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아협생분 牙頰生芬

백운선사 김대현 2020. 12. 26. 18:2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아협생분 牙頰生芬


어금니 아牙 뺨 협頰 날 생生 향기로울 분芬

입 안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일어나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월사 이정귀(月沙 李廷龜1564~1635)선생의 시문집 월사선생집(月沙先生集)권삼십사(卷三十四) 간첩(簡帖)에 구유격에게 답함(答丘遊擊)에서 발췌하다

東旋之後 秋月已三彎矣 동선지후 추월이삼만의
緬憶芳徽 紆軫時積 면억방휘 우진시적
忽因驛使 續承前後寄書 忙手開緘 홀인역사 속승전후기서 망수개함 
宛接淸範 依然江上對酒時也 완접청범 의연강상대주시야 
況敍稿高文 題樓健筆 황서고고문 제루건필 
一時倂至 俱是望外 일시병지 구시망외 
銀鉤眩目 牙頰生芬 은구현목 아협생분 
昕夕展玩 永爲鎭世之寶 흔석전완 영위진세지보 
何啻入懷驪珠也 拙稿不足傳 하시입회려주야 졸고불족전 
早晚倘遂剞劂 當弁高文 托之不朽 조만당수기궐 당변고문 탁지불후 
玄晏之賜 沒存不忘 현안지사 몰존불망 
江市事 不佞之未還朝也 강시사 불녕지미환조야 
寡君因諸臣議覆 已有回咨 과군인제신의복 이유회자 
今以諭意 更議于朝 금이유의 경의우조
則咸以爲頃年本國旣咨報撫院而罷之 즉함이위경년본국기자보무원이파지 
今若無上司另爲指揮 則似難容易擅開 금약무상사령위지휘 즉사난용역천개 
回咨之意 不過如此云 회자지의 불과여차운 
惟高明財察 유고명재찰

동쪽으로 돌아온 후 가을 달이 벌써 세 번이나 저물었습니다 
지난 날 아름다운 모습을 추억하며 그리움만 때때로 쌓여 가던 차에 
갑자기 역사 편으로 전후를 이어 부쳐 주신 서찰을 받고 서둘러 봉함을 뜯어보니 
완연히 풍모를 접하니 의연하게도 마치 강가에서 술잔을 나누던 때와 같습니다 
더구나 고결한 문장의 서문 원고와 굳건한 필치의 누각 제액글월이 
일시에 함께 도착했으니 이는 모두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만 
눈에는 매끄럽고 아름다운 필치가 현혹하여 입 안에서 향긋한 향기가 이는듯하니 
조석으로 펼쳐놓고 감상하면서 오랫동안 집안의 가보로 삼고자 합니다 
어찌 여주를 품어 들일 뿐이겠습니까 졸고는 세상에 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조만간 인쇄하여 출간하게 되면 당연히 고문을 책머리로 삼아서 오래도록 전할 것이니 
현안 황보밀이 좌사의 삼도부 서문을 써준 것과 같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의주의 강시 일은 저 정귀가 조정에 돌아가기 전에 
덕이 많은 임금께서 제신들의 의복을 거쳐 이미 회자(회답 공문서)가 있었습니다
이제 말씀하신 뜻으로 조정에서 다시 의논하니
모두 다 지나간 해에 본국이 이미 무원에게 자문으로 보고하고 강시를 폐하였으니 
지금 만약 상사의 따로 지시가 없었다면 시장을 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회답자문의 뜻은 이와 같을 뿐이다 고 말하였으니 
고명께서 헤아려 살피시기 바랍니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월사 이정귀(月沙 李廷龜1564~1635)선생이 의주의 명나라 국경 수비를 맡고 있는 구유격(丘遊擊)과 주고받은 편지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명나라 관리 구유격에 대한 자료는 미상이라 설명 할 수는 없고 다만 월사선생님과 주고받은 편지글로 보았을 때 상당한 문장가요 서예가였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월사 이정귀선생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징(聖徵) 호는 월사 외 보만당(保晩堂) 치암(癡菴) 추애(秋崖) 습정(習靜)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세조 때의 명신인 이석형(李石亨)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현령 이계(李?)이고 어머니는 김표(金彪)의 딸이며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월사선생은 문장으로 이름 높던 가문에서 출생해 가문 내에서의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였으며 유년시절부터 남다른 문학적 자질을 보이기 시작해 8세에 벌써 한유(韓愈)의 남산시(南山詩)를 차운(次韻)했을 정도의 뛰어난 재능으로 선조 10년(1577) 14세 때에 승보시(陞補試)에 장원을 하며 명성을 떨치기 시작해 선조 18년 22세에 진사 5년 뒤인 선조 23년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1592년에는 임진왜란을 만나 왕의 행재소(行在所)에 나아가 설서(設書 세자에게 경전과 역사를 가르치는 정7품관)가 되고 선조 26년 명나라의 사신 송응창(宋應昌)을 만나 대학을 강론해 그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중국어에 능하여 어전통관(御前通官)으로 명나라 사신이나 지원군을 접대할 때에 조선 조정을 대표하며 중요한 외교적 활약을 했으며 선조 31년에 명나라의 병부주사 정응태가 임진왜란이 조선에서 왜병을 끌어들여 중국을 침범하려고 한다는 무고사건을 일으켰을 때 선생은 무술변무주(戊戌辨誣奏)를 작성하여 진주부사(陳奏副使)로 명나라에 들어가 정응태의 주장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밝혀 그를 파직시켰으며 선조 34년 34세 때에는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온 후 대제학에 올랐으며 선조 37년 세자책봉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명나라를 내왕했으며 명나라 문인들의 요청에 의하여 100여 장의 조천기행록(朝天紀行錄)을 간행하기도 했으며 이와 같은 선생의 능력이 왕의 신임을 받았으며 병조판서 예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등 조정의 중요한 직책을 두루 역임했으며 시문집으로는 그의 문인인 최유해(崔有海)가 편간한 월사집(月沙集) 68권 22책이 전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입 안에서 향긋한 향기가 일어나다 라는 오늘의 성어 아협생분(牙頰生芬)을 발췌하여 공유하면서 글을 쓰니 잘 쓰든 못 쓰든 작가로서 남긴 글이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지은 글을 읽고 입 안에서 향긋한 향기가 일어난다고 표현한다면 아마 그 글 안에는 꾸밈이 없고 삼라만상 천지처럼 비가 오듯 눈이 오듯 바람이 일 듯 자연스러움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필자도 그런 글을 쓰고 싶지만 욕심으로 남기고 아협생분(牙頰生芬)을 성어문집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년 11월 12일 저녁에 白雲仙士 金大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