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가천무의 可薦無疑

백운선사 김대현 2020. 9. 25. 09:35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가천무의 可薦無疑

옳을 가천거할 천없을 무의심할 의

 

가히 추천하는데 의심할 필요가 없다 즉 믿고 추천하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미이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선생의 시문집인 성호선생사설(星湖先生僿說) 권십이(卷十二)에 복숭아를 천거하다(薦桃)에서 발췌하다

 

余嘗至人家外桃熟 時當俗節 여상지인가외도숙 시당속절

主人問曰 桃亦可薦廟乎 주인문왈 도역가천묘호

余謂 家語孔子言 果品有六 여위 가어공자언 과품유육

桃爲下 祭祀不用 도위하 제사불용

然饋食之籩 棗栗桃乾橑榛實 연궤사지변 조율도건료진실

則桃爲祭用 古禮然也 家語之說未可曉 즉도위제용 고례연야 가어지설미가효

又加籩之實 蔆芡栗脯 蔆者芰也 우가변지실 릉검율포 릉자기야

而屈到嗜之 遺言薦祭 이굴도기지 유언천제

其子建以爲非禮而去之 기자건이위비예이거지

意者楚國之定禮有然者 非謂先王之典亦不用也 의자초국지정예유연자 비위선왕지전역불용야

桃亦魯國之所不薦 而以黍雪桃 도역노국지소불천 이이서설도

故聖人擧時俗爲言 其意蓋曰 고성인거시속위언 기의개왈

今也祭享之所不薦 而反以貴雪賤云爾 금야제향지소불천 이반이귀설천운이

又如周頌鰷鱨鰋鯉以享以祀 우여주송조상언리이향이사

唐人以國姓同音謂鯉爲赤鯶公 食者杖六十 당인이국성동음위리위적혼공 식자장육십

後人因成俗不以薦 此類何可悉遵 후인인성속불이천 차류하가실준

今人所種桃 卽果之美品 可薦無疑 금인소종도 즉과지미품 가천무의

 

내가 일찍이 민가에 이르러 집밖에 복숭아가 잘 익고 있는데 때는 세속의 명절이었다

주인이 묻기를 복숭아도 사당에 올려도 되느냐

나는 대답하길 가어에 공자가 과일의 품종이 여섯 가지가 있다

복숭아는 하품이 되어서 제사에 쓰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제기에 올리는 음식에는 과일이 대추 밤 복숭아 마른매실 개암열매 등이다

즉 복숭아가 제사상에 올려도 되는데 옛날에도 그렇게 했으니 가어의 말은 이해가 아니된다

또한 제기상에 오르는 과일은 마름 연밥 밤 포 등 마름은 물풀이다

굴도가 그것 마름을 좋아하고 잘 먹었기에 마름을 제사상에 쓰도록 유언을 했는데

그 아들 건은 예가 아니라고 쓰지 않았다

이것도 초가 정한 예법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선왕의 법전에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

복숭아 또한 노나라에서 쓰지 않았는바 이 좋은 복숭아를

성인께서 세속을 들어 말한 것이니 대개 그 뜻을 말하면

지금의 제사에 쓰지 않는 것은 도리어 귀하게 여겨 천대함을 깨끗하게 해준 말인 듯하다

또 주송에 보면 피라미 자가사리 메기 잉어로써 향사를 지낸다 했다

당은 이가 국성과 동음이고 이를 적혼공이라 하고 잡아먹는 자는 60대 곤장 벌을 주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로 인해 풍속이 되어 제사에 쓰지 않은 이 유례를 무엇 때문에 다 따를까

지금 심는 복숭아는 과일 중에도 아름다운 품종이니 제사에 쓰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선생의 시문집인 성호선생사설(星湖先生僿說) 권십이(卷十二)에 복숭아를 천거하다(薦桃)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성호선생은 본관은 여주이씨이며 대사헌을 지낸 이하진(李夏鎭)의 아들이고 실학자 반계 유형원선생과는 외6촌 동생이 되는데 생전에 한 차례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알려져 있으며 섬계 이잠(剡溪 李潛1660~1706)선생과 송곡 이서우(松谷 李瑞雨1633~1709)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숙종 31(1705) 증광과에 합격하였으나 그의 형 섬계 이잠선생이 당쟁으로 희생된 후 관직을 사양하고 학문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하면서 홀로 학문 연구에 진력하다 미수 허목과 부 매산 이하진(梅山李夏鎭)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반계 유형원선생 등을 사숙하여 이후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루었는데 영남 남인과 다르게 중앙에서 벼슬을 하고난 후 생활 근거지를 서울 주변 경기 일대로 옮긴 근기(近畿)지방의 남인 학파로 경세치용의 학풍을 특색으로 하는 이 근대남인의 최대 학파인 성호학파를 형성하였으며 영조는 선생의 명성을 듣고 영조 3(1727)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으로 임명했으나 사양하고 저술에 힘쓰는 한편 학문 연구와 후학 교육에 전념하여 안정복 윤동규 신후담 이중환 등을 배출하였고 그의 학통은 채제공 정약용 이가환 이현일 등으로 이어졌으며 안정복의 동사강목 편찬을 후원하며 자료를 구해주는 등의 도움을 준 선생은 남인의 여러 학파들의 마지막 공동 조상으로서 후세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셨다[위키백과 참조]

 

성호선생의 천도를 읽고 필자는 참으로 고지식하게 살았지 않았나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하나만 알고 둘은 잘 모르는 좁은 식견에 그 하나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큰소리치고 살았으니 한가위 대보름 추석명절을 앞두고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올해부터는 제사상에 감놔라 대추놔라 라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이든 아주 메운 쏘가리메운탕이든 아귀찜이든 정성을 다해서 올리면 그것이 최상이라고 일러 줄 참이다

 

가히 추천하는데 의심할 필요가 없다 즉 제사에 쓰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미의 오늘의 성어 가천무의(可薦無疑)를 휘호하면서 충효는 물질의 중요성보다 성심과 정성이 먼저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추석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든 된장찌개 김치찌개를 올리든 그 모든 것은 그 집안의 뜻에 의해 정하고 행하면 그것이 곧 최상의 제사상이 되고 제례가 된다는 사실을 설파하면서 가천무의(可薦無疑)를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89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