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정기호주 精氣互注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19. 10:5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정기호주 精氣互注


쓿은 쌀 정精 기운 기氣 서로 호互 물댈 주注

정신과 기운이 서로 융합되다

이 성어는 조선 숙종(肅宗) 때 학자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의 시문집인 농암집(農巖集) 권이십일(卷二十一)에 유명악과 이몽상 두 사람의 동유시 서문(兪命岳 李夢相 二生東游詩序)에서 발췌하다

詩歌之妙 與山水相通 시가지묘 여산수상통
夫淸迥峻茂 奇麗幽壯 부청형준무 기려유장 
其爲態多變 其爲境難窮 기위태다변 기위경난궁 
望之而神聳 卽之而心融 망지이신용 즉지이심융 
此山水之勝也 而詩歌亦然 차산수지승야 이시가역연 
故二者相値 而精氣互注焉 고이자상치 이정기호주언 
景趣交發焉 경취교발언 
是固有莫之然而然者矣 시고유막지연이연자의  
然造化無全功 人才有偏蔽 연조화무전공 인재유편폐 
故宇內之爲山水者 不能皆勝 고우내지위산수자 불능개승 
而人之於詩歌 亦鮮造妙 이인지어시가 역선조묘 
是以踐常境 而求奇雋之語 則無助 시이천상경 이구기준지어 즉무조 
操哇音 而寫瑰麗之觀 則未肖 조왜음 이사괴려지관 즉미초 
是二者又交相負也 시이자우교상부야 
而人之負山水也顧多 이인지부산수야고다 

시가의 오묘함은 산수와 서로 통한다
대저 청명하고 광활하며 드높고 무성한 것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그윽하고 장엄함이 
그 모습이 변화가 많고 그 경계의 끝을 알기가 어렵다
멀리 바라보면 정신이 새로워지고 곧 가까이가면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
이는 산수의 우수한 점인데 시가 또한 그렇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가 서로 만나면 정신과 기운이 서로 융합되고 
경치에 따라 흥취가 서로 발하는 것이니 
이는 진실로 그렇게 안하고 있어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조화에는 온전한 공이 없고 사람의 재주는 한쪽으로 치우쳐 채워져 있기에
고로 우주 안에 산수가 다 우수하지 못하듯 
사람도 시가를 오묘한 경지에 이르게 짓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항상 밟고 서서 보는 경치에서는 기발한 좋은 말을 구하려면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음란한 가락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묘사하려면 그럴듯하게 하긴 어렵다
이 두 가지 경우는 또 산수와 사람이 서로 등져버리는 것인데
사람이 산수를 등져버리는 경우가 돌아보니 더 많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숙종(肅宗) 때 학자이신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이 김창흡선생의 문인인 유명악과 이몽상 두 사람의 금강산 유람시 즉 동유시 서문(兪 命岳 李 夢相 二生東游詩序)을 쓴 글에서 발췌하였는데 유명악(兪命岳1667~1718)선생은 본관이 기계(杞溪 포항)이고 자는 군사(君四) 유대의(兪大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참의 유성증(兪省曾)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유철(兪㯙)이며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김창흡(金昌翕)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워 문명(文名)을 떨쳤으며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송시열(宋時烈)이 화를 당하자 송시열을 변호하는 소를 올렸으며 1694년 갑술옥사로 송시열이 신원(伸寃)되자 벼슬에 뜻을 두고 1705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된 후 의금부도사가 되고 지방의 수령을 거쳐 청주목사가 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저당 이몽상(樗堂 李夢相1530∼?)선생은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휴(景休) 할아버지는 종실 오성수(烏城守) 이신손(李神孫)이고 아버지는 풍양령(豊陽令) 이춘(李春)이며 부인은 남상덕(南尙德)의 딸이고 아들은 이정신(李廷臣)이다 선생은 음사로 관직에 나아가 인의(引儀)와 감찰(監察) 등을 지냈으며 임실현감으로 재직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사(壯士)를 모집하여 왜병이 영남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배치하여 이에 대비하였고 녹봉(祿俸) 수백 석을 내어 사졸들의 군량미로 충당하였으며 또한 의사(義士) 박순달(朴順達)로 하여금 향곡(鄕穀) 수천 석을 모으게 하여 금산에 주둔한 고경명(高敬命)의 진영에 보내 사졸들을 격려하고 순찰사 권율(權慄)이 저당선생의 공로를 조정에 아뢰어 선조가 의자를 하사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발췌문을 쓰신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은 현종 10년(1669)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에 출사하고 이어 병조좌랑 사헌부지평 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 이조좌랑 함경북도병마평사 이조정랑 집의 동부승지 대사성 병조참지 예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왕명에 의해 송시열(宋時烈)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교정하였으며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 포천)에 은거하였으며 그 후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 예조참판 홍문관제학 이조참판 대제학 예조판서 세자우부빈객 지돈녕부사 등에 임명되었지만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만 오로지 전념하신 분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정신과 기운이 서로 융합되다의 오늘의 성어 정기호주(精氣互注)는 우리들에게 특히 예술을 하는 분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기운의 융합일 것이다 정신과 기운이 서로 물을 대어주듯 섞여 융합하면 새로운 기운이 발로하여 붓을 든 자는 마치 신의 필처럼 움직일 것이고 글은 쓰는 문장가는 한 점 교정을 볼 필요가 없는 멋진 대문장을 엮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발췌문의 서두에 시가의 묘함은 산수와 서로 통한다라고 하셨는데 산(山)은 중후(重厚)하여 변하지 않으므로 의리(義理)를 좋아하는 어진 자와 같아서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고 물은 막힘이 없이 흘러가므로 사리(事理)에 통달한 지혜로운 자와 같기에 물을 좋아하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묘함이 시가의 묘함과 같아서 서로 상통한다 하셨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늘 정신과 기운이 서로 융합되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주길 바라면서 정기호주(精氣互注)를 휘호하고 담는다

桓紀 9217년 10월 5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