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선심명루 先深銘鏤

백운선사 김대현 2020. 7. 23. 11:06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선심명루 先深銘鏤

먼저 선깊을 심새길 명새길 루

 

먼저 가슴속 깊이 새겨두다

 

이 성어는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857~?)선생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권구(卷九)에 절서 주보 사공에게 보낸 글(浙西周寶司空)에서 발췌하다

 

司空念切憂忘 사공념절우망

事諧響應 사해향응

猥垂恩力 妙選書工 외수은력 묘선서공

所謂知臣者莫若聖君 소위지신자막약성군

成我者固須良友 성아자고수량우

有始有卒 念玆在玆 유시유졸 념자재자

彼雖未起雕鐫 피수미기조전

此已先深銘鏤 차이선심명루

今者干戈務擁 筆硯事疏 금자간과무옹 필연사소

不及別請他人 敬遵來命 불급별청타인 경준래명

唯望早成刊勒 유망조성간륵

實賴獎憐 실뢰장련

其碑詞同封呈上云云 기비사동봉정상운운

 

사공은 생각이 간절하여 근심거리를 잊어버리고

일이 모두 잘되어 메아리 같이 서로 호응하였고

외람되게도 왕의 은력이 드리우고 서공을 잘 선택하셨으니

이른바 신하를 알아주는 자는 성스러운 임금밖에 없었으며

나를 길러 주는 자는 모름지기 좋은 친구밖에 없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생각하는데

저쪽에서 비석에 조각하고 새기는 일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도

이쪽에서는 먼저 마음속 깊이 새겨두나니

지금은 간과의 직무가 복잡하여 붓 벼루를 가까이하는 일이 소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별도로 청탁할 것 없이 공경히 명하신 대로 따르오니

오직 다듬고 새기는 일을 빨리 마치기만을 바라오며

실로 가련하게도 장려해 주심을 믿고서

비문을 함께 봉하여 드립니다 운운

 

이 성어의 발췌문은 고운 최치원선생의 시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에서 가져왔는데 늘 이 문집의 제목이 궁금하던 차에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니 계원(桂苑)은 문장가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기 때문에 중원에 많은 문장가들이 모였으니 당나라 회남을 의미하는 것 같고 필경(筆耕)은 융막(戎幕) 즉 농부가 밭을 갈 듯이 오랑캐 움막에서 먹을 갈아 문필로 먹고 지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 계원필경(桂苑筆耕)이라 한다

 

역시 문창후의 생각은 범상하지가 않다 계원필경집은 당나라 회남절도사로 고변(高騈)의 휘하에서 지내면서 지은 1만여 수의 시문을 귀국 후 골라 정리하여 20여권의 고운선생이 편찬한 대표적인 저작물로 이 책에는 50수의 시와 다양한 사유와 함께 320편의 실용적인 글이 담긴 시문집으로 서문에 우리 동방에 문장이 나와서 글을 지어 후세에 전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운 선생으로부터 비롯된다 -중략- 공이 지은 글을 보면 왕왕 화려하면서도 들뜨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략- 이는 대개 맑은 물과 거친 삼베 같은 바탕 위에 단술의 맛과 화려한 옷감의 아름다움을 겸한 것이라고 연천 홍석주선생이 부친 극찬의 말씀이 이 문집의 귀중하고 소중함을 말해 준다

 

우리 선현들이 남긴 문집 옛 글월 안에는 우리의 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것을 들춰보고 우리들 가슴에 담고 살아가면서 삶의 잣대로 삼는 일을 누가 감히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결론이 다다르니 애가 타는 필자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선심명루(先深銘鏤)하는 마음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에 좋은 글들을 새기고 담은 것을 하나 둘 주머니 속에서 끄집어내듯이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로 풀어보자고 시작한 낭리담필이 벌써 100여 성어를 넘긴 것 같다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그치지 않는 우기 짙은 나날이 이어지는 아침이지만 창가에 들려오는 자연스런 빗방울 소리에 장단 맞춰 화선지 펼쳐놓고 먼저 가슴속 깊이 선심명루(先深銘鏤)를 새기듯이 붓으로 先深銘鏤를 쓴다

 

桓紀 921763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