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극우륭현 極于隆顯

백운선사 김대현 2020. 7. 17. 10:58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극우륭현 極于隆顯

다할 극어조사 우클 륭나타날 현

 

지극히 높고 크게 나타나다 즉 현달하다

 

이 성어는 조선 중후기 문신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1629~1711)선생의 시문집인 약천집(藥泉集) 16권에 영의정 충정 오공 묘지명(領議政忠貞吳公墓誌銘)편에서 발췌하다

 

幼學壯行 古有其訓 유학장행 고유기훈

欲施抱負 孰無其願 욕시포부 숙무기원

然彼巖穴 草澤之遠 연피암혈 초택지원

迹有所阻 勢莫能展 적유소조 세막능전

至如我公 宜若無難 지여아공 의약무난

夙承師資 有美在蘊 숙승사자 유미재온

初際昌辰 大著華聞 초제창진 대저화문

中經艱險 琢磨愈煥 중경간험 탁마유환

晩歲登庸 極于隆顯 만세등용 극우륭현

輿情傾嚮 聖眷勤懇 여정경향 성권근간

身許任重 志切陳善 신허임중 지절진선

曾所講究 庶悉論建 증소강구 서실론건

事不如意 昔賢所歎 사불여의 석현소탄

 

어릴 때 배우고 장성해서 행함은 예전에 그 훈육함이 있었지

포부를 베풀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그 원함이 없겠는가

그리하나 저 깊은 산속의 선비는 민가와 초야에는 거리가 멀고

자취는 험한바가 있으니 행세를 펼 수 없도다

지극히 우리 공과 같은 분은 의당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일찍이 스승의 가르침 이어받아 아름다움을 간직하여 쌓고 있었으니

처음 좋고 번창한 때를 만나 화려한 명성이 크게 드러났으나

중간에 어려움을 겪고 지낼 때 갈고 닦은 탁마가 더욱 찬란하였네

늦게 만년 세월에 등용되어서 지극히 높고 크게 나타났으니

굴러가는 물정은 한쪽으로 쏠려가니 성상의 돌아보는 정성이 간곡하였지

몸으로는 무거운 직책 맡을 것을 허락하고 뜻은 좋은 말로 아뢰는 것이 절절했네

일찍이 문제를 궁리하고 찾아내는 것을 거의 모두 논하여 세우려 하였지만

일이 뜻과 같지 못하여 옛 선현들이 한탄한 바였네

 

이 성어의 발췌문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소치는 아해놈은 상기아니 일었느냐 / 재 넘어 사래긴 밧츨 언제 갈려 하나니 로 읊은 시조로도 유명한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16291711)선생이 쓴 묘지명이다

 

묘지명의 주인공 양곡 오두인(陽谷 吳斗寅1624~1689)선생은 벼슬 관직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정의와 절의를 굽히지 않았던 분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되자 이세화(李世華) 박태보(朴泰輔)등과 함께 반대 소를 올린 연유로 국문을 받고 의주로 유배도중 파주에서 돌아가셨으며 그해 복관되고 후에 충정공(忠貞公) 시호를 받고 덕봉서원(德峰書院)에 배향되신 선생은 참다운 선비의 절의(節義)와 지조(志操)를 뚜렷이 부각시킨 훌륭한 인격의 참 선비 중에 한분이시다

 

양곡선생의 훌륭한 절의와 성품을 대문장가인 선생의 눈에는 형님 같은 선배로 받아들이면서도 친구같이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 당시의 파란만장한 당파 싸움의 소용돌이에 잡고 빼앗기는 치열한 권력의 속성에서 절의를 지키는 성품은 진정한 선비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을 양곡선생은 실천하셨으니 약천선생의 붓 끝에는 절로 극우륭현(極于隆顯)이 보였으리라

 

참 선비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오늘날 지극히 높고 크게 현달하려는 극우륭현(極于隆顯)에만 욕심 부리는 얌치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진실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사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찾아서 묵묵히 사람의 할 일을 한다면 그는 필시 지극히 크게 나타나 극우륭현(極于隆顯)한 큰 선비가 되리라 믿으면서 화선지에 담는다

 

 

桓紀 9217527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