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왕양방패 汪洋滂沛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1. 27. 10:58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왕양방패 汪洋滂沛


넓을 왕汪 바다 양洋 비 퍼부을 방滂 늪 패 沛

끝없는 바다처럼 광활하고 거대한 물줄기처럼 세차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금이당 배용길(琴易堂 裵龍吉1556~1609)선생의 시문집 금이당집(琴易堂集)에 금이당집 발문 유형진(琴易堂集跋 柳衡鎭)에서 발췌하다

六年乙卯仲秋 육년을묘중추 
琴易先生文集成 凡七篇 금이선생문집성 범칠편 
餘外又三之二 將待後也 여외우삼지이 장대후야 
先生以湖海之豪 加之以剛健篤實 선생이호해지호 가지이강건독실 
平生誦習 以朱子書爲準的 평생송습 이주자서위준적 
承襲家庭 私淑陶山 승습가정 사숙도산 
居家律身如行陣 立朝敢言如秋霜 거가률신여행진 립조감언여추상 
史注嚴董狐之筆 書牘明王覇之辨 사주엄동호지필 서독명왕패지변 
其他詩策雜著 莫非扶世敎抑邪說 기타시책잡저 막비부세교억사설 
而率之以朱退定論 이솔지이주퇴정론 
其文汪洋滂沛 往往山立雷擊 기문왕양방패 왕왕산립뢰격 
使人竦然而懼 惕然而省也 사인송연이구 척연이성야 
先生之言曰 선생지언왈
士君子當有鳳凰翔于千仞底氣像 사군자당유봉황상우천인저기상 
不爲聲利所動 불위성리소동 
於此若將想像其萬一也 어차약장상상기만일야

철종 6년 을묘년(1855) 중추에 
금이당 선생의 문집이 완성되었으니 무릇 7권이다 
남아있는 것이 또 3분의 2인데 장차 훗날을 기약한다
선생은 이 세상의 호걸로서 더욱이 강건하고 독실하여 
평생토록 글을 외우고 익힘에 주자서를 기본 법도로 삼았다
가정의 풍습을 이어받고 퇴계 선생을 사숙하여 
집에 있을 때는 몸을 다스리기를 규율처럼 하였고 조정에서는 과감한 말씀이 추상과 같았다
역사 기록은 동호지필처럼 엄정하고 편지글은 왕도와 패도의 구분을 확실히 밝히고 
그 밖에 시며 책문과 잡저가 세상교육을 돕고 사설을 누르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따르고 추종하는 것을 주자와 퇴계의 정론으로써 하였다
그 문장은 바다처럼 광활하고 물줄기처럼 세차고 종종 산이 솟고 천둥이 내리치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 두렵고 무서워서 반성하도록 하였다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사군자는 당연히 봉황이 천 길을 날아오르는 기상을 지니고 있듯 
명성과 이익에 동요하지 않아야 한다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장차 그 모습을 만에 하나라도 상상할 것이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금이당 배용길(琴易堂 裵龍吉1556~1609)선생의 시문집 금이당집(琴易堂集跋)발문을 동와 류형진(同窩 柳衡鎭1796~1864)선생이 쓴 글에서 발췌하였는데 동와 류형진선생은 조선 후기 안동지역 출신의 유생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은로(殷老) 고조부는 류정원(柳正源) 아버지는 류치규(柳致奎)이고 동와선생은 문장에 능하였으며 왕노재(王魯齋)의 만물조화론(萬物造化論)에 대한 후론(後論)을 지어 수륙동식물 일월도수(日月度數) 절기(節氣)의 추배(追配) 등에 대해 많이 교정하였으며 문집으로 동와집(同窩集)이 있으며 저술로 독역관규(讀易管窺) 등이 전한다[안동향토문화대백과 참조]

발췌문의 주인공 금이당 배용길(琴易堂 裵龍吉1556~1609)선생은 본관은 흥해(興海) 자는 명서(明瑞) 호는 금이당 외 장육당(藏六堂)이고 생원 배헌(裵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배천석(裵天錫)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배삼익(裵三益)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남신신(南藎臣)의 딸이다 선조 8년(157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선조 18년(1585)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추대하고 그의 부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594년 세마(洗馬)의 직을 받고 이어 시직(侍直) 부솔(副率)을 지내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의에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으며 1602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예문관의 검열과 대교(待敎) 1606년 사헌부감찰 등을 역임한 뒤 1608년 충청도도사를 지냈으며 김성일(金誠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이어 류성룡(柳成龍) 조목(趙穆) 남치리(南致利) 등을 사사하고 천문 지리 율력(律曆) 병전(兵典) 의약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었고 특히 역리(易理)에 밝았다고 한다 저서로는 금이당집(琴易堂集)이 있다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에 추증되고 아버지 배삼익과 함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있던 도생서원(道生書院)에 배향되었는데 도생서원은 1567년(명종 22) 지방유림의 공의로 배삼익(裵三益)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금이당선생 사후에 부와 배향되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며 도생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훼철되기 전의 경내 건물로는 묘우(廟宇) 강당 신문(神門) 동재(東齋) 서재(西齋) 주소(廚所) 등이 있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및 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참조]

끝없는 바다처럼 광활하고 거대한 물줄기처럼 세차다라는 오늘의 성어 왕양방패(汪洋滂沛)의 좋은 말이 발췌문에서는 금이당선생의 문장에 대한 설명으로 선생의 문장은 끝없는 바다처럼 넓고 광활하고 거대한 물줄기처럼 세차게 흐르는 문장의 유형을 설명하면서 성어와 같이 최고의 극찬을 동와선생이 발문을 쓰시면서 칭찬하셨는데 이 왕양방패(汪洋滂沛)는 문장에만 국한하여 쓰이지 않는 사람의 인품 성품에서도 비하여 쓸 수 있는 좋은 성어로 매우 훌륭한 말임에는 틀림이 없는데도 기존 성어풀이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어서 필자의 짧은 식견이지만 우리 선현들이 남긴 좋은 성어를 오늘 날 다시 찾아서 함께 공유하여 널리 쓰일 수 있는 성어로 자리매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년 10월 13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