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북경관방 北境關防

백운선사 김대현 2020. 8. 10. 11:21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북경관방 北境關防

북녘 북지경 경밋장 관둑 방

 

북방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요새 만리장성

 

조선 초의 문신이며 학자였던 인재 신개(寅齋 申槩 1374~1446)선생의 시문집인 인재집(寅齋集) 권이(卷二)에 함길도와 평안도 두 도에 성벽장성을 설치하기를 청하는 소(請咸平兩道設關疏)에서 발췌하다

 

謹按高麗史 근안고려사

德宗命平章柳韶 創置北境關防 덕종명평장류소 창치북경관방

起自西海濱古國內城界鴨綠江入海處 기자서해빈고국내성계압록강입해처

東跨威遠 興化 靜州 寧海 寧朔 雲州 동과위원 흥화 정주 녕해 녕삭 운주

安水 靑塞 平虜 寧遠 定戎 朔州等十三城 안수 청새 평로 녕원 정융 삭주등십삼성

東傅于海 延袤數千里 以石爲城 동부우해 연무수천리 이석위성

高二十五尺 廣如之 首尾凡三朔程 고이십오척 광여지 수미범삼삭정

自是東西蕃賊 不敢窺邊 자시동서번적 불감규변

至文宗時 爭來款塞 지문종시 쟁래관새

願置州縣 屬籍編戶者 殆近萬人 원치주현 속적편호자 태근만인

今中朝亦自山海衛 至遼東數千里之北 금중조역자산해위 지료동수천리지북

鑿塹築堡樹木 北胡不敢有窺覦之心 착참축보수목 북호불감유규유지심

而無入保騷擾 閭閻撲地 牛羊布野 이무입보소요 여염박지 우양포야

乞依中朝與高麗防胡之策 걸의중조여고려방호지책

自義州至慶源 起築長城 자의주지경원 기축장성

則可爲萬歲之利矣 칙가위만세지리의

 

삼가 고려사를 살펴보면

고려 덕종(1031~1034)은 평장사 유소에게 명하여 북쪽 변경에 관방을 설치하게 하였습니다

서해 바닷가 옛 국내성 경계에 압록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동으로 위원에 흥화 정주 영해 영삭 운주

안수 청새 평로 영원 정융 삭주 등

13성을 지나 동쪽 바다에 이르기까지 수천 리에 걸쳐서 돌로 성을 쌓았습니다

높이가 25자이고 너비도 그것과 같으며 머리서 꼬리까지 무려 석 달이나 걸리는 거리입니다

이로부터 동서의 오랑캐와 도적들이 감히 변경을 엿보지를 못하였으며

문종 때에 이르러서는 다투어 찾아와서 요새의 문을 두드렸고

주와 현을 설치하자 호적에 편입을 원하는 자가 거의 만 여명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중원조정에서도 역시 산해위로부터 요동에 이르는 수 천리의 북쪽으로

구덩이를 파고 둑을 쌓으며 나무를 심어서 북쪽 오랑캐가 감히 엿볼 마음을 가지질 못합니다

입보 할 때 떠들고 시끄러움이 없어지자 곳곳이 살림집이고 양 소가 들판에 가득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중원조정과 고려에서 실시하였던 오랑캐 방비책을 따르셔서

의주에서 경원까지 장성을 세우고 쌓는다면

즉 가히 만세대의 이익이 될 것입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인 상소문을 읽으면 의심이 생기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인재선생이 언급한 고려성을 우리는 교과서에서 천리장성으로 배웠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를 통일한 고려의 천리장성이 백두산 아래에 있다는 것은 이치적으로 맞지 않는 설명에 조선이 새로 성을 쌓자고 상소를 올린 성은 오히려 압록강과 두만강을 연결하는 소위 고려성보다 북쪽이다

 

조선은 고려의 땅 전부를 모두 국경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인재선생이 언급한 고려성은 아마도 만리장성이라고 보며 우리가 배운 천리장성은 고구려성 즉 신라백제 고구려 경계성벽이라고 보면 맞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그 이유는 높이가 25자이고 너비도 그것과 같으며 머리서 꼬리까지 무려 석 달이나 걸리는 거리라고 언급된 성벽의 규모는 바로 만리장성을 설명하는 말이며 다른 성벽은 이에 해당되는 성이 없기 때문인데 또 인재선생이 언급한 각 성의 지명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을까 싶다 원래 반도에 있었던 지명이 아니라 중원에 있었고 지금도 중원에 있는 지명인데 어느 때부턴가 중원에 있었던 지명이 반도에도 등장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말하는 것일까

 

예를 들면 원래부터 중원에 있던 안동이 어느 날 영가(永嘉)가 복주(福州) 고창(古昌)등등으로 불리다가 어느 때부턴가 안동으로 바뀌어간 것을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당연히 의문을 가지고 접근 할 수 있다고 보며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고 보질 않는다 왜냐면 우리 선현들이 남긴 문집들을 들여다보면 그것을 말해 주는데 북방의 방비를 위하여 설치한 요새 오늘의 성어 북경관방(北境關防)을 휘호하면서도 더욱 그 의문에 부채질 한다

 

 

桓紀 9217621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