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필정갈력 畢精竭力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24. 10:20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필정갈력 畢精竭力


마칠 필畢 쓿은 쌀 정精 다할 갈竭 힘 력力

마칠 때까지 정신과 힘을 다 쏟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 류희춘(眉巖 柳希春1513~1577)선생의 시문집인 미암선생집(眉巖先生集)권십칠(卷十七)에 경연일기(經筵日記)1월(正月)에서 발췌하다

又陳中廟朝名臣金安國 우진중묘조명신금안국 
博學稽古 愛人好善 박학계고 애인호선 
盡心國事 畢精竭力 진심국사 필정갈력 
嘗於正德戊寅 以使赴京 상어정덕무인 이사부경 
收買朱子大全 語類 수매주자대전 어류 
伊洛淵源等性理諸書 이락연원등성리제서 
因作詩云 滿載光風兼霽月 인작시운 만재광풍겸제월 
東歸應有契心人 동귀응유계심인 
旣來啓請印出 未及施行 기래계청인출 미급시행 
而己卯士林敗 安國廢棄十九年 이기묘사림패 안국폐기십구년 
至丁酉冬 敍復還朝 지정유동 서부환조
逮爲校書提調 遂印出流布 체위교서제조 수인출류포 
其爲承文提調也 勸督肄習官 기위승문제조야 권독이습관
極其勤悉 其主文也 극기근실 기주문야 
於事大表文 不委知製敎 而必自製 어사대표문 불위지제교 이필자제 
其或一詞未安 至夜不能寐 必求其當 기혹일사미안 지야불능매 필구기당 
故華人以表辭 誠切稱歎 고화인이표사 성절칭탄 

중묘조(중종) 때의 명신 김안국은 
두루 널리 학습하고 옛 도를 자세히 살펴서 공부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선을 좋아하여 
나랏일에 모든 마음을 마칠 때까지 정신과 힘을 다 쏟았다
일찍이 정덕(명무종의 연호) 무인중종13년(1518)에 사신으로 북경에 나아갔을 때 
주자대전과 주자어류와
이락연원등 성리학에 관한 모든 서적을 사 들여서 
이로 인하여 시를 지으니 광풍 겸 제월을 가득히 싣고서 
동으로 돌아가면 응당 마음에 맞는 이 있으리라 했다
이윽고 돌아와 임금에게 출판하기를 계청했는데 미처 시행에 이르지 못하고
기묘 중종14년(1519)에 사림들이 어려움에 당해 김안국은 폐기된 지 19년을 지난 후에 
정유 중종32년(1537) 겨울에 다시 서용되어 조정으로 돌아와 
교서 제조가 되어 드디어 인출하여 유포하였다
그가 승문원 제조가 되어서는 이습관들을 바로잡아 권하고 
지극히 근실했으며 주문(대제학)이 되어서는 
사대에 관한 표문을 지제교에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자신이 지었으며 
그 혹 한 마디라도 온전치 못하면 밤에도 자지 않고 반드시 마땅한 말을 찾아내었다
그런고로 명나라 사람들이 표문의 글을 성실하고 간절함에 칭찬하고 감탄했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 류희춘(眉巖 柳希春1513~1577)선생이 조정에서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던 경연(經筵)일을 일기형태로 기록한 경연일기(經筵日記)1월(正月)에서 발췌하였는데 대표적인 경연일기(經筵日記)는 명종 20(1565)년에서 선조 14(1581)년까지 17년 간 동안 경연에서 강론한 내용을 적은 책 3권 3책으로 된 율곡 이이(栗谷李珥)선생의 경연일기(經筵日記)와 1743년부터 1781년까지 경연 시강관이 임금에게 강론한 내용을 수록한 책인 경연일기(經筵日記)가 전한다

임금에게 경사(經史)를 가르쳐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실제로는 왕권의 행사를 규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일을 하였으며 경연(經筵) 경악(經幄) 또는 경유(經帷)라고도 하며 기원은 한나라 때 유학자들이 황제에게 오경을 강의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당나라 때는 한림원에 시강학사와 시독학사(侍讀學士)를 두는 등 어전 강의가 제도화되었으며 고려 때 예종이 경연을 처음 도입했으나 그리 활발하지 못하였는데 고려시대에 경연이 부진했던 원인은 대체로 불교가 성하고 유학이 위축되었던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숭유 정책을 실시하면서 경연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태조는 경연청을 설치했고 정종과 태종도 각각 경연을 실시하였었으며 세종은 즉위한 뒤 약 20년 동안 매일 경연에 참석했으며 집현전을 정비해 경연관을 강화하였고 특히 성종은 재위 25년 동안 매일 세 번씩 경연에 참석 여러 정치 문제를 협의하기도 해 경연이 바야흐로 정치의 심장부가 되기도 하였으며 경연은 세조와 연산군에 의해 폐지되기도 했으나 곧 부활되어 고종 때까지 존속하였는데 강의 교재는 사서와 오경 및 역사책인 자치통감 자치통감강목이 기본서였으며 그 밖의 교재로 성리대전 근사록 소학 심경 대학연의 정관정요 국조보감 등도 사용하였으며 강의는 한 사람이 교재의 원문을 음독 번역 설명하고 나면 왕이 질문도 하고 다른 참석자들이 보충 설명을 하였고 강의가 끝난 뒤에는 정치 문제도 협의하였으며 특히 대신과 대간이 참석한 조강은 협의체로서의 기능이 컸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마칠 때까지 정신과 힘을 다 쏟다 라는 오늘의 성어 필정갈력(畢精竭力)은 나랏일만이 아니라 집안 일 사회 일 자신의 삶 모든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정성과 힘을 부지런히 온 정력을 다 쏟는다면 아니 못 이룰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조물주인 신이 인간을 만들 때에 인간의 두뇌는 신과 같은 뇌구조로 만들어 주었는데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조물주가 물러준 뇌의 기능 중에 극히 일부분만 사용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 인간은 그 자체를 모르고 스스로 머리가 나쁘다 할 수 없다라고 미리 지레짐작으로 단정해 버리는 우를 범하지만 그런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뇌를 십분 잘 활용하여 필정갈력(畢精竭力)해 나간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필정갈력(畢精竭力) 이 성어를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겨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桓紀 9217년 10월 10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