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함비동의 含飛動意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2. 1. 11:22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함비동의 含飛動意


머금을 함含 날 비飛 움직일 동動 뜻 의意

날아갈 듯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인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1537~1616)선생의 시문집 월정선생별집(月汀先生別集)권사(卷四)에 만록(漫錄)에서 발췌하다

楊僉知應聘能草書 양첨지응빙능초서
妙得懷素一作長沙 法 묘득회소일작장사 법 
又善大字 含飛動意 在嶺東時 우선대자 함비동의 재령동시 
謂金剛山絶頂毗盧峯 乃飛來峯 非毗盧也 위금강산절정비로봉 내비래봉 비비로야 
朿兩苕帚弊者 以兩手執而寫飛字 자량초추폐자 이량수집이사비자 
字畫極大 有活動意 자화극대 유활동의 
又寫來峯兩字 屢作皆不如意曰 우사래봉량자 루작개불여의왈 
衰謝不可更寫 珍愛其飛字 쇠사불가경사 진애기비자 
裝䌙作簇 掛之江陵居舍 坐臥賞玩 장황작족 괘지강릉거사 좌와상완 
其後應聘得罪配延安 기후응빙득죄배연안 
一日忽大風雨 風掣其簇 일일홀대풍우 풍체기족 
連軸騰空而飛 向東海而去 련축등공이비 향동해이거 
杳不可尋 竟失之 묘불가심 경실지 
其後應聘凶訃至江陵 기후응빙흉부지강릉 
其簇飛去之日 기족비거지일 
卽應聘觀化之日也 즉응빙관화지일야 
抑靳其至寶 持去天上耶 억근기지보 지거천상야 
亦異矣哉 역이의재 

첨지 양응빙은 초서에 능했는데
회소가 장사에서 한 작품의 서법을 오묘히 터득하였으며
또 큰 글자를 잘 쓰는데 날아갈 듯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있었으며 영동에 있을 때
금강산 꼭대기의 비로봉(비로자나불)은 비래봉(날아서 오는 봉)이지 비로(부처)가 아니다 하고
닳은 갈대빗자루 두 개를 묶어 두 손으로 잡고 비(飛)자를 썼는데
자획이 매우 크고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또 래봉 두 자를 쓰는데 여러 번 썼는데도 뜻에 여의치 않아
시들어 늙으니 다시 쓰기가 어렵구나 하였다 그 비(飛)자를 매우 아끼면서 
장황하게 족자를 잘 만들어서 강릉의 집에 걸어 놓고 늘 감상하였다 
그 뒤 응빙이 일에 책임지고 연안으로 귀양을 갔는데 
하루는 갑자기 큰 비바람이 불어 그 족자가 바람에 날리어 
축까지 공중으로 올라가 날더니 동해바닷가를 향해 날아갔는데 
아득히 멀리 날아가서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잃고 말았다 
그 후에 응빙의 부고가 강릉에 이르렀는데
그 족자가 날아간 날이 즉 응빙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어쩌면 보물이라 아껴서 하늘나라로 가져 간 것이리라
역시 특이한 일이로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인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1537~1616)선생이 이런저런 세상사의 이야기들을 기록해 둔 월정선생별집(月汀先生別集)에 만록(漫錄)에서 발췌하였는데 이 발췌문은 양사언선생의 글씨와 관계된 기이한 이야기를 기록해 둔 것이다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1517~1584)선생은 청주(淸州)가 본관이고 자는 응빙 호는 봉래 외 완구(完邱) 창해(滄海) 해객(海客)이다 주부인 양희수(楊希洙)의 아들이며 형 양사준(楊士俊) 아우 양사기(楊士奇)와 함께 글에 뛰어나 중국의 삼소(三蘇: 소식·소순·소철)에 견주어졌다 아들 양만고(楊萬古)도 문장과 서예로 이름이 전하는데 선생은 명종 1년(1546)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을 거쳐 삼등 함흥 평창 강릉 회양 안 철원등 8고을의 수령을 지냈으며 자연을 즐겨 회양의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감상하고 만폭동의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으며 안변의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으며 그러나 지릉(智陵 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는 해서(황해도)로 귀양을 갔다가 2년 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40년간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전혀 부정이 없었고 유족에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으며 한편으로 남사고(南師古)에게서 역술(易術)을 배워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언했다는 일화도 있으며 한시는 작위적이지 않고 표현이 자연스러워서 더 이상 고칠 데가 없이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으며 가사로는 미인별곡과 을묘왜란 때 군을 따라 전쟁에 나갔다가 지은 남정가가 전하며 이밖에 시조로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으며 미인별곡은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해서(楷書)와 초서(草書)에 뛰어났으며 안평대군(安平大君) 김구(金絿) 한호(韓濩)와 함께 조선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지며 특히 큰 글자를 잘 썼다고 전하며 문집으로 봉래집(蓬萊集)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발췌문 문집의 저자 문정(文貞)공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1537~1616)선생은 다음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날아갈 듯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라는 오늘의 성어 함비동의(含飛動意)는 여러 곳에 쓰임이 가능하지만 예능에서 특히 서화를 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기운생동하여 글씨가 힘이 있고 날아 갈듯 한 형세를 취하는 글이나 혹은 그림에 서화 감상평을 쓸 때 또는 평가 할 때의 찬사로서 표현해 주면 가장 좋은 말이고 또 이런 함비동의(含飛動意)라는 날아갈 듯한 뜻을 지닌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가의 기분은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든 아니 오든 붓을 들고 즐기다보면 함비동의(含飛動意)의 경지에 다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하고 믿으며 오늘도 부지런히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년 10월 17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