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강산문조 江山文藻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1. 15:17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강산문조 江山文藻

강 강뫼 산글월 문(물풀)

 

강과 산처럼 문장이 아름답고 멋있다

 

이 성어는 고려후기 문신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 1309~1385)선생의 시문집 제정선생문집(霽亭先生文集)에 제정집 발문 이종재(霽亭集跋 李宗梓)에서 발췌하다

 

此吾先祖霽亭先生文集也 차오선조제정선생문집야

先生易簀後幾年 선생역책후기년

傍先祖貳使公嘗鋟于春川府 방선조이사공상침우춘천부

今据尹文度公跋語而識之耳 금거윤문도공발어이식지이

第陵谷變遷 雲仍散落 제릉곡변천 운잉산락

江山文藻 蕩然於海桑之墟 강산문조 탕연어해상지허

今無以攷見其幾梓幾藤 금무이고견기기재기등

實遺孫之積世衋菀者也 실유손지적세혁울자야

由是先父老蓋經營於逖遠之餘 유시선부로개경영어적원지여

搜拾於散爛之際 爲幾卷草 수습어산란지제 위기권초

藏篋笥 邇來又幾許世矣 장협사 이래우기허세의

宗梓等深懼 夫先蹟之愈邈 先志之未就 종재등심구 부선적지유막 선지지미취

合諸宗以議 思所以壽諸剞劂 합제종이의 사소이수제기궐

無遠近無賢愚 皆一辭也 무원근무현우 개일사야

於是逐派以排 計冠以收 總爲若干銅 어시축파이배 계관이수 총위약간동

遂以古人藏諸名山之意 수이고인장제명산지의

設刊所於太白之浮石寺 首尾數三年而功告訖 설간소어태백지부석사 수미수삼년이공고흘

 

이는 우리의 선조 제정선생의 문집이다

선생이 대자리를 바꾸어 펴신(돌아가신) 지 몇 년 후에

방계의 조상 이사공(부사공)께서 일찍이 춘천부에서 문집을 간행했으나

지금은 문도공(윤회(尹淮)선생)의 발문에 의거해 이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구릉과 골짝이가 서로 뒤바뀌는 역사의 변천 속에서 구름 같은 후손들은 다 흩어졌고

강산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은 해상의 터 청구에서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몇 대 몇 권 얼마나 간행하였는지 상고해 볼 수 없어

실로 남은 후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매우 애통해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어르신들께서는 아득히 떨어진 후대에서 모두 경영하여

흩어지고 문드러진 사이에서도 시문들을 모아 초고 몇 권을 만들어

책갑상자에 보관하셨는데 가까운 근래에 또 다시 몇 세대가 흘렀다

나 종재등은 선조의 유적이 더욱 멀어지고 선친의 뜻을 완수하지 못할까 매우 두려워서

여러 종중을 모아서 논의하고 오래도록 보관할 것을 생각하고 모두 간행하기로 하였다

멀고 가까울 것 없이 어질던 그렇지 못하든 관계없이 모두 한목소리였다

이에 각 종파에 따라 배분해서 사정에 맞게 계획을 세워 모금해서 약간의 구리 동을 모았다

드디어 옛사람들이 모두 명산에 보관해 두는 뜻을 따라

태백산 부석사에 간행소를 설치하고 처음부터 수삼 년에 이르러 성공리에 간행을 마쳤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고려후기 문신 제정 이달충(霽亭 李達衷 1309~1385)선생 시문집의 제정집 발문을 선생의 후손인 이종재(李宗梓)선생이 쓴 발문인데 발문의 내용으로 보아 이종재선생은 아마 벼슬은 하시지 않았지만 대단한 학자이셨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느 집안 할 것 없이 아주 특출하시지 않은 이상 벼슬하지 않은 어르신들의 기록이 거의 전하지 않으니 필자로선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발췌문의 주인공 제정 이달충선생은 본관은 경주 자는 중권(仲權) 증조는 문하평리(門下評理) 이핵(李翮)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이세기(李世基) 아버지는 첨의참리(僉議參理) 이천(李蒨)이고 어머니는 연창군부인박씨(延昌郡夫人朴氏)이며 고려 충숙왕 13(1326)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거쳐서 공민왕 때 전리판서(典理判書)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하고 공민왕 8(1359)에는 호부상서로 동북면병마사가 되었고 호부상서로 있던 1360년 팔관회 때 왕의 노여움을 사서 파면되었으나 훌륭한 학자였으므로 1366년에 밀직제학으로 다시 기용되었으며 신돈이 전횡하던 때에 그에게 주색을 일삼는다고 공석에서 직언한 것이 화근이 되어 다시 파면되었으며 신돈이 주살(誅殺)된 뒤에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고 우왕11(1385)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하여졌으며 저서로는 제정집이 있고 시호는 문정(文靖)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제정집 문집 서문을 보니 1832년에 경사(經史)에 두루 통하여 정조의 친명으로 성균관에 거재(居齋)한 신야문집(新野文集) 저자인 진성(眞城) 후인 신야 이인행(新野 李仁行1758~1833)선생이 쓴 제정집 서문(霽亭集序) 말미에 제정 이달충선생이 조정에 있을 때의 큰 절개는 국사에 실려 있고 경세의 뛰어난 문장은 동문선과 여지승람 등에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이 보잘것없는 후인의 서술이 진실로 필요치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공의 효성스러운 자손들이 이처럼 조상들을 숭모하는 정성으로 제정공의 문집 원본이 전해지지 않음을 가슴 아파하고 다시 문집을 간행해서 원근 각지에 배포하려는 뜻을 가상하게 여겨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 이에 서문을 쓴다라고 마친 서문의 글을 통해 제정선생에 대해 공부를 간략하나마 정리해 보았다

 

강과 산처럼 문장이 아름답고 멋있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강산문조(江山文藻)의 발췌문을 읽어보면서 멋드러진 문집속의 문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아름답고 훌륭한 글을 남긴 분과 그 글속에 주인공의 행장을 찾아서 살펴보고 공부하다보니 전혀 모르고 있었거나 알려지지 않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슴에 깊이 새겨두고 본받을 만한 선현들이 엄청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얻은 선현들의 행장을 이것을 읽는 독자들과 공유 할 수 있어 비록 짧은 지식이지만 머리 싸매고 문집 속에 좋은 성어를 낚으러 산책하는 수고로움이 힘든 길이기보다 즐겁고 행복한 길이기에 오늘도 비록 유려하고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필자의 심정을 어눌하게 남기면서 필자의 문장과 서체가 강과 산처럼 문장이 물속의 물풀 말같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강산문조(江山文藻)처럼 될 날을 손꼽아보며 강산문조를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118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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