)의 욕심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지만 그 욕심을 이루는 자는 극히 미미할 것이다 라고 단정하지 말라 타고난 성품과 인품을 잘 다듬고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전심전력으로 공부하고 학습하여 그 계통에서 두각을 나타내다보면 자연 광세일현(曠世一見)은 이루어진다고 믿는 필자이기에 광세일현(曠世一見)을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914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