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협모거의 協謀擧義

백운선사 김대현 2021. 2. 19. 15:0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협모거의 協謀擧義

맞을 협꾀 모들 거옳을 의

 

계획을 서로 맞추어서 옳은 일을 위해 거들다

 

이 성어는 조선 초의 학자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선생의 시문집인 양촌선생문집(陽村先生文集) 권이십이(卷二十二)에 평원군조공 박의 시권의 발(平原君趙公 璞 詩卷跋)에서 발췌하다

 

昔予釋褐始筮仕 석여석갈시서사

有童冠六七人從而問字者 유동관륙칠인종이문자자

今平原君趙公安石年最少 性最敏 금평원군조공안석년최소 성최민

不以世家子自挾 雖當甚雨 불이세가자자협 수당심우

不憚徒跣而來 予固甚重之 불탄도선이래 여고심중지

及隷私試 辭彩精發 曄然可觀 급례사시 사채정발 엽연가관

予每加評點以奬之 여매가평점이장지

儕輩頗訝以其幼故勖之也 제배파아이기유고욱지야

後果一擧擢巍科 躋顯仕 華聞日播 후과일거탁외과 제현사 화문일파

一時從遊之徒皆出下風 일시종유지도개출하풍

始信予爲非虗美也 시신여위비허미야

前朝之季 政昏國疑 岌岌乎殆 전조지계 정혼국의 급급호태

時公尙少 克灼天命 시공상소 극작천명

乃與一二將相大臣 協謀擧義 내여일이장상대신 협모거의

翊問興運 易亂爲治 익문흥운 역란위치

極我一國生靈之溺 隆功偉烈 극아일국생령지닉 륭공위렬

固已關於萬世矣 고이관어만세의

 

옛날에 내가 처음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시작할 때에

성인과 아이 육 칠명이 따라와서 글을 배웠었다

지금 평원군 조공 안석이 가장 어렸으며 성정이 가장 총명했는데

세도가의 자제임을 티내지 아니하고 비록 심한 비가 내려도

맨발을 꺼리지 않고 공부하러 오니 진실로 내가 몹시 중히 여겼다

사사로이 시험을 맞붙여 볼 때도 그 문장이 화려하고 생동하여 빛이나 볼 만하여

나는 매번 평점을 더 보태어주면서 장려하였다

동료들은 약간 그가 어리기에 그에게 용기를 주려고 그러는 것으로 의심하였다

뒤에 과연 한 번 과거에 장원으로 뽑히고 현달한 벼슬에 올라 화려한 명망이 날로 펴지니

그 때 함께 공부하던 무리들 모두가 그 보다 아래에 풍문이 들리니

비로소 내가 한 좋은 말들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믿었다

고려조 말엽에 정사가 어지럽고 나라가 어수선하여 거의 위태롭게 되었을 때

때마침 공은 아직 젊었으나 이기고 능히 천명을 밝히어

한두 장수와 재상 대신과 계획을 서로 맞추어서 옳은 일을 위해 거드니

임금을 도와 국운을 진흥시키고 어려운 난국을 다스릴 수 있도록 바꾸어서

우리 한 나라의 몰락해가는 생령을 구하였으니 높고 아름다운 공렬은

진실로 이미 만세에 관계가 되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초의 학자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2~1409)선생이 제자인 평원군조공 박의 시권의 찬한 발의 문장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우정 조박(雨亭 趙璞 1356~1408)선생은 본관은 평양 자는 안석(安石) 문하시중 조인규의 4세손이며 아버지는 전의령 조사겸이고 고려 우왕 8(1382)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삼사좌윤에 이르렀으며 공양왕 1(1389) 12월에는 오사충과 함께 문하사인으로서 이색과 이인임을 탄핵하여 이색부자를 파면시키고 대장 조민수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들고 다음 해 5월에는 명나라에서 돌아온 조반에 의해 보고된 윤이 이초의 사단에 의거하여 소를 올려서 이색 일파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고 이방원과 동서간이어서 이성계를 따르고 복종하며 정적인 정몽주에 의해 청주목사로 좌천 수원부에 이르렀을 때 사주를 받은 수원부장에게 살해될 뻔했으나 도망치고 13924월 간관들에게 탄핵을 받아 청주목사직이 삭탈되고 귀양 갔으나 8월에 조선이 개국되자 예조전서로서 개국공신 1등이 되어 전() 170()과 노비 20구를 받았으며 평원군에 봉해지고 9월에 양광도안렴사 태조 3(1394) 전라도관찰사로서 민심수습에 힘쓰며 1395년 군사를 점고하지 않고 변방에 대한 보고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공주에 안치되었다가 다음 달에 석방되고 1398년 겸 대사헌으로서 하륜과 함께 사서의 구절에 방점(傍點)하여 왕이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제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참찬문하부사로서 정사공신1등에 올랐으며 12월에 겸 대사헌으로서 조준 하륜 이첨 정이오 조용과 함께 사서절요를 찬술하였으며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주살된 이방석의 기생첩을 상당후 이저가 취하여 부자간에 천상을 어지럽혔다고 폭로한 일로 이천으로 귀양갔다가 곧 경상도감사가 되었다가 14008월 조준을 무고한 혐의로 이천에 다시 유배되었다가 11월에 참찬문하부사가 되었으며 태종 1년 태종을 옹립한 공로로 좌명공신 3등에 봉해지고 판한성부사가 되었으며 동지공거를 겸하고 다음 해 10월 판한성부사로서 하정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다음 해 4월에 돌아와 참찬의정부사를 제수받고 14043월 예문관대제학을 10월 개성유후사 유후가 되고 1406년 정월 서북면도순문사가 되어 토관의 제도를 개혁하자고 건의하였으며 1408년에 호조판서 7월에 동북면도제찰사가 되었다가 53세의 나이로 죽었다 1409년 생전에 불교를 신봉했다는 탄핵을 받아 공신녹권이 추탈되었고 세종 4년 공신녹권이 소각되었으며 시호는 문평(文平)공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계획을 서로 맞추어서 옳은 일을 위해 거들다 라는 의미인 협모거의(協謀擧義)는 좋은 쪽으로 사용되었을 땐 한없이 아름다운 말이나 나쁜 쪽으로 사용하여 일을 내면 역적이나 반역에 몰려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고 손가락질 받을 일만 남겠지만 저마다 협모거의(協謀擧義)를 할 때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또한 그 명분도 문제가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늘 경계삼가해서 진짜 나라가 위태로울 때 협모거의(協謀擧義)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진정한 의거로 남아 길이길이 그 빛을 발할 것이다 라고 믿으며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8(신축)18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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