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환기병요 環奇炳燿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2. 5. 10:52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환기병요 環奇炳燿

고리 환기이할 기밝을 병빛날 요

 

기이하게 아름다우면서 찬란하게 빛나다

 

이 성어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선생의 시문집인 기언(記言) 기언별집(記言別集)권팔(卷八)에 왜인을 접위하러 가는 여여로를 전송하는 서(送呂汝魯接慰倭人序)에서 발췌하다

 

天嶺呂君 천령려군

早年以詞賦擢魁科 爲朝右人 조년이사부탁괴과 위조우인

頃年被譴逐於窮北之雉城 경년피견축어궁북지치성

雉城在貊北二千里肅愼之墟 치성재맥북이천리숙신지허

旣危愁窮 기위수궁

抑傍陰山 登臨浡海 억방음산 등림발해

及蒙恩 又以選接慰倭 급몽은 우이선접위왜

出東萊千餘里 출동래천여리

東萊 新羅南境 極於大海 동래 신라남경 극어대해

窺絶影瞰日域 君之遊可謂極矣 규절영감일역 군지유가위극의

遠跡廣蕩 其發於文章者 원적광탕 기발어문장자

環奇炳燿 환기병요

自得於夷險之途 자득어이험지도

能使蠻夷別種 능사만이별종

亦知君奇才名譽出衆人萬萬也 勉之 역지군기재명예출중인만만야 면지

 

천령(경남 함양) 여군(여여로)

젊은 나이에 사부(한시에서 운자를 달아 지은 시)로 장원 급제하여 조정의 우인이 되었으나

몇 해 전에 견책을 당하여 북쪽 끝 지역인 치성으로 쫓겨 갔는데

치성은 맥국 북쪽 2000리에 있는 숙신의 옛터로

위험하고 무척 구석진 변방이다

거기에 이곳은 음산과 접해 있기에 산에 올라가서 발해를 굽어보고

은혜로운 사면을 받더니 또 왜인의 접위관으로 선발되어

천여리나 떨어진 동래로 나가야하니

동래는 신라의 남쪽 경계지역인데 큰 바다와 맞닿은 곳으로

절영도를 살펴보고 일본을 내려 보는 지역으로 군의 유람으로는 더 이를 바가 없었겠다

멀리까지 밟아보고 두루 널리 흩었기에 문장으로 표현된 것이

기이하게 아름다우면서 찬란하고 빛이나니

능히 오랑캐의 험난한 길에서 스스로 터득하여

오랑캐의 별종인 왜인들로 하여금

역시 군의 기이한 재능과 명예가 수많은 이들 중에 출중하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니 힘쓰시게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후기의 문신 미수 허목(眉叟 許穆1595~1682)선생이 왜인을 접위하러 가는 여여로에게 전송하면서 써서 준 글(送呂汝魯接慰倭人序)에서 발췌하였는데 동은 여증제(洞隱呂曾齊1626~?)선생은 본관은 함양 자는 여로(汝魯) 호는 여로 여헌선생의 문인이며 형조판서 여이재(呂爾載)의 아들이고 1652년 세자의 가례(嘉禮)와 입학(入學) 및 역적 김자점(金自點)을 토역(討逆)한 경사로 시행한 시험 증광 문과 전시(增廣文科殿試)에서 장원 여증제(呂曾齊) 33인을 뽑고 무과(武科)에 장원 김숭(金嵩) 32인을 뽑았을 때 장원으로 급제하고 장령 목사등을 역임하고 현종실록에 현종 3(1662) 326일 기해 기사에 장령 여증제가 둔전군의 혁파를 아뢰기를 통영(統營)에서 난리 후에 군인을 모아 전지(田地)를 경작하면서 그들을 둔전군(屯田軍)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난리가 지난 지 이미 오래되어 전지를 모두 주인에게 돌려주었는데도 그 군인들을 그대로 남겨두어 갖은 방법으로 거두어들이고 있으니 너무나 무리한 일입니다 일체 혁파하여 편오(編伍)에 옮겨 보충하도록 하소서 하니 상이 본도로 하여금 자세히 조사해 보고하게 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선생이 나라를 위한 충정은 대단 하셨다고 믿어진다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던중에 선생은 젊은 나이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벼슬이 장령(掌令)에 이르렀으나 어버이 상을 당해 너무 슬퍼한 나머지 몸이 수척해 죽었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윤선거(尹宣擧)선생이 찬한 선생의 아버지 여이재묘지명(呂爾載墓誌銘)에 실려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지극한 진리에 입각하여 해옹 여이재(海翁呂爾載 1600~1665)선생에 대한 자료를 살펴본다

해옹 여이재선생은 자는 자후(子厚) 증승지 여숙(呂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여순원(呂順元)이고 아버지는 총관 여인길(呂䄄吉)이며 어머니는 민기형(閔起亨)의 딸이고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며 1619(광해군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건원릉참봉이 되고 인조 15(163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조 병조좌랑을 거쳐 1640년에 정언이 되고 1644년 훈련원종사관으로 어영대장 구인후(具仁垕)를 도와 회은군(懷恩君) 이덕인(李德仁)을 추대하려던 심기원(沈器遠) 일당의 역모를 적발하여 일망타진한 공으로 영국공신2등에 책록되고 당상계(堂上階)에 올랐으며 그 뒤 오위장 호조참의 병조참지를 거쳐 1646년에는 형방승지가 되어 유탁(柳濯)의 역모사건을 국문하는 데 공을 세웠고 효종 즉위년(1649) 전라도관찰사가 되고 인조의 능을 수축하기 위한 산릉도감의 부제조를 거쳐 도승지 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 한성우윤 등을 역임하고 1654년에 황해도관찰사가 된 후 1660년 산릉수개도감당상 이듬해 부묘도감제조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1662년 한성판윤이 되어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오삼계난(吳三桂亂)을 보고하였으며 이듬해 끝으로 다시 형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45년간의 관직생활을 하면서 정성껏 왕을 보필하여 총애를 받으셨으며 시호는 숙헌(肅憲)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기이하게 아름다우면서 찬란하게 빛나다라는 오늘의 성어 환기병요(環奇炳燿)를 소개하면서 동은 여증제선생 같으신 분들이 더 오래 사셨다면 세상의 문화가 더 윤택하여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늘 옛 문집에서 새로운 것을 알고 함께 공유 할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환기병요(環奇炳燿)를 휘호하고 성어문집에 담는다

 

桓紀 92171021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