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연마췌탁 硏磨揣度

백운선사 김대현 2021. 1. 19. 17:44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연마췌탁 硏磨揣度


갈 연硏 갈 마磨 잴 췌揣 헤아릴 탁度

학문이나 정신 기술 따위를 배워 익히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1517~1563)선생의 문집인 금계선생문집(錦溪先生文集)권팔(卷八)외집(外集)에 책문(策問)에서 발췌하다

此六吾子 皆三代以後名世之賢 차륙오자 개삼대이후명세지현 
論其人品 則似難上下 론기인품 즉사난상하 
而考其事業 則各有成敗 이고기사업 즉각유성패 
其才智之高下 時義之可否 기재지지고하 시의지가부 
亦有可得而言者歟 역유가득이언자여 
若使當子房之時 則何以報仇存韓 약사당자방지시 즉하이보구존한 
而無近譎之迹 當孔明之時 이무근휼지적 당공명지시 
則何以滅魏殲吳 而恢高光之緖歟 즉하이멸위섬오 이회고광지서여 
爲子美而效許身之忠 위자미이효허신지충 
爲元亮而致報讎之節 위원량이치보수지절 
用何道而可歟 全身於武穆立功之會 용하도이가여 전신어무목립공지회 
圖存於文山顚沛之日 其亦有策歟 도존어문산전패지일 기역유책여 
諸君子莊修一院 尙友千古 제군자장수일원 상우천고 
窮經看史 仰讀俯思 궁경간사 앙독부사 
其於前賢得失之迹 硏磨揣度 기어전현득실지적 연마췌도 
素講於胸中 久矣 소강어흉중 구의 
欲聞善處之策 욕문선처지책

이 여섯 사람들은 모두 삼대 이후에 이름을 세상에 떨친 현인으로 
그 인품을 이야기하자면 즉 상하를 구분하기가 곤란하지만 
그 이룬 일들을 상고해 보면 각기 성패가 있다
그 재능과 지혜의 높고 낮음과 시의의 옳고 그름을  
또 말하여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자방(장량)의 시기 때를 만났으니 즉 왜 원수를 갚고 한나라를 보존하여 
속임수에 가까웠다는 자취가 없었겠는가 공명의 시대 때를 만났으니
왜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오나라를 섬멸하여 한 고조와 광무제의 업적을 넓힐 수 있었겠는가
두보 자미가 되어서는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충성을 다했고
도연명 원량이 되어서는 원수를 갚는 절개를 다하였으니
무슨 방법을 사용했기에 가능했겠는가 악비 무목이 공을 세우는 기회에 몸을 온전히 하였으며
문천상 문산이 곤경에 처한 날에 보존을 도모하였으니 그 또한 대책이 있었겠는가
여러 군자들이 책을 읽고 학문에 힘썼던 한 서원에서 높이 천고의 옛사람을 벗 삼아 
경서를 궁구하고 역사서를 보고 읽으며 앉으나 서나 읽고 사색하여 
그 이전 현인들의 자취를 배워 익히고 헤아리며
평소 가슴속 깊이 강론한 지가 오래로다
잘 대처하는 정책을 듣고자 하노라

이 성어의 발췌문은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1517~1563)선생이 자신이 해결하지 못했던 정치에 관한 계책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글 책문(策問)을 선생의 문집인 금계선생문집(錦溪先生文集)에서 발췌하였는데 선생은 본관은 평해 자는 중거(仲擧) 아버지는 황치(黃觶)이며 어머니는 교수 황한필(黃漢弼)의 딸이고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중종 32년(1537)에 생원이 되고 1540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뒤 권지성균관학유로 임명되고 이어 성주훈도로 차출되었으며 1542년 성균관학유가 되고 이듬해 학록(學錄)으로 승진되었으며 양현고봉사를 겸하였으며 1544년 학정 1547년(명종 2) 박사에 이어 전적에 오르고 1548년 공조좌랑에 재직 중 상을 당해 3년간 시묘한 뒤 1550년 전적에 복직한 후 호조좌랑으로 전직되어 춘추관기사관을 겸했으며 중종실록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그 해 다시 병조좌랑으로 전직되고 불교를 배척하는 소를 올렸으며 1551년 경상도 감찰어사로 임명된 후 이어 지평에 제수되었으나 앞서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는 언관의 모함이 있자 외직을 자청해 신녕현감으로 부임했다가 1556년 병으로 사직한 후 이듬해 단양군수를 지내고 1560년 성주목사에 임명되어 4년을 재임하다가 1563년 봄에 병으로 사직하고 돌아오는 도중 예천에서 졸하였다 신녕현감으로 있을 때 기민을 잘 진휼(賑恤)해 소생하게 하였으며 또한 전임관(前任官)의 부채를 절약과 긴축으로 보충하고 부채문권(負債文券)은 태워버린 일도 있었으며 학교와 교육진흥에도 힘을 기울여 문묘(文廟)를 수축하고 백학서원(白鶴書院)을 창설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는 경내의 피폐상을 상소해 20여 종의 공물을 10년간 감하는 특은(特恩)을 받기도 하였으며 벽지에 있던 향교를 군내에 옮겨 세우고 이 지방의 출신으로서 학행이 뛰어난 인물들을 문묘 서편에 따로 사우(祠宇)를 마련해 제사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성주목사로 나아가서도 영봉서원(迎鳳書院) 문묘를 증수하고 그리고 공곡서당(孔谷書堂) 녹봉정사(鹿峰精舍) 등의 건립을 추진하였으며 그리고 이 지방의 학자 오건(吳健)을 교관(敎官)으로 삼는 등 교육진흥에 힘써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고 우애가 돈독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청빈한 생활을 하였으며 자식이 없어 아우 수량(遂良)의 아들로 양자를 삼았다 풍기의 욱양서원(郁陽書院) 신녕의 백학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금계집(錦溪集)이 있다

학문이나 정신 기술 따위를 배워 익히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다 라는 오늘의 성어 연마췌탁(硏磨揣度)의 발췌문을 읽으면서 옛사람과 오늘 날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걸 느끼니 사람으로 태어나 많은 경험과 학식을 두루 쌓고 연마해 나가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다 잘 알고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는 인내력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니 도달하는 시점 또한 다 제 각각이 되는 것도 모두 잘 안다 그렇지만 연마췌탁(硏磨揣度)하는 정신은 늘 가지고 실현해 나가야 자신의 발전이 미래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믿으며 연마췌탁(硏磨揣度)을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경자)년 12월 7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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