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궁협교채 窮峽咬菜

백운선사 김대현 2021. 2. 25. 15:2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궁협교채 窮峽咬菜

다할 궁골짜기 협새소리(씹을) 나물 채

 

깊은 두메 산골짜기에서 나물밥만 먹고 살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노봉 민정중(老峯 閔鼎重 1628~1692)선생의 시문집인 노봉선생문집(老峯先生文集) 권칠(卷七)에 지숙에게 부치는 편지(寄持叔)에서 발췌하다

 

此地有名山大野江海島嶼之勝 차지유명산대야강해도서지승

就野中斗入之麓爲邑城 취야중두입지록위읍성

吾之寓舍在最高峯下 오지우사재최고봉하

土淨而性燥 風來而氣爽 토정이성조 풍래이기상

又以枝麓遮邑館 우이지록차읍관

頗有幽僻之趣 파유유벽지취

魚鹽旣饒 牛肉亦易求 어염기요 우육역역구

但窮峽咬菜已久 단궁협교채이구

卒飽膩腥 腸胃不安 졸포니성 장위불안

不敢多食 可笑 불감다식 가소

想君念我故 상군념아고

每每略有所記今又送去 매매략유소기금우송거

見此可悉此中事矣 견차가실차중사의

路困未解 不能讀書 로곤미해 불능독서

時時披看東坡集 시시피간동파집

誦詠唐絶句 송영당절구

取休紙習眞草 字大如掌者耳 취휴지습진초 자대여장자이

 

이 지역에는 이름 있는 산과 넓은 들판 강과 바다에 크고 작은 빼어난 섬들이 있고

들판 한가운데 말 통처럼 쑥 들어간 산기슭에 읍성을 이루었다

내가 임시로 거처하는 집은 가장 높은 봉우리 아래에 있으며

땅이 깨끗하고 땅의 성질이 건조하며 바람이 불어 기운이 상쾌하고

또 한 줄기 산 능선이 읍관을 가려 주어

자못 그윽하고 구석진 흥취가 있다

물고기와 소금은 이미 넉넉하며 쇠고기 또한 구하기 쉽고

다만 깊은 두메 산골짜기에서 나물밥만 먹고 산지 이미 오래되어

끝내 기름지고 비린내 나는 살찐 고기를 배불리 먹으면 위장이 편치 않아

감히 많이 먹을 수가 없어서 가히 웃음만 나온다

생각건대 자네가 나를 염려하는 까닭으로

매 매번 대략 적어 둔 바에 있어 지금 또 보내니

이 편지를 보면 가히 이곳 일은 모두 다 짐작할 수 있을 거네

여행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아 익숙하게 책을 읽을 수 없어

때때로 소동파집을 펼쳐 보거나

당나라 절구시를 읊조리며

버려진 휴지를 가져다 진초 붓글씨를 연습하는데 글자 크기가 손바닥만큼 크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노봉 민정중선생이 지숙에게 부치는 편지에서 발췌하였는데 노봉선생의 문집에 지숙에게 부친 편지가 여러 편 있어서 필시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아서 찾아보니 노봉선생의 몇 살 아래인 아우 둔촌 민유중(屯村 閔維重 1630~1687)선생이다

둔촌 민유중선생은 본관은 여흥 자는 지숙 아버지는 강원도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의 딸이고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아버지이며 대사헌 민기중과 좌의정 민정중의 동생으로 효종 즉위년(1649) 진사가 되고 1651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검열이 되었으며 이어 대교 봉교 세자시강원설서 성균관전적을 거쳐 사헌부감찰 예조좌랑 병조좌랑을 지내다가 어머니의 상을 마친 뒤 사간원정언과 세자시강원사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1656년 병조정랑이 되었으며 그 뒤 사헌부지평 사간원정언 등을 지내면서 대신들과 시폐를 놓고 다툰 끝에 조정에서 물러났다가 이듬해 함경도 경성판관으로 나갔으며 이때 선정을 베풀어 7개 고을의 주민이 송덕비를 세웠으며 이듬해 중앙에 돌아와 예조정랑이 되었다가 현종 3(1662) 잠시 여주로 물러나 앉았다가 홍문관부교리 교리 사간원헌납 경상우도염찰사 이조정랑 성균관직강 등을 지냈으며 1663년 이후 이조정랑 홍문관교리 응교 사간원사간 사헌부집의 제용감정 사도시정 의정부사인 등을 두루 역임하다가 1665년 전라도관찰사로 발탁되어 당상관에 올랐으나 몇 달 만에 다시 중추부첨지사가 되어 내직으로 들고 이어 장례원판결사 사간원대사간 승정원승지 이조참의 등을 지내다가 병조판서 김좌명과 다툰 끝에 벼슬을 버리고 광주에 은거하였다가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다시 평안도관찰사로 나갔으며 그리고 1671년부터 형조판서 대사헌 의정부우참찬 한성부판윤 호조판서 겸 총융사 등 요직을 역임하였으며 숙종이 즉위하면서 남인이 집권하자 벼슬을 내놓고 충주에 내려가 지내다가 끝내 흥해로 유배된 후 숙종 6(1680) 경신대출척으로 남인이 실각하자 다시 조정에 들어와 공조판서 호조판서 겸 선혜청당상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서인 정권을 주도하였으며 그리고 이듬해 3월 국구(國舅)가 되자 여양부원군에 봉해지고 이어 돈녕부영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금위영의 창설을 주도하여 병권과 재정권을 모두 관장하였으며 이 후 점차 외척으로서 정권을 오로지 한다는 비난이 일어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다가 죽었다 여주 섬락리에 안장되고 효종의 묘정과 장흥의 연곡서원 벽동의 구봉서원에 배향되었으며 경서에 밝았으며 민문정유집(閔文貞遺集)1010책이 전하며 시호는 문정(文貞)공이시다

 

깊은 두메 산골짜기에서 나물밥만 먹고 살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궁협교채(窮峽咬菜)의 발췌문 편지를 읽으면서 노봉선생이 이곳에 오기 전에 유배생활이라든가 열악한 환경에 있었기에 깊은 산골짜기에 먹을 것이라곤 거친 나물밥뿐인 곳에서 지냈더니 위장이 나빠져서 이곳에서 와서 좋은 음식을 보고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어 웃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동래부사로 부임하면서 쓴 편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며 깊은 골짜기에서 나물 밥 먹는다라는 궁협교채(窮峽咬菜)의 고통을 생각하며 역지사지하면서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114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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