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재세리화 在世理化

백운선사 김대현 2020. 8. 27. 09:59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재세리화 在世理化

있을(살필) 세상 세디스릴 리(고칠)

 

세상을 살피면서 다스리고 교화시키다

 

이 성어는 조선후기의 문신인 문충(文忠)공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16291711)선생의 시문집인 약천집(藥泉集)제이십구(第二十九)권 잡저(雜著)편에 동사변증(東史辨證)에서 발췌하다

 

舊史檀君紀云 구사단군기운

有神人降太白山檀木下 유신인강태백산단목하

國人立爲君 時唐堯戊辰歲也 국인립위군 시당요무진세야

至商武丁八年乙未 지상무정팔년을미

入阿斯達山爲神 입아사달산위신

此說出於三韓古記云 차설출어삼한고기운

而今考三國遺事載古記之說 이금고삼국유사재고기지설

云昔有桓國帝釋 운석유환국제석

庶子桓雄受天符印三箇 서자환웅수천부인삼개

率徒三千降太伯山頂神壇樹下 솔도삼천강태백산정신단수하

謂之神市 위지신시

是謂桓雄天王也 시위환웅천왕야

將風伯雨師雲師 장풍백우사운사

在世理化 재세리화

時有一熊常祈于神雄 시유일웅상기우신웅

願化爲人 원화위인

 

오랜 옛날 역사 단군기에 이르기를

신인 하나님이 있었는데 태백산 박달나무 아래에 내려오셨다

나라 사람들이 추대하여 군주로 삼으시니 때는 당요 무진년(기원전 2333)이다

()나라 무정 8년 을미 일에 이르러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신이 되셨다

이 이야기는 삼한고기(三韓古記)에 이르는 말이다

이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살펴보니 삼한고기의 이야기를 실어놓기를

옛날에 환국(桓國)의 제석(帝釋)하나님이 있었는데

서자인 환웅(桓雄)하나님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서

3000명의 하늘식구 천자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셨으니

이곳을 일러 신시라 하며

이를 환웅하나님이라 하였다

마땅히 풍백과 우사와 운사를 거느리고

세상을 살피시면서 다스리고 교화시키셨다

이때 웅족의 추장이 항상 환웅하나님에게 빌면서

교화를 받아 참 사람이 되길 원하였다

 

이 성어는 익히 들어 온 말씀이지만 조선 숙종 때 소론의 거두셨던 문충(文忠)공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16291711)선생의 시문집인 약천집(藥泉集)제이십구(第二十九)권 잡저(雜著)편에 동사변증(東史辨證)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약천선생은 조선 효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정언 파직 이조참판 형조참판 대사성 형조판서 도승지 부제학 한성부좌윤 거제도와 남해 유배 도승지 대제학 병조판서 보사원종공신1(保社原從功臣一等)책록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으며 장희빈의 남매 장희재를 돕다가 노론과 유생의 공격으로 파직된 후 귀향하여 83세의 일기로 세상을 등지신 선생은 사후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 발췌문 단군편 마지막에 그것을 의심스러운 대로 전함은 혹 근사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기어전의 혹차근의(其於傳疑 或差近矣)]라고 정의하시면서 우리의 상고사를 기술하여 동사변증(東史辨證)을 남김으로서 후세인 우리들이 이 글을 보고 진위여부 판단을 할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록에 남겨둠으로서 역사적 사실이 명확하게 되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며 필자가 선현들이 남긴 기록들에서 우리의 상고사를 요망스럽다고 조정에서부터 전국적으로 이와 관련된 모든 서책을 우리 선현들의 손으로 찾아서 불살라 버렸다는 기록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아팠었는데 약천선생님의 마지막 정리 문구는 참으로 마음에 든다

 

삼성신 환인 환웅 환검천제께서 이 청구삼한에 남긴 홍익정신은 영원히 후세에게 물러주고 이어가며 펼쳐야 할 그 어떤 이념과 사상과 모든 종교의 종지위에 첫 머리인 삼라만상 인간최고의 홍익정신을 이 세상에 잘 살피면서 고루고루 다스리고 교화시켜나간다면 세상의 평화와 낙원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이곳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오늘의 성어 재세리화(在世理化)를 휘호하고 낭리담필에 담는다

 

 

桓紀 921779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