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사기강개 辭氣慷慨

백운선사 김대현 2020. 8. 28. 10:08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사기강개 辭氣慷慨

말 사기운 기강개할 강분개할 개

 

말에 의기가 복받쳐 격앙되어 기운차다

의롭지 못한 원통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말이 격앙된 기운찬 목소리 모습을 의미한다

 

이 성어는 조선 고조 때 정3품 함경북도관찰사(咸鏡北道觀察使) 김노규(金魯奎 ?~1905)선생이 1903년 초에 완성한 북여요선(北輿要選)()권에 백두산 옛 강역에 대한 고찰(白頭舊疆攷)에서 발췌하다

 

高麗史曰 成宗癸巳 고려사왈 성종계사

契丹遣蕭遜寧將兵侵高麗 거란견소손녕장병침고려

聲言欲復高句麗舊地 성언욕부고구려구지

王欲送大臣詣丹營議和 왕욕송대신예란영의화

侍郞徐熙請自往 시랑서희청자왕

遜寧索還高句麗舊地 손녕색환고구려구지

熙曰 我國卽高句麗之舊也 故號高麗 희왈 아국즉고구려지구야 고호고려

何以謂還 辭氣慷慨 하이위환 사기강개

遜寧知不可屈 遂許和而退 손녕지불가굴 수허화이퇴

又曰 睿宗丁亥 우왈 예종정해

遣尹瓘 吳延寵率兵擊東女眞 拓地定界 견윤관 오연총솔병격동녀진 척지정계

築九城 英州 雄州 福州 咸州 宜州 吉州 公嶮鎭 平戎鎭 通泰鎭 축구성 영주 웅주 복주 함주

의주 길주 공험진 평융진 통태진

尹瓘使兵馬鈐轄林彦記于英州廳壁曰 윤관사병마검할림언기우영주청벽왈

東至于大海 西北介于蓋馬山 동지우대해 서북개우개마산

南接于定 長二州 山川之秀麗 土地之膏腴 남접우정 장이주 산천지수려 토지지고유

可以居吾民 而本高句麗之所有也 가이거오민 이본고구려지소유야

其古碑 遺跡尙有存焉 기고비 유적상유존언

高句麗失之於前 今上得之於後 고구려실지어전 금상득지어후

豈非天歟 詳見本記 기비천여 상견본기

 

고려사에 말하기를 성종 계사년에

거란에서 파견한 소손녕이 막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범하면서

고구려의 옛 지역을 회복하고자 한다라고 큰소리를 치니

왕이 대신을 거란 진영에 화의를 하고자 보내려 할 때

시랑 서희가 스스로 다녀오기를 청하였다

손녕이 고구려의 옛 땅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하자

서희가 말하길 우리나라는 즉 고구려의 옛 지역이다 그런고로 고려라고 칭한 것이다

무엇을 돌려 달라고 하는 것인가 말이 의기가 복받쳐 격앙되어 기운이 차서 완강함에

손녕은 가히 굴하지 않을 것을 알고 드디어 화의를 하고 물러갔다

또 말하기를 예종 정해년에

윤관과 오연총을 파견하여 군사를 이끌고 동여진을 공격하여 국경을 넓히고 국경을 정하고

아홉 곳에 영주 웅주 복주 함주와 의주 길주 공험진 평융진 통태진 성을 쌓았다

윤관이 병마검할 임언으로 하여금 영주의 관청 벽에 기록하도록 이르렀는데

동으로 큰 바다에 이르고 서북으로 개마산(백두산)을 두르고

남으로 정주와 장주 두주에 접해 있고 산천이 수려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가히 우리 백성들이 살 만한 곳이다 본래 고구려의 소유이며

옛 비석과 유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구려가 그전에 잃은 것을 금상(고려 예종)이 뒤에 찾았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라하겠는가 본기에 자세하게 보인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용당지(龍堂誌)의 편자 김노규(金魯奎)선생이 쓴 북여요선(北輿要選 1903)에 실린 내용이다

 

발췌문 북여요선 내용 중 상권에 청나라의 목극등(穆克登)과 함께 정계비를 백두산에 세우는데 직접 갔던 이의복(李義復)의 기행문을 비교하면서 조청의 정계비 설립처가 동일함을 들어 이미 그 당시에도 토문강(土門江)을 국경으로 주장하고 정계비의 내용을 검토하여 토문강이 결코 두만강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또 조청 양국 사이의 분쟁과 간도 및 두만강 연변에 사는 조선인들의 반응을 약술해서 기록함으로서 후손들에게 엄청난 일을 해 놓으셨던 선생은 조선후기 의릉참봉 함경북도관찰사를 지내신 분인데도 더 상세한 내력행장의 문헌을 찾지 못하여 아쉬우나 선생은 백두산정계비(白頭山定界碑)의 설명과 조선과 청의 국경과 간도의 영유권 문제 등에 관하여 쓴 북여요선을 남겨 놓음으로서 우리나라의 국경에 관한 경계를 짐작 할 수 있도록 한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말에 의기가 복받쳐 격앙되어 기운찬 사기강개(辭氣慷慨)의 태도는 요즈음처럼 코로나19로 어려운 난국에 또 헤이해진 국민들의 정신무장과 이 어려운 난국을 이용하여 자기들 주머니만 챙기려는 일부 몰지각한 기득 권력 형성층과 이익단체들의 기이한 행태에 정부가 취해 나아가야 할 하나의 강경기조 사기강개(辭氣慷慨)가 꼭 필요하지 아니할까 생각하며 화선지에 휘호하고 고이 낭리담필에 담아 놓는다

 

 

桓紀 9217710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