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핍찰원만 逼拶圓滿

백운선사 김대현 2020. 9. 15. 10:22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핍찰원만 逼拶圓滿

닥칠 핍들이닥칠(핍박할) 둥글 원찰 만滿

 

원만하게 서로 신속히 작용하다

 

이 성어는 조선조 성리학자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17111781)선생의 시문집인 대산집(大山集) 권이십이(卷二十二)에 이학보의 문목에 답함(答李學甫問目)에서 발췌하다

 

朱子曰 氣多則是理多 氣少則是理少 주자왈 기다칙시리다 기소칙시리소

理之與氣 自渾淪 리지여기 자혼륜

然是理之通貫內外 無大無小 연시리지통관내외 무대무소

則何嘗有多少之間哉 칙하상유다소지간재

 

無大無小者 渾然統體之全 무대무소자 혼연통체지전

或多或少者 隨物各具之用 혹다혹소자 수물각구지용

蓋通天下只是一理 개통천하지시일리

逼拶圓滿 핍찰원만

無分段 無形體 무분단 무형체

特氣有多少之異 특기유다소지이

而理之著見於此者 이리지저견어차자

隨其分數而有大小爾 수기분수이유대소이

其本然之全體 則未嘗息也 기본연지전체 칙미상식야

如日光在天 隨物普照 여일광재천 수물보조

由隙之有大小而光有多少 유극지유대소이광유다소

然本體之明 則曷嘗有加損哉 연본체지명 칙갈상유가손재

 

주자께서 기가 많으면 이도 많고 기가 적으면 이도 적다고 하셨는데

이 이와 기는 더불어 흐르는 물처럼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가 내외를 관통하여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다면

어떻게 일찍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큰 것도 없고 작은 것도 없다는 것은 흐르는 물소리처럼 몸 전체 전부를 말하며

혹 많기도 하고 혹 적기도 하다는 것은 사물에 따라 갖추어진 쓰임이다

대체로 온 천하는 하나의 이치로 통하는데

원만하게 서로 신속히 작용하여

나누어짐도 없고 형체도 없다

특히 기에는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다지만

이치에 붙어 드러나는 이것도

그 분수에 따라 크고 작음이 있을 뿐이다

본연의 전체는 잠시도 멈추지 않아서

마치 태양의 빛이 하늘에 있으면서 사물에 따라 두루 비추니

틈의 크고 작음에 따라 빛의 많고 적음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하나 본체의 밝음에 어찌 일찍이 더하거나 덜함이 있겠는가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후기 문신이면서 학자인 대산 이상정선생과 후산 이종수선생이 주자의 학설 성리학 중에 이기(理氣)에 대해 묻고 답하는 편지글을 대산선생 시문집인 대산집(大山集)에서 발췌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1711-1781)선생은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대표적 성리학자로 소퇴계(小退溪)라 불릴 정도로 출중한 선비로 알려진 선생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동생 이광정이 가르침을 청하자 일상 속에 묘한 진리가 있으니 일상을 떠나서 별다른 것은 구하지 말라.” 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공부를 점검하고 제자들과 학문에 대해 문답을 나누며 학자로서 참다운 학문을 실행했음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모습을 선생의 제자 김종섭과 류범휴가 선생의 일상과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기록해 남긴 고종일기(考終日記)에 전하며 선생의 약력은 1711년 안동 한산이씨 가문에서 출생하여 1724년부터 외조부 밀암 이재에게 가서 공부하고 1727년 장수황씨와 결혼하였으며 1731년 심경을 읽고 자경명을 지었으며 1735년 과거(대과) 합격하고 1747년 병조좌랑 1753년 연일현감 1760년 고운사에서 심경을 강론하고 1767년 고산정사 건립하였으며 돌아가신 후 1910년 문경(文敬)공 시호를 받았으며 1917년 고산서원 배향되셨는데 돌아가신 이듬해 사림 1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장례를 치렀다고 전하는 것으로 봤을 때 선생의 성품은 한마디로 대단하시지 아니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본다

 

원만하게 서로 신속히 작용하다라는 오늘의 성어 핍찰원만(逼拶圓滿)은 잘못 해석하면 도무지 무슨 뜻인지 헤아리기 어려운 한자성어인데 우리가 핍찰(逼拶)을 핍박하다라고 단정적으로 해석하면 성어의 해석이 꼬이게 되는 원인인데 머릿속에 이미 핍박이란 단어가 좋은 쪽 보다는 나쁜 쪽 즉 억압하다 조이다 억누르다 업박하다 라는 의미의 핍박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핍찰(逼拶)을 서로 급박신속하게 서로 조이고 어우러지다 라고 생각하면 핍찰원만(逼拶圓滿)은 원만하게 서로 신속히 작용하다라고 해석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자는 생각을 조금만 더 하면 더 재미있는 글자 문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재미있게 해석이 가능해 지기에 미워도 우리는 한자와 한문을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더 재미있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하며 핍찰원만(逼拶圓滿)을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728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