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산승비응 山僧飛鷹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2. 2. 10:4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산승비응 山僧飛鷹


뫼 산山 중 승僧 날 비飛 매 응鷹

산에 사는 중이 매를 날리다 즉 경우에 맞지 않은 일을 하다라는 의미이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1535~1623)선생의 시문집 래암선생문집(來庵先生文集)권십이(卷十二)잡저(雜著)에 문답 경술년(광해군2,1610) 가을(問答 庚戌秋)에서 발췌하다

今之人無不欲死於科擧 금지인무불욕사어과거 
特幸而免耳 身雖不死 특행이면이 신수불사 
病根常在 隨所居而長 병근상재 수소거이장 
必曰好官我須爲之 필왈호관아수위지 
以天位天爵 認爲私物 이천위천작 인위사물 
期於必得死而後已 기어필득사이후이 
則名利場中 宜其無柱國之強臣 즉명리장중 의기무주국지강신 
救時之賢材 구시지현재 
曷嘗見張儀爲魏忠臣 갈상견장의위위충신 
秦檜爲宋良相也 진회위송량상야 
噫 古者二十五年學 絶無利誘 희 고자이십오년학 절무리유 
專意進修 及出爲世用 전의진수 급출위세용 
誠僞邪正 猶恐其參錯 성위사정 유공기참착 
況一日矇昧中 特取其膝口之能 황일일몽매중 특취기슬구지능 
毛錐之才 以爲人材 모추지재 이위인재 
而至於輔世長民 이지어보세장민 
如山僧飛鷹 隴人操舟 여산승비응 롱인조주 
豈得不敗事而病國乎 기득불패사이병국호

이제는 사람들이 과거 때문에 죽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없으니
다만 요행히 면할 뿐이지 몸은 비록 죽지 않아도 
병의 뿌리는 항상 있으니 거처하는 바에 따라 자란다
반드시 말하기를 좋은 벼슬은 반드시 내가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대신 할 천위와 천작을 사사로운 물건으로 여기고
반드시 얻겠다고 기약하지만 죽은 후에야 그치니
명예와 이익의 마당에서 의당히 나라의 기둥이 될 만한 강직한 신하와 
시대를 구원해줄 어진 인재가 없는 것이다
어찌 일찍이 장의가 위나라의 충신이 되고
진회가 송나라의 훌륭한 재상이 된 것을 볼 수 있겠는가
아 옛날에는 25년을 배웠어도 이익의 유혹은 절대 없어서 
오로지 수신하는 뜻으로 나아가고 나아가서는 세상의 쓰임이 되고
진실과 속임, 삿됨과 올바름은 오히려 어긋날까 두려워했는데
하물며 하루 동안 어리석다가 다만 그 슬구의 능력과 
모필 같은 재주를 가진 자들이 인재가 되어
세상을 돕고 백성을 길러내는 일에 이르러서는
산에 사는 중이 매를 날리는 일이고 높은 산에 사는 사람이 배를 모는 일과 같으니
어찌 일을 그르치지 않고 나라를 병들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래암 정인홍(來庵 鄭仁弘1535~1623)선생이 손님들과 주고받고 나눈 이야기 문답(問答 庚戌秋)편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래암 정인홍선생은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덕원(德遠) 합천(陜川) 출신이며 아버지는 정건(鄭健)이고 조식(曺植)선생의 수제자로서 최영경(崔永慶) 오건(吳健) 김우옹(金宇顒) 곽재우(郭再祐) 등과 함께 경상우도의 남명학파(南冥學派)를 대표하였는데 왜란이 끝난 후 북인과 함께 정권을 잡았으며 북인이 분열한 후에는 이산해와 함께 대북의 영수가 되었고 전란 종결 후 대사헌 중추부동지사 공조참판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고 서령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군되고 북인이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뉠 때는 적극 간여하지 않았으나 그의 제자인 이이첨 등이 대북이었으므로 광해군 정권의 원로로 예우를 받았으나 이언적 이황 등의 문묘종사를 반대하다가 유생들에게 탄핵받아 청금록(靑衿錄 儒籍)에서 삭제되는 등의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였으며 1623년 능양군 등은 80세 이상의 재상은 처형하지 않는 관례를 어기고 그를 참형에 처했지만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참형되고 가산이 적몰(籍沒)되었으며 1908년 4월 30일 관작이 회복 신원되었으며 이이(李珥)는 일찍이 석담일기에서 정인홍을 청렴강직한 인물로 칭찬하였으나 정인홍이 서인 정철 등을 탄핵하려 하자 강직하나 식견이 밝지 못하니 용병에 비유한다면 돌격장이 적격이다라고 평가를 달리하기도 하였으며 강경한 지조 강려(剛戾)한 성품 그리고 지나치게 경의(敬義)를 내세우는 행동으로 좌충우돌하는 대인관계를 맺어 물의를 일으켰다는 서인 집권세력의 인물평이 있는가 하면 매천 황현(黃玹)은 오하기문(梧下記聞)에서 정인홍의 국난극복을 위한 우국충정 정신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단재 신채호는 을지문덕 이순신 최영과 함께 정인홍을 우리나라 4대 영웅으로 평가하기도 하였으며 저서로 래암집(來庵集)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산에 사는 중이 매를 날리다 즉 경우에 맞지 않은 일을 하다라는 의미의 오늘의 성어 산승비응(山僧飛鷹)과 같이 이치와 경우에 합당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곳이 바로 우리 인간이 사는 사회인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인간의 생활상의 생각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과학문명이 더 발달하여 살아가는 실생활에서 더 편할 뿐이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생각하는 틀은 거의 비슷하지 않나 생각을 해 보며 예전에는 과거시험 벼슬길이 출세의 지름길이라면 요즈음은 다양하지만 그래도 입시와 취업이 한사람의 부귀영화를 좌우지하는 경향이다 보니 수신과 사람됨을 강조하는 참 정신은 점점 뒤로 밀려나는 추세가 되어가니 래암선생이 걱정하는 그 옛날이나 필자가 걱정하는 오늘이나 매한가지니 산승비응(山僧飛鷹)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세상사는 웃음거리밖에 아니되니 이치에 합당치 않은 것은 삼가하고 인간사회에 참 사람으로 살자라며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년 10월 18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