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융회관통 融會貫通

백운선사 김대현 2021. 1. 25. 11:26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융회관통 融會貫通

화할 융모일 회꿸 관통할 통

 

자세하게 이해하고 여러 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하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1513~1577)선생의 시문집인 미암선생집(眉巖先生集) 권륙(卷六)일기(日記)에 무진하(戊辰下)에서 발췌하다

 

政院啓曰 정원계왈

玉堂論語四冊進講畢 옥당론어사책진강필

故啓請限今月晦日 勿御朝晝講 熟讀此四卷 고계청한금월회일 물어조주강 숙독차사권

其意甚當 但晦日尙遠 기의심당 단회일상원

其前全輟朝講 則接待大臣臺諫之禮 기전전철조강 즉접대대신대간지례

似乎太曠 亦爲未安 사호태광 역위미안

臣等之意 只停晝講 신등지의 지정주강

間間御朝講 以接待大臣臺諫 何如 간간어조강 이접대대신대간 하여

講書不熟 강서불숙

必不能探究義理 融會貫通 필불능탐구의리 융회관통

得聖賢立言之旨 득성현립언지지

而竟歸於汗漫 連熟讀 固不可廢矣 이경귀어한만 련숙독 고불가폐의

若久不聞耆碩 規警之言 諍臣讜直之論 약구불문기석 규경지언 쟁신당직지론

又無以開發睿思 裨益聰明 우무이개발예사 비익총명

而有妨於聖德之日進 이유방어성덕지일진

所欠者亦豈少哉 소흠자역기소재

且雖御朝講 不必逐日常御 차수어조강 불필축일상어

則新講不多 而自不害於熟讀矣 즉신강불다 이자불해어숙독의

臣等所見如是 故敢啓 신등소견여시 고감계

傳曰 啓意甚當 如啓 전왈 계의심당 여계

 

승정원에서 아뢰기를

궁중 옥당에서 논어 4권의 강론을 마쳤으니

그러므로 이달 그믐까지 조강과 주강을 하지 말고 이 4권을 숙독할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 뜻은 매우 마땅하지만 다만 그믐이 아직 멀었는데

그 전에 조강을 모두 폐한다면 즉 대신과 대간을 대하는 예가

너무 심한 것 같아 매우 미안합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다만 주강을 그만 쉬고

간간이 조강을 열어 대신과 대간을 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경서 강의하기를 익숙하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의리를 탐구하고 자세하게 이해하고 여러 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 할 수 없으며

성현이 확립한 말의 뜻을 터득하더라도

마침내 탐탁하지 않게 등한히 하게 될 것이니 숙독하는 일을 오로지 폐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오랫동안 노련한 석학들의 경계한 말과 신하의 곧은 논의를 듣지 않으시면

또한 지혜를 계발하고 총명함에 도움이 되는 일이 없게 되어

성덕을 날로 진전시키는 데에 방해가 있을 것이며

흠되는 바가 또한 어찌 적겠습니까

또 비록 조강을 열더라도 반드시 드디어 날마다 열지 않으신다면

즉 새로이 강의한 것이 많지 않아서 저절로 숙독하는 데에 해롭지 않을 것입니다

신 등의 소견이 이와 같으므로 그러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자

전교하기를 아뢴 뜻이 매우 마땅하오 아뢴 대로 하시오 라고 하였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 류희춘(眉巖 柳希春1513~1577)선생이 승정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일기형태로 남긴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미암선생은 본관은 선산 자는 인중(仁仲) 해남 출신 아버지는 유계린(柳桂鄰)이고 어머니는 사간 최보(崔溥)의 딸이며 김안국(金安國) 최산두(崔山斗)의 문인이며 153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544(중종 39) 사가독서(문흥을 위해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독서에 전념하도록 휴가를 주던 제도)한 뒤 수찬 정언 등을 역임하고 1547년 양재역(良才驛)의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곧 함경도 종성에 안치되어 그 곳에서 19년간을 보내면서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였을 때 이 때 국경 지방의 풍속에 글을 아는 사람이 적었는데 교육을 베풀어 글을 배우는 선비가 많아졌다 고 전하며 1565년 충청도 은진에 이배되었다가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삼정승의 상소로 석방된 후 직강 응교 교리 등을 거쳐 지제교를 겸임했으며 이어 장령 집의 사인 전한 대사성 부제학 전라도관찰사 등을 지냈으며 1575(선조 8) 예조 공조의 참판을 거쳐 이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해 낙향하였으며 경전에 널리 통했고 제자(諸子)와 역사에도 능하였으며 시강원설서 재임 시에 세자(후의 인종)의 학문을 도왔고 선조 초에는 경연관으로 경사(經史)를 강론하였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에 유희춘에게 배웠던 선조는 항상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희춘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고 하였으며 만년에는 왕명으로 경서(經書)의 구결언해(口訣諺解)에 참여해 대학을 완성하고 논어를 주해하다가 마치지 못한 채 생을 마쳤으며 성격이 소탈해 집안 살림을 할 줄 몰랐으나 사람들과 세상 이야기나 학문 정치하는 도리에 대한 투철한 소견과 해박한 지식은 남들이 도저히 생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고 전하며 외할아버지 최보(崔溥)의 학통을 계승해 이항(李恒) 김인후 등과 함께 호남 지방의 학풍 조성에 기여하였으며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담양의 의암서원 무장의 충현사 종성의 종산서원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미암일기 속몽구(續蒙求) 역대요록(歷代要錄) 속휘변(續諱辨) 천해록(川海錄) 헌근록(獻芹錄) 주자어류전해(朱子語類箋解) 시서석의(詩書釋義) 완심도(玩心圖)등이 있으며 편서로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이 있으며 시호는 문절(文節)공이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자세하게 이해하고 여러 가지 도리와 사리에 통달하다 라는 오늘의 성어 융회관통(融會貫通)의 발췌문을 읽으면서 어떤 위치에 있던 사람은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융회관통(融會貫通)을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경자)1213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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