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고정원운 高情遠韻

백운선사 김대현 2020. 7. 10. 09:49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고정원운 高情遠韻

높을 고뜻 정멀 원여운 운

 

고상한 정취와 심원한 운치

 

이 성어는 조선후기 문인인 미호 김원행(渼湖 金元行1703~1772)선생의 시문집인 미호집(渼湖集)에 권십팔(卷十八) 계당처사최공묘표(溪堂處士崔公墓表)에서 발췌하다

 

余嘗遊三山 여상유삼산

一至所謂溪堂 일지소위계당

訪諸賢遺跡 爲之俯仰太息 방제현유적 위지부앙태식

旣悲處士生而隱淪 歿 기비처사생이은륜 몰

又無文字可傳 우무문자가전

幾何而不知有斯人也 기하이불지유사인야

昔者逸民 作者之流 석자일민 작자지류

幸而得聖人之筆 행이득성인지필

表見於後世 표견어후세

今處士之高情遠韻 금처사지고정원운

豈必盡讓其人 기필진양기인

而顧寂寥乃爾 이고적요내이

余又惜其不遇也 여우석기불우야

 

내가 일찍이 삼산을 여행할 때에

한 번 계당 최흥림에게 가서 일컫기를

많은 현인들이 찾아와서 남긴 자취를 구부려 우러러 보고 크게 탄식하였다

이미 슬퍼하였던 것은 처사가 살아서는 숨어서 은거하고 죽어서는

가히 전할 만한 문자가 없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람이 있었던 사실조차 알 수 없었는데

옛날의 은거자와 글을 짓는 저자들이

다행히도 성인의 붓을 얻어서

후세에 바깥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지금 처사의 고상한 정취와 심원한 운치는

어찌 반드시 이런 사람들 사양함보다 더 하는가

돌아보니 이와 같이 적막하고 쓸쓸하니

나는 또 그 불우함을 안타까워한다

 

이 성어의 발췌문의 주인공 조선중기의 학자이며 은거자인 계당 최흥림(溪堂 崔興霖 1506~1581)선생은 을사사화(乙已士禍) 무렵 보은의 금적산(金積山)에 은거하며 경전과 성리학에 전심하면서 후학을 지도하며 지낼 때 대곡 성운(大谷 成運)선생은 종산(鍾山)에 거주하고 동주 성제원(東洲 成悌元)선생은 보은현감(報恩 縣監)이었으며 남명 조식(南冥 曺植)선생은 지리산(智異山)에서 살았던 관계로 이들은 서로 뜻이 맞아 도합(道合)하여 밤을 지새우며 학문을 토론 교유하였다고 전하며 현재 계당선생의 시문집인 계당유고(溪堂遺稿)에는 12수의 한시와 약간의 산문이 실려 있다고 한다

 

계당선생의 행장을 찾으니 소략하지만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함께 교유 토론하였던 남명 조식선생의 문집에서 남명선생이 계당선생에게 드리는 오언율시 증최현좌(贈崔賢佐)가 있어 반가움에 소개하고자 한다

김적연운동 봉군쌍체류 련군빈도골 한아설혼두(金積烟雲洞 逢君雙涕流 憐君貧到骨 恨我雪渾頭)벽수초경우 황화정득추 환산포백월 혼몽부유유(碧樹初經雨 黃花正得秋 還山抱白月 魂夢付悠悠)

금적산 안개구름 골짜기에서 그대 만나니 두 줄기 눈물 흘러라

뼈골까지 가난함이 가련하고 내 백설머리 휘날리니 한스럽도다

푸른 수풀에 첫 비 지나가고 노란 국화는 바로 가을을 만나니

산에 돌아와 밝은 달을 안고서 내 혼과 꿈을 오래도록 붙이네

 

이 한수의 시 안에 고상한 정취와 심원한 운치인 고정원운(高情遠韻)이 그대로 녹아나는 아름다운 시를 음미하며 계당선생과 남명선생이 서로 나눈 교분과 서로 생각하는 충우(忠友)를 가슴에 담으며 필자도 빗줄기 소리 굵어지는 장맛비에 더 고상한 뜻과 심원한 운치의 경지에 들고 싶어서 붓 들고 오늘의 성어 고정원운(高情遠韻)을 일필하다

 

 

桓紀 9217520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