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확휘건단 廓揮乾斷

백운선사 김대현 2021. 3. 12. 17:01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확휘건단 廓揮乾斷

클 확(둘레 곽)휘두를 휘하늘 건끊을 단

 

최고의 권위자 천자가 과감하게 결단하고 다스리다

 

이 성어는 조선중기의 문신인 병산 이관명(屛山 李觀命 1661~1733)선생의 시문집인 병산집(屛山集) 권오(卷五)에 우의정을 사퇴하는 두 번째 상소(辭右議政 再疏)에서 발췌하다

 

天討尙今未行 輿情久益憤鬱 천토상금미행 여정구익분울

彼二臣者誠 豈不足於格天哉 피이신자성 기부족어격천재

臣竊恐殿下之心 有所偏蔽而然也 신절공전하지심 유소편폐이연야

如臣者賦性懦弱 言論素輕 여신자부성나약 언론소경

平生行事 不能見孚於同朝 평생행사 불능견부어동조

其何望出意見明義理 感回我聖衷 기하망출의견명의리 감회아성충

以答擧國億兆之同心望欲者哉 이답거국억조지동심망욕자재

若使臣不能做當世之所急務 而伈伈俔俔 약사신불능주당세지소급무 이심심현현

奔走於籌司之坐延英之對 분주어주사지좌연영지대

如是而自稱以輔相 여시이자칭이보상

則臣心愧恥 已不可言 즉신심괴치 이불가언

而其於四方之譏誚何哉 이기어사방지기초하재

玆敢疾聲哀籲 伏乞天地父母 자감질성애유 복걸천지부모

俯賜諒察 亟遞臣職 부사량찰 극체신직

改卜賢德 以幸國事 개복현덕 이행국사

殿下亦宜自謀 廓揮乾斷 전하역의자모 확휘건단

快行王法 使先王遺黎 쾌행왕법 사선왕유려

欣覩始初淸明之治 흔도시초청명지치

則臣雖退死丘壑 즉신수퇴사구학

與有榮矣 臣無任云云 여유영의 신무임운운

 

하늘의 벌을 이제껏 시행하지 않아 사람들의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울부짖습니다

저 두 신하의 정성이 어찌 천자께 이르기에 부족하였겠습니까만

신은 전하의 마음에 한쪽으로 치우쳐 가려진 바가 있어 그렇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신의 경우는 타고난 천성이 나약하고 언론이 평소에 가벼워

평생에 살아가는 일들이 조정 동료들에게 믿음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어찌 의견을 내어 의리를 밝혀 우리 성스런 천자의 속마음을 감동시켜 돌림으로써

온 나라의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바라고자 하는 것에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가령 신이 당대의 급한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두려워서 눈치만 살필 것이며

주사(병영사무)의 자리와 연영전(집현전)에서 나랏일에 의견을 올리는 대에 매우 바빠서

이와 같은데도 임금을 도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나 관리인 보상이라고 스스로 칭한다면

즉 신의 부끄러운 마음은 이미 가히 말을 할 수도 없으며

그리하여 그 사방에서 나무라고 꾸짖는 소리 어떻겠습니까

이에 감히 괴로운 목소리로 애달피 부르짖습니다 엎드려 천지 부모와 같으신 천자께 빕니다

머리를 숙이오니 보낸 상소를 잘 헤아리시어 신의 직임을 속히 체차하시고

어질고 덕 있는 자로 다시 천거하여 국가의 대사를 다행스럽게 이끌어주십시요

전하께서도 또한 의당 스스로 꾀하시어 천자의 권위에서 결단을 과감히 하시고

왕법을 시원스럽게 시행하여 선왕의 후세 백성들로 하여금

초기의 청명한 다스림을 시작하여 기쁘게 바라본다면

신은 비록 물러나 언덕이나 골짜기에서 죽더라도

영광이 있을 것이오며 신은 금할 길 없습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중기의 문신인 병산 이관명선생이 쓴 우의정을 사퇴하는 두 번째 상소(辭右議政 再疏)문의 일부인데 병산 이관명선생은 본관이 전주 자는 자빈(子賓) 이수록(李綏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경여(李敬輿)이며 아버지는 판서 이민서(李敏敍)이고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로 좌의정 원두표(元斗杓)의 딸이며 숙종 13(1687)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가 되고 공조정랑을 거쳐 함열현감이 되었으며 1698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전조(銓曹) 낭관(郎官) 사인 등을 역임하고 이조 병조 예조 등의 참판을 거쳐 양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경종 1(1721) 모함을 받아 관직을 삭탈 당하였으며 이듬해 신임옥사 때 아우 이건명(李健命)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극형을 받자 이에 연좌되어 덕천으로 유배되었다가 영조 1(1725) 풀려나와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외직에 있을 때 민은(民隱)을 잘 보살폈고 시폐(時弊)의 시정책을 촉구하는 상소를 많이 올렸으며 또한 묘당에서는 임금의 융숭한 예우를 받았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응제문(應製文) 반교문(頒敎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남겼으며 사후 흥덕 동산서원(東山書院)에 봉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병산집(屛山集) 158책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靖)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백과 참조]

 

최고의 권위자 천자가 과감하게 결단하고 다스리다 라는 의미의 오늘의 성어 확휘건단(廓揮乾斷)자는 보통은 둘레 성을 뜻하는 곽으로 읽지만 여기서는 크다라는 의미의 클 확 확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병산선생의 문집에 자녀들에게 남긴 글에 내가 어려서 항상 우군 왕희지가 못가에서 글씨를 연습했던 그 뜻을 사모하여 붓글씨에 종사한 지 몇 해를 보내고 또 중년에는 그 시대 서풍의 쓰임에 유용하기 위해 기구하게 낭야(안진경709~785 낭야출신)와 오흥(조맹부1254~1322 오흥출신)의 서풍에서 이리저리 내달리며 익히다보니 옛 습관 왕희지의 서풍을 잃었는데 가까스로 되돌리기는 했지만 나이는 이미 노쇠하고 재주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라며 그렇지만 자녀들에게 늘 붓을 들라고 권유한 글을 보며 필자 또한 붓을 잡고 보낸 세월은 애법 되지만 아직도 필자가 추구하고자하는 서풍에 한 획을 긋지 못하고 오늘도 우왕좌왕 갈피 못 잡고 화선지위에서 허우적거리며 춤추다가 겨우 뜻한 바의 발꿈치 내밀 정도에 이르렀지만 최고의 권위자 천자 왕도 과감하게 결단하고 다스리는 확휘건단(廓揮乾斷)이 어려운 마당에 필자는 서예대가도 한학자도 아니면서 오늘의 성어를 휘호하고 남기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조심스럽다

 

桓紀 9218(신축)129일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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