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공소암렬 空疎闇劣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2. 3. 10:21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공소암렬 空疎闇劣


빌 공空 트일 소疎 닫힌 문 암闇 못할 렬劣

실속이 없고 헛되며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다

이 성어는 조선 중종과 명종 때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선생의 시문집인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권륙(卷六)소(疏)에 무진년(선조1)에 올린 사직소 이(戊辰辭職疏 二)에서 발췌하다

抑臣之引諸賢而爲言者 徒以對揚敎書之意云爾 억신지인제현이위언자 도이대양교서지의운이
若以微臣之事言之 以至愚極陋之資 약이미신지사언지 이지우극루지자 
抱長年沈痼之疾 空疎闇劣 無物可倫 포장년침고지질 공소암렬 무물가륜 
若用先王甄別大小之法 약용선왕견별대소지법 
本不當廁在百執事之列 而僥倖入仕 본불당측재백집사지렬 이요행입사
歷試三品 瑣瑣碌碌 一職不辦 력시삼품 쇄쇄록록 일직불판 
小者如此 大者可知 소자여차 대자가지 
故自懷慙懼 而身始不安於朝 고자회참구 이신시불안어조 
歸農食力 欲以守素分而免吏議而已 귀농식력 욕이수소분이면리의이이 
不意因此而賭得虛名 欺人欺世 불의인차이도득허명 기인기세 
遂以上欺於天日 致令聖朝眞僞莫辨 수이상기어천일 치령성조진위막변 
誤恩屢加在 臣則方辭 本職而退伏 오은루가재 신즉방사 본직이퇴복 
朝命則因其所辭而擢陞 조명즉인기소사이탁승
臣又力辭其所陞 而朝復因陞而又陞 신우력사기소승 이조부인승이우승 
二十年來 如是輾轉 至再至三 이십년래 여시전전 지재지삼 
以言乎勞績 則無一毫之有著 이언호로적 즉무일호지유저
而以言乎職秩 則巍然六卿之列矣 이이언호직질 즉외연륙경지렬의

신이 제현을 끄려들어 말한 것은 홀로 교서의 뜻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미천한 신의 일을 말씀드리면 매우 어리석고 지극히 비루한 자질에다가 
오랜 기간 고질병을 가지고 있어 실속도 없고 사리에 어두워서 가려낼만한 것이 없습니다
만일 옛 선왕의 큰 인재와 작은 인재를 뚜렷하게 분별해내는 방법을 쓰신다면 
본래 백관의 대열에 낄 수조차 없는데도 요행히 벼슬길에 들어와 
3품까지 올랐어도 내세울 것 없고 녹록하여 한 가지 직무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습니다
작은 것이 이러 하온데 큰 것은 가히 알 수 있습니다 
고로 스스로 수치스럽고 두려움을 안고 몸이 조정에 있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여 
귀향하여 제 힘으로 농사지어 먹으며 본분을 지켜 조정의론에 걸림을 면하고자 할 뿐입니다
미처 이로 인하여 헛된 명성을 더 얻어 볼까 사람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드디어 위로 성상을 속여 성조로 하여금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여 
그릇된 은혜를 여러 번 내리게 할 줄 몰랐으며 신은 본직을 사양하고 엎드려 물러갔는데 
조정의 명은 곧 그 사양하는 바로 인하여 더 발탁하여 올리고 
신이 또 발탁됨을 극력 사양하여 올린바 조정에서는 다시 올린 것으로 인하여 이어 또 올려서 
20년 동안 지내오면서 이와 같이 반복한 것이 두 번 세 번에 이르렀습니다 
공로와 실적으로 말씀드리면 털끝만큼도 드러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직위의 서열은 말하자면 높게도 육경의 대열에 이르렀습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선생이 무진년(선조1)에 올린 사직소 이(戊辰辭職疏 二)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선생은 여러 번 사직소를 올린 것 외에도 나라를 위해 많은 상소를 올렸는데 그 중에서도 하나 선생이 1568년 12월 왕에게 올린 상소문은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군왕의 도(道)에 관한 학문의 요체를 도식으로 설명하는 성학십도는 본래 진성학십도차병도(進聖學十圖箚幷圖)를 생략해 성학십도로 통하고 있는데 진은 성학십도의 글을 왕(宣祖)에게 올린다는 의미이고 차는 내용이 비교적 짧은 글을 왕에게 올린다는 뜻으로 일명 주차(奏箚) 차문(箚文) 차자(箚子) 방자(膀子)녹자(錄子)라고도 하며 병도는 도표(圖表)를 글과 함께 그려 넣는다는 뜻이다

성학이라는 말은 곧 유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학문이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로 성학을 풀이하고 있으며 이는 곧 넓은 의미의 성학으로 해석된다 선생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선조에게 68세의 노대가(老大家)가 바로 즉위 원년에 올렸던 소였음을 감안할 때 선조로 하여금 성왕(聖王)이 되게 하여 온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도록 간절히 바라는 우국충정에서 저술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성학십도는 서론의 내용이 담긴 진성학십도차에서 시작해 10개의 도표와 그 해설로 되어 있으며 도표는 태극도서명도 소학도 대학도 백록동규도 심통성정도 인설도 심학도 경재잠도 숙흥야매잠도이며 진성학십도차에서 선생은 성학에는 커다란 단서가 있고 백성의 지도자가 된 분의 한 마음은 온갖 징조가 연유하는 곳이고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온갖 욕심이 잡다하게 나타나는 자리이고 가지가지 간사함이 속출하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해 방종이 따르게 된다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 해일이 일어나는 것 같은 위기가 오고 말 것이니 어느 누가 이러한 위기를 막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애틋한 마음가짐으로 날마다 생활을 해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고 하면서 성학십도를 올리는 진의를 밝히고 선생은 왕 한 사람의 마음의 징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마음가짐을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경(敬)의 내면화를 중요시하였으며 10개의 도표 가운데 7개의 도표는 옛 현인들이 작성한 것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을 골랐고 나머지 3개의 도표는 이황 자신이 작성한 것이며 7개의 현인들 도표 가운데 심통성정도는 정복심(程復心)이 작성한 것이고 선생은 이 도표에 2개의 도표를 첨가하였으며 이렇게 첨가한 2개의 도표에서 선생은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기(理氣)의 내용을 곡진하게 도해해 설명하고 있는데 선생의 왕과 나라를 위한 충정이 오롯이 나타나는 상소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실속이 없고 헛되며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다라는 의미의 오늘의 성어 공소암렬(空疎闇劣)은 대학자인 선생 같으신 분들이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표현하는 겸양의 성어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짜 공소암렬(空疎闇劣)이 되면 곤란해 질 것이니 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년 10월 19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