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제시유액 提撕誘掖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8. 18:2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제시유액 提撕誘掖

끌 제쪼갤 시꾈 유겨드랑 액

 

이끌어 일깨우고 권하여 북돋우다

 

이 성어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1431~1492)선생의 시문집인 점필재문집(佔畢齋文集) 권일(卷一)에 윤 선생 상의 시집에 대한 서(尹先生祥詩集序)에서 발췌하다

 

先生 資稟純篤 學文該通 선생 자품순독 학문해통

其於義理之精微 多有所自得 기어의리지정미 다유소자득

故能奮興於鄕曲 而羽儀於朝著 고능분흥어향곡 이우의어조저

處胄監前後二十餘年 처주감전후이십여년

提撕誘掖 至老不倦 제시유액 지로불권

當時之達官聞人 皆出其門 당시지달관문인 개출기문

師道尊嚴 陽村以後一人而已 사도존엄 양촌이후일인이이

爲文章 雖出於緖餘 위문장 수출어서여

而平易簡當 乍見若質俚 이평역간당 사견약질리

而細玩之 綽有趣味 이세완지 작유취미

皆自六經中流湊而成 개자륙경중류주이성

同時據皐比 如金樞府末 동시거고비 여금추부말

金司成伴 金文長鉤 經術則可爲流亞 금사성반 금문장구 경술즉가위류아

而文章則不能與之爭衡焉 이문장즉불능여지쟁형언

先生眞所謂有兼人之德之才者也 선생진소위유겸인지덕지재자야

其平生所作不爲少 기평생소작불위소

然而旋作旋弃 不畜一紙 연이선작선기 불축일지

先生之子前軍威縣監季殷 余之同年進士也 선생지자전군위현감계은 여지동년진사야

僅收拾於散逸之餘 得若干篇 근수습어산일지여 득약간편

錄爲一帙 要弁其端 록위일질 요변기단

 

선생은 타고난 바탕과 성품이 순수하고 돈독하며 학문을 두루 갖추고 통하여

그 의리의 깊고 오묘한 데에 스스로 얻은 바가 많이 있었으며

그런고로 능히 구석진 시골에서 떨치고 일어나 당당히 출사하여 조정에서 드러나니

그 전후 20여 년 동안 성균관에 대사성으로 있으면서

후진들을 이끌고 일깨워 권하여 북돋워 인도함에 늘그막까지 게을리 하지 않음으로써

당시의 지위가 높은 관리나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 모두 그의 문하에서 나왔는데

스승이 존엄하여 양촌선생 이후로 일인 자였었다

선생이 문장을 하는 것은 비록 남은 시간에서 나왔지만

쉬우면서 간략하고 합당하여 슬쩍 보면 마치 질박하고 속된 것 같으나

자세하게 익숙히 들여다보면 여유롭고 취하는 맛이 있고

이는 모두 육경 속에서 흘러 나와 모여 이루었으니

같은 시대에 스승으로 근거해서 중추부사 김말

사성 김반 문장공 김구 같은 이들인데 경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는 즉 선생에 아류였으나

문장으로는 선생과 더불어 우열을 다툴 수가 없었으니

선생은 참으로 이른바 덕과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많으신 분이시다

선생이 평소에 사시면서 저작한 것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지었다가 돌아서면 곧 버리곤 하여 한 편의 지면도 남겨두지 않으셨다

선생의 아들인 전 군위 현감 계은은 나와 같은 해의 진사라

겨우 흩어져 없어진 나머지에서 이리저리 주워 모아 시문 약간 편을 얻어서

기록하여 한 질을 만들고 나에게 그 실마리 서문을 고깔 씌워 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초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진사동년인 윤상 선생의 아들 전 군위 현감 계은으로부터 부탁받고 쓴 윤상 선생의 시집에 대한 서(尹先生祥詩集序)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별동 윤상(別洞 尹祥 1373~1455)선생은 본관은 예천 초명은 윤철(尹哲) 자는 실부(實夫) 윤충(尹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의 윤신단(尹臣端)이며 아버지는 예천군의 향리인 윤선(尹善)이시고 향리의 아들로 태어나 과거 시험으로 양반 신분에 올라 향리 역()에 종사하면서 식사하러 집으로 오가는 사이에 솔 기름을 가져다 몰래 숨겨두었다가 밤에 책읽기에 쓸 정도로 공부에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정몽주선생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밝은 조용(趙庸)이 태조 1(1392) 역성혁명을 반대해 예천에 유배되어오자 조말생(趙末生) 배강(裵杠) 등과 함께 수업해 문인이 되었으며 그 해 진사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생원시에도 합격하고 태조 5(1396) 24세의 나이로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해 선산 안동 상주 및 한성 서부 등지의 교수관을 거쳐 예조정랑 때 서장관으로 연경에 다녀와서 성균관사예가 되었으며 가친이 연로하자 외직을 청해 황간 영천 대구 등지의 군사를 맡은 뒤 사성을 거쳐 대사성에 발탁되었으며 세종 30(1448) 예문관제학으로서 원손(단종)의 입학례를 거행할 때 특명으로 박사가 되어 선비들이 이를 영예로 여겼으며 오랫동안 성균관의 교육에 종사해 문하에 과거에 합격해 이름난 사람들이 많았으며 문종 초에 고령으로 고향에 돌아가니 국왕이 사궤(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음식물)를 내렸는데 고령으로 은퇴하는 재상에게 궤물(饋物)을 내리는 제도가 여기에서 비롯되었으며 향리에서 자제들을 가르치다가 3년여 만에 83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선생은 조용을 통해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특히 세종대에 성균관 교육에 종사해 왕조 초기의 중앙 학계에 성리학의 기운을 진작 유지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개별적으로는 김숙자(金叔滋)에게 주역을 가르쳐 정몽주 계열의 도통(道統)에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하였으며 경학(經學)에 밝았고 문장에도 매우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별동집(別洞集)이 있고 시호는 문정(文貞)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이끌어 일깨우고 권하여 북돋우다 라는 의미의 오늘의 성어 제시유액(提撕誘掖)의 발췌문을 읽으면서 또 한분의 선현 별동 윤상선생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단 한 줄의 글을 쓰더라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제시유액을 붓 들고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8(신축)125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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