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囊裏談筆] 내수외양 內修外攘

백운선사 김대현 2020. 9. 2. 10:47

백운선사 김대현의 주머니 속 이야기 붓으로 풀어가는 [成語文集 囊裏談筆]

 

내수외양 內修外攘

안 내닦을 수바깥 외물리칠 양

 

안을 잘 다져 닦아놓고 바깥은 든든하게 물리치다

 

이 성어는 편자미상 대동야승 기축록하 황혁 찬(己丑錄下 黃赫 撰)에 병오년 10월일 별좌 오익창의 소(丙午年十月日別坐吳益昌疏)에서 발췌하다

 

今日聖上內修外攘之策 금일성상내수외양지책

敬天弭災之方 경천미재지방

無過於快釋冤鬱之一事而已 무과어쾌석원울지일사이이

伏願聖明垂察焉 복원성명수찰언

頃者殿下明日月之照 垂天地之仁 경자전하명일월지조 수천지지인

曾於竄逐廢錮之輩 並令原宥 증어찬축폐고지배 병령원유

而於崔永慶則至有中夜泣下之敎 特爲昭釋 이어최영경칙지유중야읍하지교 특위소석

一國臣民莫不感激 일국신민막불감격

而唯此數臣尙未蒙恩 이유차수신상미몽은

此人心之愈鬱 而公論之愈激也 차인심지유울 이공론지유격야

嗚呼玆前數臣湖南人也 臣等亦湖南人也 오호자전수신호남인야 신등역호남인야

數臣之罪 國人皆知冤枉 수신지죄 국인개지원왕

而耳目所及 莫切於臣等 이이목소급 막절어신등

臣等旣知其冤枉 而不達於聖明之下 신등기지기원왕 이불달어성명지하

則臣等之罪亦大矣 칙신등지죄역대의

 

오늘날 성상이 안을 잘 다져 닦아놓고 바깥은 든든하게 물리치는 책략과

하늘을 공경하고 재앙을 그치게 하는 방책들은

원통하고 막힌 것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하나의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엎드러 원하오니 성상께서는 굽어살펴보소서

근래에 전하께서 해달처럼 환한 빛을 밝히며 천지의 어진 은덕을 내리시사

일찍이 도망가고 쫒기고 갇혔던 무리들을 아울려 령을 내려 모두 용서하여 주시고

최영경은 밤중에 눈물을 흘렸다는 하교가 있고 특히 밝게 풀어주셨으니

한 나라 안의 신과 인민들이 감격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나

오직 이 몇몇 신하들은 아직도 은혜를 입지 못하였사오니

이로써 인심이 더욱 막히고 공론이 더욱 격렬 해졌습니다

아 이 앞에 몇몇 신하들은 호남 사람이며 신들도 또한 호남 사람입니다

몇몇 신하의 죄는 나라 안의 사람들 모두 원통함을 덮어쓴걸 압니다만

눈과 귀로 직접보고 들은 것은 신들보다 더 절절히 아는 자가 없사오며

신들이 이미 그 원통함을 덮어쓴걸 알고 있으면서 성상께 아뢰지 아니하면

신들의 죄 또한 큰 것이 옵니다

 

이 성어는 편자미상의 대동야승에 황혁선생이 찬한 기축록하권에 실린 내용으로 병오년 10월일 별좌 오익창의 소(丙午年十月日別坐吳益昌疏)의 일부분인데 이 발췌문의 원저자는 즉 오익창선생이시다

 

기축록(己丑錄)을 찬한 독석 황혁(獨石 黃赫 1551~1612)선생은 19세에 진사가 되고 그후 별시갑과에 급제하고 암행어사로 나주에서 큰 도적 김국보를 잡아 혁혁한 공을 세운 선생은 안타깝게도 46세의 짧은 삶을 사셨지만 저서로 독석집(獨石集)이 남아 있다

 

이 상소문은 쓴 사호 오익창(沙湖 吳益昌 생몰미상)선생은 23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생원이 된 후 백호 임제(白湖林悌 1549 ~1587)선생과 함께 선운산(禪雲山)에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하다가 선조 30년에 일본의 재침략인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피난민 수천명을 이끌고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장군을 도와 군량과 무기를 운반을 도운 공으로 찰방에 임명되고 이어 공조정랑에 올랐는데 정유재란때 일화로 원균이 참패하고 피난하는 선박들이 우리 군의 열세를 알고 도망가려 할 때 오익창선생이 우리 모두가 통제사 이순신을 돕지 않고 도망가면 왜적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통제사 이순신장군이 패하면 국토는 어육이 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느 곳에 가서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라고 호소하여 모두 함께 장군을 도와 공을 크게 세운 선생은 사후 무장의 죽산향현사(竹山鄕賢祠)에 제향되었다

 

발췌문안에 수우당 최영경(守愚堂 崔永慶 1529~1590)선생은 남명선생의 문인으로 학문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으며 여러 차례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더 이상사양하지 못하고 선조 17년에 교정청낭관으로 벼슬길을 시작하여 1589(선조 22) 정여립의 난이 있었을 때 강견의 무고로 투옥되어 서인 정철의 국문을 받다가 옥사하신 선생은 당시60세였다 3년 뒤 홍여순의 건의로 신원되고 대사헌에 추증되었으며 정철은 관직을 삭탈당하고 강계로 귀양을 가고 그후 선생은 덕천서원에 남명선생과 함께 배향되었고 진주 도강서당에 현재까지 후학들이 수우당선생을 추모하는 제사를 매년 415일 지내고 있다한다

 

오늘의 성어 안을 잘 다져 닦아놓고 바깥을 든든하게 침략하는 세력을 물리치다 라는 내수외양(內修外攘)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고 민족이 있고 나라가 있는 이상은 늘 지켜야 할 방위 태세일 것이다 이것은 비단 국가에만 준하는 것이 아니라 일개개인에게도 내수외양(內修外攘)을 다져야 한다고 믿으며 화선지에 휘호하고 낭리담필에 담아 놓는다

 

 

桓紀 9217715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