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탁계론교 托契論交

백운선사 김대현 2020. 7. 7. 11:15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탁계론교 托契論交

 

밀 탁

맺을 계말할 론사귈 교

 

벗을 맺어 사귀고 말하다

의기투합한 절친한 친구사이를 의미한다

 

이 성어는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인 갈암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시문집 갈암집(葛庵集) 부록 제5권에 제문 성문하(祭文 成文夏)에서 발췌하다

 

虛往實歸 多士有所矜式 허왕실귀 다사유소긍식

豈意二豎之爲祟 竟至一老之不遺 기의이수지위수 경지일로지불유

嗚呼哀哉 自公錦里移居 오호애재 자공금리이거

久我漳濱臥病 不克自致 구아장빈와병 불극자치

孤負十年之心 獲遂所圖 고부십년지심 획수소도

又無一語而退 慨然當日爲恨 우무일어이퇴 개연당일위한

遂成千古之悲 嗚呼哀哉 수성천고지비 오호애재

托契論交 兩家好也 탁계론교 량가호야

三世揭阡 照後一字 삼세게천 조후일자

重於千金 所謂恩爾心而在子孫 중어천금 소위은이심이재자손

蓋以哭吾私而慟邦國 개 이곡오사이통방국

言不可盡 언불가진

傷如之何 嗚呼哀哉 상여지하 오호애재

 

빈손으로 왔다가 채워서 돌아가니 많은 선비들이 모범으로 삼은 바가 있었다

어찌 병이 빌미가 되어 한 노인이 더 살지 못하고 돌아가실 줄 알았겠는가

오호라 슬프도다 공이 금리로 거처를 옮기고부터

오래도록 나는 장빈에서 병석에 누워 스스로 궁구하여 이기지 못하였고

홀로 십여 년의 마음을 등지고 도모하던 바를 얻었으나

또 한마디 말도 없이 물러나니 개연히 당시를 한탄합니다

천고의 슬픔을 이루고 성취하니 오호라 슬퍼라

벗을 맺고 사귐을 말하자면 양가의 호의는

삼대의 무덤의 길에서 높이 후세에 비치는 글자 한 자가

천금보다도 중요하여 네 마음을 은혜로이 일으켜서 자손들에게 있게 하였으니

대개 우리는 개인이 곡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크게 우는 것을

말로는 다 하지를 못하니

상심이 어떠하겠습니까 오호라 슬퍼라

 

상기 발췌문은 벼슬과 영예를 멀리하면서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에 만족하며 몸소 청렴을 실천하신 청백(淸白)인으로 89세의 수를 누린 오음 성문하(梧陰 成文夏1638~1726)선생이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 1627~1704)선생 기일에 쓴 제문 중 일부이다

 

두 선생은 경상도 안동 영양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관계로 교류가 빈번하여 교분이 두터웠으며 특히 안동지역은 퇴계선생의 성리학 영향으로 학문의 성지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유학의 발달을 주도하고 그 역할을 한 선비들이 일일이 열거하기가 부족할 정도로 명현들이 많으며 두 선생 또한 이 지역의 선현들이이시다

 

이런 지역에서 태어나 서로 밀고 당기고 이끌면서 맺어진 탁계(托契)는 그 어떤 우정보다도 더 진하고 도타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절친한 사이에다 여기에 친구나 집안이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학문을 교류하며 논하고 사귄 정 론교(論交)가 합하여 탁계론교(托契論交)사이가 되면 절친함은 그 무엇으로 설명이 더 필요하랴

 

오음선생의 탁계론교(托契論交)의 정신을 이 필자도 받아드려 사심 버리고 오롯이 남 배려하고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허령하면 허령한 대로 즐기면서 장마 철 빗방울 소리에 먹 향기 풍기며 화선지 펼쳐놓고 문방사우와 맺은 탁계(托契)와 이제까지 붓 들고 먹과 화선지와 벼루와 다정히 사귀며 친숙하게 나누었던 필담(筆談)들 론교(論交)를 떠 올리며 탁계론교(托契論交)를 휘호한다

 

桓紀 9217517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