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섬민위엽 贍敏煒燁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30. 10:2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섬민위엽 贍敏煒燁


넉넉할 섬贍 재빠를 민敏 빨갈 위煒 빛날 엽燁

넉넉하고 재빠르며 찬란하게 빛나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 대학자인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의 시문집 농암집(農巖集)권이십팔(卷二十八)에 효자 증 이조 참판 성균관 진사 김공 묘갈명 병서(孝子贈吏曹參判成均進士金公墓碣銘 幷序)에서 발췌하다

我曾伯祖右議政文忠公仙源先生 아증백조우의정문충공선원선생 
以崇禎十年丁丑 殉義于江都 이숭정십년정축 순의우강도 
國家旌其閭曰忠臣之門 국가정기려왈충신지문 
文忠公有曾孫 曰進士贈吏曹參判諱盛遇 문충공유증손 왈진사증리조참판휘성우 
與其叔父德山公壽民 여기숙부덕산공수민 
皆以孝沒 皆旌閭 개이효몰 개정려 
君子歎曰 懿哉 忠臣之世 其有孝子也 군자탄왈 의재 충신지세 기유효자야 
孰謂芝醴無根源哉 숙위지례무근원재 
公字際而 文忠公季子吏曹參判諱光炫之孫 공자제이 문충공계자리조참판휘광현지손 
德山公兄水原府使諱壽仁之長子 덕산공형수원부사휘수인지장자 
生美晳明粹 飭躬莊而與人仁愛 생미석명수 칙궁장이여인인애 
臨事持論 斬斬不苟 림사지론 참참불구 
逮文忠公時 甫六七歲矣 文忠公特奇愛之 체문충공시 보륙칠세의 문충공특기애지 
雖他人見者 亦皆以爲眞文忠公孫也 수타인견자 역개이위진문충공손야 
及長 好讀書務記覽 爲文辭 급장 호독서무기람 위문사 
贍敏煒燁 每試輒高等 섬민위엽 매시첩고등
遂與季盛運同取壬辰榜進士 聲譽方日興 수여계성운동취임진방진사 성예방일흥 
不幸遽卒 年二十八 불행거졸 년이십팔

우리 증백조 우의정 문충공 선원선생은 
숭정 10년 정축년(인조15 1637)에 강도에서 의롭게 순직하셨다 
나라에서 정려문을 세우고 충신지문이라 이름지었다 
문충공에게 증손이 있는데 진사 증 이조 참판 휘 성우이다 
그는 숙부 덕산공 수민과 함께 
모두 효도를 위해 살았으니 모두 다 정려문이 세워졌다 
이에 군자들이 감탄하여 거룩하다 충신의 가문에 효자가 나오도다
누가 이르길 영지가 뿌리가 없고 예천이 근원이 없다고 하는가 라고 하였다
공의 자는 제이고 문충공의 막내아들 이조 참판 휘 광현의 손자이며 
덕산공의 형 수원 부사 휘 수인의 맏아들이다 
태어난 자질이 아름답고 분명하며 명석 순수하여 삼가 하길 엄격하고 남에겐 인애로왔으며 
일에 임하여서는 지론이 정연하여 구차스럽지 않았다 
문충공이 생존해 계셨을 때에 겨우 6 7세였었는데 문충공이 각별히 사랑하셨고 
하물며 그를 본 남들도 모두 다 진짜 문충공의 손자라고 하였다 
자라서는 독서를 좋아하고 힘써 두루 널리 보고 기억해서 문장을 짓는데 
넉넉하고 재빠르며 문장의 흐름이 찬란하여 시험을 볼 때마다 상등을 차지하니
드디어 아우 성운과 함께 임진년(효종3년) 진사시에 입격하여 명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갑자기 죽고 말았으니 년 28세이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 대학자인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1651~1708)선생이 선생의 집안에 28세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효자 증 이조 참판 성균관 진사 김성우공의 묘갈명을 찬한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농암 김창협선생은 경기도 과천 출신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 외 삼주(三洲)이고 좌의정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金昌集)의 아우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金壽恒)이며 어머니는 안정 나씨(安定羅氏)로 해주목사 나성두(羅星斗)의 딸이며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에 출사하고 이어서 병조좌랑 사헌부지평 부교리 등을 거쳐 교리 이조좌랑 함경북도병마평사 이조정랑 집의 동부승지 대사성 병조참지 예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왕명에 의해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를 교정하였으며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포천시)에 은거하고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아버지가 신원됨에 따라 호조참의등 여러 관직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성생은 학문적으로는 이황과 이이의 설을 절충하여 사단은 선뿐이고 칠정은 선과 악을 겸했으니 사단은 오로지 이만 뜻하고 칠정은 기를 겸한 것이다 라는 이이의 설에 대해 다만 기까지 겸하였다는 한 구절에서 차이를 보인다 칠정이 비록 이와 기를 겸했더라도 그 선한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랐음이요 그 선하지 않은 것은 기가 능히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이니 처음부터 기가 주된 것이다 라고 하여 이이의 기발이승설을 지지하였으며 인심도심설에서도 기의 맑은 것은 모두 선하지만 선한 정이 모두 맑은 기에서 나왔다 함은 옳지 않으며 정의 악한 것이 탁한 기에서 나왔지만 탁한 기가 발해 된 정이 모두 악하다고 할 수는 없다 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인심의 동함에 이가 비록 기에 탔어도 기가 또한 이의 명령을 듣는 것이다 만약 선악의 정을 모두 기의 청탁에 돌린다면 이의 실체와 성의 선함을 보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성악론변에서 사람의 성은 본래 선한 것이나 순경이 인성을 악하다고 말한 것은 기요 성이 아니다 대체로 사람이 세상에 날 때 이미 기는 질이 되고 이는 성이 되는 것인데 이에는 선만 있고 악이 없으나 기에는 선한 것도 있고 선하지 못한 것도 있으니 사람에게 선하지 못함이 있음은 기의 소위이다 라고 규정하였다 기타 행장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고자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넉넉하고 재빠르며 찬란하게 빛나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섬민위엽(贍敏煒燁)은 발췌문에서는 농암선생이 성우선생의 문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쓴 말이지만 섬민위엽(贍敏煒燁)은 사람의 언행등등에도 쓸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말임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필자는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겨 놓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길 바란다

桓紀 9217년 10월 16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