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훼예흔척 毁譽欣戚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26. 10:4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훼예흔척 毁譽欣戚


헐 훼毁 기릴 예譽 기뻐할 흔欣 겨레 척戚(발췌문에서는 슬퍼할 척)

비방과 칭찬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학자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1532~1587)송암집(松巖集)에 송암집속집서문 김굉(松巖集續集序 金㙆)에서 발췌하다

今以先生閑居之篇 獨樂之曲觀之 금이선생한거지편 독악지곡관지
則先生之所隱 度斟量於出處行藏之間者 즉선생지소은 도짐량어출처행장지간자 
蓋已有素定於胸中矣 개이유소정어흉중의 
是以 超然卷懷於荒閑寂寞之濱 시이 초연권회어황한적막지빈 
而風月爲襟期 猿鳥與起居 이풍월위금기 원조여기거 
詩酒以自娛 樂天放 시주이자오 악천방 
甘隱淪 而漠然若無意於當世 감은륜 이막연약무의어당세 
雖以朝家之徵招 知己之推轂 而竟不能動 수이조가지징초 지기지추곡 이경불능동 
此當世之人 莫不慕其風 차당세지인 막불모기풍 
欽其操 而以淸高之名歸之 흠기조 이이청고지명귀지 
然先生亦何嘗有意於淸高哉 연선생역하상유의어청고재 
蓋亦卽其所居之位 樂其日用之常 개역즉기소거지위 악기일용지상 
而觀物巷春 點易松窓 이관물항춘 점역송창 
仁智之樂 鳶魚之趣 인지지악 연어지취 
蓋有浩然而不窮者 개유호연이불궁자 
而彼世之所謂 富貴貧賤 이피세지소위 부귀빈천 
毁譽欣戚 自不能以嬰其懷 훼예흔척 자불능이영기회

지금 선생의 한거편과 독락지곡을 보면
선생의 은거하는 바를 출처와 행장의 사이에 법도를 짐작하여 헤아릴 수 있으니 
대개 이는 마음속에 이미 원래부터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초연히 한적하고 적막한 물가에서  
풍월로써 마음을 기약하고 원숭이와 새들과 함께 지내며 
시와 술로써 스스로 즐거워하며 하늘이 내려준 그대로를 만족하며 
은둔을 달게 즐기며 당시의 세상사엔 막연히 뜻이 없는 것 같았다
비록 조정의 부름을 받고 지기들의 천거가 있었지만 끝내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것이 당시의 사람들이 그의 풍모를 사모하고 
그의 지조를 흠모하여 청고하다는 이름으로 귀결시킨 까닭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선생 역시 어찌 일찍이 청고에 뜻이 있었겠는가
대개 또 즉 그 거처할 위치에서 일상생활을 즐기며 
시골의 봄 거리를 관찰하고 소나무 창가에서 주역을 공부하며
인과 지의 즐거움과 솔개와 물고기의 흥취가 
대개 도도하여 다함이 없었으니 
저 세상이 일컫는바 부귀와 빈천
비방과 칭찬 기쁨과 슬픔에 스스로 그 마음을 두지 않으셔도 되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학자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1532~1587)의 시문집인 송암집서문(松巖集續集序)을 귀와 김굉(龜窩 金㙆 1739~1816)선생이 쓴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귀와 김굉선생은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야(子野) 호는 귀와(龜窩) 김언겸(金彦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수천(金壽天)이고 아버지는 생원 김광헌(金光憲)이며 어머니는 남이로(南以老)의 딸이고 이상정(李象靖)선생의 문인이며 영조 49년(1773) 사마시를 거쳐 정조 1년(1777)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81년에 스승 이상정이 죽자 스승의 유문(遺文)을 정리하였으며 1787년 전적(典籍)을 거쳐 지평 정언을 역임하였고 단양군수에 제수되었으며 세자시강원문학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며 재직 시에는 서리(胥吏)를 엄단하고 청렴하여 군민들 사이에 명성이 높았으며 문학에 남달리 뛰어났고 필법이 높아 능히 한 체제를 이룰 만하였다고 전한다
발췌문의 주인공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1532~1587)은 명종4년(1549)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면서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 김성일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으며 집경전참봉 내시교관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56세에 돌아가셨으며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고 선생은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으며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비방과 칭찬,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 오늘의 성어 훼예흔척(毁譽欣戚)을 선택한 것은 우리의 인생사가 극과 극의 대비 속에 늘 두 극을 넘나들기도 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서 행복하게 삶을 잘 살아가는 경우도 있고 또 나쁜 쪽으로만 치우쳐서 불운의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는데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듯이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당에서 먼저 남을 헐뜯으려 하지 말고 남의 좋은 점을 찾아서 칭찬하고 길러주면 나쁜 짓일 일삼다가도 스스로 잘못 살고 있음을 깨닫고 뉘우쳐서 선한 행동을 하니 세상은 순기능으로 흘러가지만 남을 비방하고 헐뜯으면 그 당사자 또한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고 더 심하게 깎아내릴 보복을 일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살림이 넉넉하다고 으스대지 말며 없다고 너무 비굴하지 말라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욕심이 더 생기고 즐거움도 많은 만큼 근심걱정도 더 많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니 많이 있을 때 적선을 밥 먹듯 베풀어야 근심걱정이 덜어질 것이며 없다고 낙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곳을 찾아서 열심히 살다보면 차곡차곡 쌓이는 행복한 즐거움이 있는 자들보다 더 값질 것이다 서로 비방하지 말며 서로 칭찬하고 서로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면서 이 세상을 함께 산다면 삼성신이 물러준 이 세상은 광명하리라 믿어지며 훼예흔척(毁譽欣戚)을 휘호하고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년 10월 12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