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덕우연정 德宇淵停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10. 18:10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덕우연정 德宇淵停

큰 덕집 우못 연머무를 정

 

사람의 성품이 조용하고 묵직하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선생의 시문집인 백사선생집(白沙先生集) 권삼(卷三)에 성균관 진사 최공의 묘갈명(成均進士崔公墓碣銘)에서 발췌하다

 

昔我宣宗大閱于西郊 석아선종대열우서교

余與隣友萆山而竊窺焉 日旰觀止矣 여여린우비산이절규언 일간관지의

俄聞呼趍且辟 避入道傍空舍 아문호추차벽 피입도방공사

先有冠童數十人 倦從仄徑來 선유관동수십인 권종측경래

游服放紛 或褰者袒者 유복방분 혹건자단자

夷踞族談而讙呶者 이거족담이환노자

若生駒之群騰于槽而相蹄嚙焉 약생구지군등우조이상제교언

見有間行一小生 견유간행일소생

鳳眼星煜 德宇淵停 봉안성욱 덕우연정

出班而揖余 同行者睥睨 출반이읍여 동행자비예

語移時 視下言徐 어이시 시하언서

如類有心者 余心異之 여류유심자 여심이지

肘之問誰 友人曰 주지문수 우인왈

子不識耶 是世所稱神童崔氏子澱也 자불식야 시세소칭신동최씨자전야

夫夫九歲辭家 負笈海州 從栗谷受詩史 부부구세사가 부급해주 종률곡수시사

筆追懷素 詩類靑蓮 餘事音律 傍通繪事 필추회소 시류청련 여사음률 방통회사

琴嘯笙笛之戱 梅竹蘆鴈之妙凡諸曲藝 금소생적지희 매죽로안지묘범제곡예

允臻其極 駸駸乎有古作者遺韻 윤진기극 침침호유고작자유운

異時張吾羣而主夏盟者 將在於斯 이시장오군이주하맹자 장재어사

明年乙酉 聞成進士 後五年己丑冬 人以訃告 명년을유 문성진사 후오년기축동 인이부고

余愴焉失圖 若掌珠之墜于淵也 여창언실도 약장주지추우연야

又後二十有二年 其胤子有海 以其家狀 逐臭於老夫 우후이십유이년 기윤자유해 이기가상 축취어로부

 

옛날 우리 선조(재위 1567~1608)임금이 서교에서 대규모 군사 사열할 때에

내가 이웃 벗 비산과 함께 몰래 엿보다가보니 해가 진 뒤에야 구경이 끝났다

갑자기(임금의 행차 경호문제로) 호령을 하며 추창(예를 다하여 허리를 굽혀 빠른 걸음)하고 또 벽제(통행을 금지)를 하므로 길옆의 빈 집으로 들어가 피하였다

이때 어른과 남자아이 수십 인이 먼저 천천히 좁은 길을 따라 왔는데

노는 차림새가 매우 분잡하여 혹은 소매를 걷은 자 웃통을 벗은 자

책상다리하고 앉아서 젊잖게 말을 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자도 있어서

마치 갓 태어난 망아지 떼들이 구유 통에 뛰어올라 서로 짓밟고 물어뜯는 모양과 같았는데

그들을 보니 그들 사이에 한 소생이 있어

눈초리가 사납고 붉은 기운이 있는 눈이 별처럼 빛나고 성품이 조용하고 묵직한

그가 반열에서 나와 나에게 공경하게 고개 숙여 읍을 하자 동행한 사람들이 흘겨보았다

잠깐 동안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그는 시선을 낮추고 말을 천천히 하니

마치 다른 뜻이 있는 무리 같아서 내 마음속으로 그가 이상해서

그의 팔을 끌어당기며 누구냐고 물으니 친구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가 이 사람이 세상에서 신동으로 일컬어진 최씨의 아들 전이라네

이 젊은이는 9세에 집을 하직하고 해주에 유학하여 율곡에게서 시와 역사를 배웠는데

필체는 회소를 따랐고 시는 청련의 부류이며 음률도 여사이고 그림 그리는 일엔 방통하여

거문고 휘파람 피리 젓대의 연주와 매 죽 갈대 기러기의 묘사에까지 무릇 모든 곡예에

참으로 그 극치에 다다라 점점 전진하여 옛 작자의 유운이 있어

다른 날에 우리나라를 크게 세워 천하의 회맹을 주관할 사람이 막 여기에 있네 라고 하였다

다음해 을유에 진사가 됨을 듣고 그 후 5년 기축 겨울에 어떤 이로부터 그의 부음을 들으니

나는 슬퍼 어쩔 줄 몰라서 마치 깊은 못에 애지중지하는 구슬을 떨어뜨린 것 같았다

22년 지난 뒤에 그의 맏아들 유해가 그 가장을 가지고 이 노부가 좋다고 찾아왔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백사 이항복선생이 최유해의 부탁을 받고 찬한성균관 진사 최공의 묘갈명인데 최공은 최전(崔澱1567~1588)선생으로 선생은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언침 호는 양포(楊浦) 아버지는 군수 최여우이고 어머니는 상주이씨이며 6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큰형에게 글을 배웠으며 9세에 이이(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불렸고 학문의 진도가 남달리 빨라 스승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나이 많은 동문들이 그와 벗하기를 원하였으며 14세에 사마시의 초시에 응시하여 뛰어난 문장으로 명성을 크게 떨쳤으나 회시에 때마침 스승 이이가 고관으로 있었기 때문에 남의 오해가 있을까 두려워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가 그 뒤 윤근수가 종3품 좨주로 있을 때 최전이 재주 있음을 듣고 재사로 불러들여 매일같이 학업을 지도하여 선조 18(1585) 진사시에 합격하여 박학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크게 모았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그만 요절하였는데 최전선생의 시문은 명나라에서까지 책으로 간행되어 절찬을 받았다고 하며 특히 시는 성당의 수준으로 소리가 맑고 가락이 높으며 준일한 서풍을 풍긴다고 평가되었으며 8세에 지은 노마는 오언절구로 기발한 시상과 절묘한 대구로 시인으로서의 천재적 재질을 보여 주었으며 12세에 지은 별해고수오음은 이이를 찾아가다가 황해도 연안에서 그 곳 수령 윤두수에게 증답한 시인데 이별의 상심을 격조 높게 표현하여 이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크게 칭찬 받은 작품이며 관동 지방의 경치를 읊은 서경시가 많은 것도 특징이며 또한 음악에도 천부적 재질을 발휘하였으며 그림은 매화와 조류를 잘 그렸으며 글씨는 예서와 초서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양포유고(楊浦遺稿) 1책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사람의 성품이 조용하고 묵직하다 라는 의미인 덕우연정(德宇淵停)의 주인공 최전선생이 처한 요절이란 안타까운 묘비명에 고개숙이며 조용히 덕우연정을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8(신축)127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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