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미종곤순 美鍾坤順

백운선사 김대현 2020. 9. 23. 10:53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미종곤순 美鍾坤順

아름다울 미종 종땅 곤순할 순

 

아름다움이 온화한 땅에 모이다 즉 아름다움이 여인의 몸으로 모이다라는 의미이다

 

이 성어는 고려 말기의 학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12871367의 시문집인 익재란고(益齋亂稿)권팔(卷八)에 발올아찰연을 끝낸 뒤의 사표(孛兀兒扎宴後謝表)에서 발췌하다

 

謝表 사표

乾坤邈矣 敢期呼籲之聞 건곤막의 감기호유지문

草木微哉 忽致恩榮之沐 초목미재 홀치은영지목

感驚交至 蹈舞不知云云 감경교지 도무불지운운

體禹儉勤 躋湯聖敬 체우검근 제탕성경

遵祖宗之典禮 雖舊維新 준조종지전례 수구유신

擁廟社之休祥 於斯爲盛 옹묘사지휴상 어사위성

兼屈聽卑之鑑 克敦字小之仁 겸굴청비지감 극돈자소지인

眷言出日之邦 生我俔天之妹 권언출일지방 생아현천지매

美鍾坤順 遵母儀於六宮 미종곤순 준모의어륙궁

慶毓離明 固邦本於萬歲 경육리명 고방본어만세

於是降璿源之貴戚 馳玉節之重臣 어시강선원지귀척 치옥절지중신

陳飮食以賜歡 賁金繒而將意 진음식이사환 분금증이장의

旣醉以德 爲永好於舅甥 기취이덕 위영호어구생

不顯其光 想歆觀於夷夏 불현기광 상흠관어이하

臣敢不念其卵翼 報以粉糜 신감불념기란익 보이분미

專述職於箕封 每輸誠於華祝 전술직어기봉 매수성어화축

 

사표 임금의 은혜에 감사함을 적어 바치는 글

천지가 아득하니 감히 호소하고 청하여 들림을 기약했지만

미약한 이 초로가 문득 임금님의 은혜를 입었다

감사와 놀라움에 서로 춤이 나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다

우임금의 검소하고 부지런함을 본받았고 탕 임금의 성경을 오르길 힘쓰고

조종의 전례를 준수하고 행하여 옛 문장을 새롭게 하니

묘사에 드리운 아름다운 상서로움이 이에 번성하였으며

아울러 낮음을 헤아리고 들음에 굴하고 작은 어진 인을 도탑게 하고

해 뜨는 나라를 돌아보매 하늘의 자매 선녀 같은 여인을 낳았다

아름다움이 여인의 몸에 모이니 어미의 도리는 육궁에 따랐으며

태자를 낳은 경사가 났으니 나라의 근본을 만세에 굳건하게 하였다

이에 황실의 귀한 인척관계를 내리고 옥절의 중신을 보내서

음식을 베풀어 기쁨을 하사하고 금과 비단을 꾸미어 뜻을 나타내었다

이미 덕에 취했고 영원히 외삼촌과 조카의 호의를 위한 것이다

그 빛이 드러나지 않겠는가 남방 오랑캐가 흠모하고 볼 것이다

신이 감히 고이 길러준 은혜를 생각하며 몸이 부셔지도록 그 공을 갚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동국삼한에서 맡은 직무를 다하여 매양 화축의 정성을 보내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이색선생이 그의 묘지명에 도덕의 으뜸이요 문학의 종장이라(道德之首 文章之宗)이라고 극찬을 한 고려 후기 문신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선생이 고려황실 황후가 개최한 연회에 참석한 후 올린 사표에서 발췌를 하였다

 

익재선생은 1301년 성균시에 1등 합격하고 과거에 연이어 합격하고 관직벼슬길에 오르면서

1314년 충선왕 때 원나라 연경에 만권당에서 유학 생활 중 유명한 한족 문인들과 교우하고 학문의 견문을 넓혔으며 1318년에는 충선왕이 절강성의 보타사에 행차할 때 시종하고 1323년 유배된 충선왕을 만나기 위해 감숙성의 타마사까지 다녀왔으며 이후 충선왕의 유배로 원나라 생활이 끝나고 충선왕의 방환운동도 벌여서 입성책동도 막아 내고 충선왕의 거처도 티베트에서 타마사로 옮기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1339년 충혜왕이 조적의 난으로 인해 원나라에 붙잡혀 갈 때 다시 복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이때의 활동으로 인해 두문불출하게 되었고 이 기간에 유명한 역옹패설을 저술하였으며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고 판삼사사에 임명되면서 다시금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여러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며 충목왕 사후 원나라에 있던 왕기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1351년 원나라 순제에 의해 충정왕(忠定王)이 폐위되고 왕기가 고려 국왕 공민왕(恭愍王)으로 봉해지고 원나라에서 귀국길에 오른 공민왕은 그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진사대부들의 수장격인 이제현을 섭정승 권단정동성사(攝政丞權斷征東省事)에 임명하고 1356년 기철을 숙청하는 반원운동이 벌어지자 문하시중이 되어서 사태를 수습하다가 이듬해에 치사하고 국정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해 개경이 함락 당하고 공민왕이 상주로 피난 갔을 때도 왕을 배알하고 호종하였는데 선생은 1367(공민왕 16) 세상을 떠났는데 사후 공민왕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고려 말기의 암울한 역사의 산 증인인 선생의 생애를 대략 찾아보았다 [나무위키 참조]

 

아름다움이 온화한 땅에 모이다 즉 아름다움이 여인의 몸으로 모이다 라는 오늘의 성어 미종곤순(美鍾坤順)을 읽으면서 가정이든 국가이든 집안의 안주인이 온화한 땅처럼 덕성과 성품을 지니면 더 많은 화복의 은총이 모이고 그 모여 뭉쳐진 내공을 태아 보육뿐만이 아니라 아이와 남편과 가정에 실행하면 집안과 사회와 국가는 안온하여 더욱 강력한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바로 모성의 덕이라 믿어보며 미종곤순(美鍾坤順)에 방해되는 거추장스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사람답지 않을까 생각하며 사람이 사는 세상 진정한 세상을 위해 약속이나 한 듯이 붓 들어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미종곤순(美鍾坤順)을 담는다

 

 

桓紀 921787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