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재장중정 齊莊中正

백운선사 김대현 2021. 6. 3. 16:17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재장중정 齊莊中正

가지런할 재풀 성할 장가운데 중바를 정

 

가지런하고 엄숙하며 바름이 중도에 맞다

이 성어는 중용 제31장에 나오는 말로 지성(至誠)의 덕을 표현한 말이다

 

이 성어는 고려 후기의 대학자인 가정 이곡(稼亭 李穀 12981351)선생의 시문집인 가정선생문집(稼亭先生文集) 권십(卷十)에 원나라 정조를 하례한 표문 행성의 명의로 보낸 것(賀正表 權省行)에서 발췌하다

 

起居 기거

權分省治 邈居出日之隅 권분성치 막거출일지우

遙望朝儀 切祝齊天之筭云云 요망조의 절축제천지산운운

政在璿璣 茂迓泰亨之運 정재선기 무아태형지운

祥凝黼扆 肅陳元會之儀 상응보의 숙진원회지의

萬象皆春 一人有慶云云 만상개춘 일인유경운운

齊莊中正 濬哲文明 재장중정 준철문명

尊賢使能 紹復世皇之道 존현사능 소부세황지도

繼志述事 緝煕先帝之心 계지술사 집희선제지심

適遇昌辰 倍膺純祜云云 적우창진 배응순호운운

幸忝宰屬 分治省垣 행첨재속 분치성원

相府久虛 權守征東之重寄 상부구허 권수정동지중기

辰居雖遠 益殫拱北之微誠 진거수원 익탄공북지미성

 

일상생활

살피고 다스리는 권한을 나눠 받고 멀리 해 뜨는 언덕에 살면서

조정에 의식을 멀리서 바라보며 천수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운운

정사는 선기옥형을 살피는 데 있고 아주 큰 형통의 운세를 성대히 맞으시고

상서로움이 황궁 무늬 병풍에 엉키어 설날 천자를 조회하는 의식을 엄숙히 펼치시며

만물의 상이 모두 봄을 맞이하니 한 사람 황제에게 경사가 있습니다 운운

가지런하고 엄숙하며 바름이 중도에 맞고 지혜롭고 문채가 나고 환하게 밝으니

어진 이를 받들고 능력 있는 자로 하여금 원나라 세황의 도를 다시 이으시고

뜻을 잇고 사업을 일으켜서 앞선 황제의 마음을 밝게 이으셨으니

마침 좋은 때를 만나 하늘의 복을 배나 더 받으실 것입니다 운운

요행히 욕되게도 재신의 반열에서 관청을 살피고 나누어 다스리는 몸으로

대신들의 황궁을 오래 비워 둔 채 동쪽 정벌의 중한 책임도 맡아 지키면서

황제의 거소가 비록 멀지만 모든 별이 북쪽을 향하듯이 미천한 정성만은 더욱 더할 것입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고려 후기의 대학자인 가정 이곡(稼亭 李穀 12981351)선생이 원나라 정조를 하례한 표문(賀正表)이다

 

가정 이곡선생은 고려 후기의 사람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중보(仲父) 초명은 운백(芸白) 한산 출생 한산이씨 시조인 이윤경(李允卿)6대손이고 찬성사 이자성(李自成)의 아들이며 이색(李穡)의 아버지이인 선생은 고려 충숙왕 4(1317)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한 뒤 예문관검열이 되고 원나라에 들어가 1332(충숙왕 복위 1) 정동성(征東省) 향시에 수석으로 선발되고 다시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였으며 이 때 지은 대책(對策)을 독권관(讀卷官)이 보고 감탄하였다하며 재상들의 건의로 한림국사원검열관(翰林國史院檢閱官)이 되어 그때부터 원나라 문사들과 교유하였으며 1334년 본국으로부터 학교를 진흥시키라는 조서를 받고 귀국하여 가선대부 시전의부령직보문각(嘉善大夫試典儀副令直寶文閣)이 제수되고 이듬해에 다시 원나라에 들어가 휘정원관구(徽政院管勾) 정동행중서성좌우사원외랑(征東行中書省左右司員外郎)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그 뒤에 본국에서 밀직부사 지밀직사사를 거쳐 정당문학(政堂文學)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고 뒤에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으며 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민지(閔漬)가 편찬한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증수하고 충렬 충선 충숙 3(三朝)의 실록을 편수하였으며 한때는 시관이 되었으나 사정(私情)으로 선발하였다는 탄핵을 받았으나 다시 원나라에 가서 중서성감창(中書省監倉)으로 있다가 귀국하였으며 공민왕의 옹립을 주장하였으므로 충정왕이 즉위하자 신변에 불안을 느껴 관동지방으로 주유(周遊)하다가 1350(충정왕 2) 원나라로부터 봉의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낭중(征東行中書省左右司郎中)을 제수 받았고 그 이듬해에 죽었다 선생은 일찍이 원나라에서 문명을 떨쳤으며 원나라의 조정에 고려로부터 동녀를 징발하지 말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고 그는 중소지주 출신의 신흥사대부로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음으로써 고려에서의 관직생활도 순탄하였으며 그는 유학의 이념으로써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대결하였으나 쇠망의 양상을 보인 고려 귀족정권에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는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은 그의 여러 편의 시에 잘 반영되어 있다 동문선에는 100여 편에 가까운 이곡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죽부인전은 가전체문학으로 대나무를 의인화하였으며 그밖에 많은 시편들은 고려 말기 중국과의 문화교류의 구체적인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도하다 한산의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의 단산서원(丹山書院) 등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가정집 420권이 전하며 시호는 문효(文孝)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가지런하고 엄숙하며 바름이 중도에 맞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재장중정(齊莊中正)은 중용(中庸 31)에 보면 재장중정 족이유경야(齊莊中正 足以有敬也)란 구절이 나오는데 이 말은 가지런하고 엄숙하며 바름이 중도에 맞아 족히 공경함을 있게 한다 라는 뜻으로 여기서 중()이란 기울거나 치우침이 없이 중도에 딱 들어맞는 것을 말하고 정()은 바름을 말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지성(至誠)의 덕을 표현한 말로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해야하는 올바른 가치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는 좋은 말을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기면서 발췌문의 내용이 고려왕정에 이야기였다면 훨씬 좋았을 것을 아쉽게도 시대상황이 국운이 다 쇄한 고려말기 원나라에 예속된 신하국의 이야기라 더욱 안타까우면서 보훈의 달을 맞아 어서 빨리 남북이 지난 아픔을 떨쳐버리고 하나 되어 강력한 국가로 거듭나길 바래본다

 

桓紀 9218(신축)423일 비 오는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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