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이명쾌조 离明快照

백운선사 김대현 2021. 2. 18. 11:3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이명쾌조 离明快照

산신 리()밝을 명쾌할 쾌비출 조

 

임금의 명철한 밝은 지혜로 명쾌하게 살피다

 

이 성어는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인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1526~1586)선생의 문집 백담선생문집(栢潭先生文集) 권칠(卷七)에 임신년(1572) 10월 어느 날 사헌부에 재직할 때 올린 차자(司憲府箚子 壬申十月)에서 발췌하다

 

蛇虺蚺舌 仇疾善良 사훼염설 구질선량

締搆巧捏 竟必網打 체구교날 경필망타

如漢唐宋之季 及我國朝戊午 甲子 己卯 여한당송지계 급아국조무오 갑자 기묘

乙巳之禍 其可鑒已 을사지화 기가감이

殿下臨御 如日中天 전하림어 여일중천

奸慝潛釀 凶機遂露 간특잠양 흉기수로

是宜离明快照 乾斷廓揮 시의리명쾌조 건단

而壅蔽遮藏 歷時踰年 이옹폐차장 력시유년

人心疑懼 國勢抗捏 인심의구 국세항날

臣不得言 上不得悟 신불득언 상불득오

他日之事 有不可勝說者 此其三驗也 타일지사 유불가승설자 차기삼험야

殿下嘗驗之經幄 전하상험지경악

其殫誠瀝肝 極言盡論 能如御極初年者 기탄성력간 극언진론 능여어극초년자

有幾人哉 유기인재

揆之於時 察之於事 無一不驗 규지어시 찰지어사 무일불험

臣等未知殿下之心 其果能與天無間否乎 신등미지전하지심 기과능여천무간부호

 

살무사가 비단뱀처럼(간신이) 혓바닥을 날름거려 선량한 사람을 원수처럼 괴롭히고

교묘하게 날조하여 엮어 묶어서 끝내는 반드시 선량한 사람을 한꺼번에 모조리 잡아넣고

예전 한당송의 말년과 우리나라 조선의 무오년(연산군4) 갑자년(연산군10)기묘년(중종14)

을사년(명종 즉위년)의 사화가 가히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자리에 임해 다스림이 마치 해가 하늘 가운데에 떠있는 것 같은데

간신들이 간특함을 남몰래 기르려는 흉악한 조짐기미가 드디어 드러내니

이는 마땅히 임금의 명철한 밝은 지혜로 명쾌하게 살피시어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꽁꽁 가리고 숨겨서 감추어 놓고 시간이 지나고 해가 지나가고

인심은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나라는 위태로워 불안하고

신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임금은 깨닫지를 못하니

훗날의 이 일을 다 말 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증거입니다

전하께서 일찍이 왕에게 경서와 역사를 가르치는 일 경악에서 겪으시고

마치 즉위하신 초년 때처럼 심혈을 기우려 정성을 다하고 말을 지극하게 논의를 다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겠습니까

시대를 헤아려보고 일을 살펴보아도 단하나 증거 아님이 없지만

신 등은 전하의 마음이 과연 하늘과 간격이 없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문신인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1526~1586)선생이선조5년 임신(1572)년에 10월 어느 날 사헌부에서 재직할 때에 올린 임금의 큰마음은 하늘과 간격이 없어서 한 번 생각이 선하면 복되고 좋은 일의 조짐이 되는 별과 경사스런 구름이 나타나고 한 번 생각이 악하면 매섭고 뜨거운 바람과 번개천둥폭우가 몰아칩니다라고 시작하는차자(司憲府箚子 壬申十月)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차자는 상소와 같으나 서거정이 처음으로 차자를 올렸고 그 뒤 언론을 직책으로 하는 사간원과 홍문관에서 많이 사용하였으며 차자도 상소문과 같이 원본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초본(草本)이 남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실록 등 관찬사료와 문집 등에 전재된 것은 흔히 볼 수 있으며 성종 4(1473) 정월 서거정(徐居正)의 계언(啓言)에서 처음 볼 수 있는데 상소보다는 그 서식이 간단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고 하여 왕에게 상소할 때 차자를 많이 이용한 것으로 보이며 선현들이 남긴 문집에서는 상소문과 차자를 소차(疏箚)라 하여 동류로 구분하고 있다

 

백담 구봉령선생은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구겸(具謙)이며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권회(權檜)의 딸이고 7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1세에 아버지마저 죽자 초상집례에서 어른을 능가해 마을사람들로부터 일찍이 칭찬을 받고 외종조 권팽로(權彭老)에게 소학을 배워 문리를 얻고 1545년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명종 1(154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6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부정자 예문관검열 봉교를 거쳐 홍문관정자에 이르렀으며 1564년 문신정시에 장원해 수찬 호조좌랑 병조좌랑을 거쳐 1567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정언 전적 이조좌랑 사성 집의 사간을 두루 거치고 선조 6년 직제학에 올랐으며 이어 동부승지 우부승지 대사성 전라관찰사 충청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1577년 대사간에 오르고 이듬 해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의 형조참의를 지내고 1581년 대사헌에 오르고 이듬 해 병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한때 암행어사로 황해도 충청도 등지에 나가 흉년과 기황(飢荒)으로 어지럽던 민심을 수습하기도 하였으며 당시는 동서의 당쟁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나 중립을 지키기에 힘썼으며 시문에 뛰어나 기대승(奇大升)과 비견되었고 또한 혼천의기(渾天儀記)를 짓는 등 천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만년에 정사를 세워 후학들과 경사를 토론하였으며 죽은 뒤 용산서원에 제향되고 저서로는 백담문집 및 그 속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단(文端)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임금의 명철한 밝은 지혜로 명쾌하게 살피다 라는 의미의 이명쾌조(离明快照)에서 리()는 중국에서는 태양이나 불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우리 동이청구는 산신 맹수 분명하다 떠나다등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봐서 최고 권력 현재는 대통령 예전에는 황제 왕등의 지위에 연관된 어휘로 사용된듯한데 우리 청구는 산신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 마지막 단군께서 산신이 되셨다는 이야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보며 최고위 위정자들은 이 이명쾌조 성어대로 실현한다면 나라는 평화롭게 번영하리라 믿으며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8(신축)17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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