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윤부여망 允孚轝望

백운선사 김대현 2021. 1. 27. 11:19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윤부여망 允孚轝望

진실로 윤미쁠(믿음성이 있음) 수레 여바랄 망

 

진실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다

 

이 성어는 고려 말기의 학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12871367)선생의 시문집인 익재란고(益齋亂稿) 권팔(卷八)에 황태자의 봉책을 축하하는 표(皇太子封冊賀表)에서 발췌하다

 

起居 기거

昔陪京輦 與霑行葦之恩 석배경련 여점행위지은

今守海藩 願獻蟠桃之算 금수해번 원헌반도지산

 

賀表 하표

體元當宁 開萬世之丕圖 체원당저 개만세지비도

立長承祧 述百王之盛典 립장승조 술백왕지성전

德音覃被 瑞應孔彰云云 덕음담피 서응공창운운

以乾健而簡臨 得離明之善繼 이건건이간림 득리명지선계

嚴尊師重傅之禮 夙著令聞 엄존사중부지례 숙저령문

委監國撫軍之權 允孚轝望 위감국무군지권 윤부여망

玆蓋宗社垂祉 天人協謀 자개종사수지 천인협모

用啓祜於宸衷 爰固寧其邦本 용계호어신충 원고녕기방본

因推廣愛之理 更布好生之仁 인추광애지리 경포호생지인

擧四海莫不歡欣 顧三韓尤爲慶幸 거사해막불환흔 고삼한우위경행

伏念臣曾荷金門之通籍 복념신증하금문지통적

久叨銅禁之侍書 구도동금지시서

奉日鳧趨 恨未參於嘉會 봉일부추 한미참어가회

聆風燕賀 誠有倍於恒流 령풍연하 성유배어항류

 

일상생활

옛날에 도성에 있을 때에 어른을 모시는 풍습의 은혜에 젖었었고

지금은 바닷가의 황해도를 지키며 원컨대 삼천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의 수()를 드립니다

 

축하 글

하늘의 뜻을 본받아 천자의 자리에서 만세의 크나 큰 계책을 여시고

장자를 세워 조묘(종묘)를 잇게 하니 백왕의 성대한 법전을 계술하였으며

덕음을 두루 입히고 미치어 황제의 베품이 하늘의 감응조짐이 훤히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황제의 굳건함으로 간략히 임하시고 잘 계승되어 분명한 밝음을 얻었으며

스승을 높여 중히 여기는 예를 엄하게 전하여 일찍부터 훌륭한 명성이 드러나

나랏일을 감독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권한을 위임하니 진실로 여럿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합니다

이는 대개 종묘사직에 하늘에서 내린 복이 드리워 하늘의 사람들이 꾀를 함께 모아

황제의 마음을 도와 알림에 쓰이고 이에 나라의 근본이 굳고 편안해 집니다

인하여 사랑하는 도리로 널리 밀고나아가 다시 살기 좋은 어진 인을 베푸시나니

온 사해가 기뻐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돌아보니 더욱 삼한의 경사스럽고 다행한 일이 됩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신은 일찍이 대궐 문 출입증에 이름을 올렸고

오래도록 조정에서 임금을 모시고 글을 강의하였는데

황제를 받들고 기뻐 쫒았지만 아름다운 연회에 참여치 못하여 한입니다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을 풍문으로 들으니 정성이 늘 하던 때보다 배가 됩니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고려 말기의 학자 익재 이제현(益齋 李齊賢12871367)선생의 문집에 황태자의 봉책을 축하하는 글(皇太子封冊賀表)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익재선생은 1301년 성균시에 1등 합격하고 과거에 연이어 합격하고 관직벼슬길에 오르면서 1314년 충선왕 때 원나라 연경에 만권당에서 유학 생활 중 유명한 한족 문인들과 교우하고 학문의 견문을 넓혔으며 1318년에는 충선왕이 절강성의 보타사에 행차할 때 시종하고 1323년 유배된 충선왕을 만나기 위해 감숙성의 타마사까지 다녀왔으며 이후 충선왕의 유배로 원나라 생활이 끝나고 충선왕의 방환운동도 벌여서 입성책동도 막아 내고 충선왕의 거처도 티베트에서 타마사로 옮기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1339년 충혜왕이 조적의 난으로 인해 원나라에 붙잡혀 갈 때 다시 복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이때의 활동으로 인해 두문불출하게 되었고 이 기간에 유명한 역옹패설을 저술하였으며 1344년 충목왕이 즉위하고 판삼사사에 임명되면서 다시금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여러 개혁안을 제시하였으며 충목왕 사후 원나라에 있던 왕기를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1351년 원나라 순제에 의해 충정왕(忠定王)이 폐위되고 왕기가 고려 국왕 공민왕(恭愍王)으로 봉해지고 원나라에서 귀국길에 오른 공민왕은 그 사이의 정치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진사대부들의 수장격인 이제현을 섭정승 권단정동성사(攝政丞權斷征東省事)에 임명하고 1356년 기철을 숙청하는 반원운동이 벌어지자 문하시중이 되어서 사태를 수습하다가 이듬해에 치사하고 국정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홍건적의 침입으로 인해 개경이 함락 당하고 공민왕이 상주로 피난 갔을 때도 왕을 배알하고 호종하였는데 선생은 1367(공민왕 16) 세상을 떠났는데 사후 공민왕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고려 말기의 암울한 역사의 산 증인인 선생의 생애를 대략 찾아보았다 [나무위키 참조]

 

진실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윤부여망(允孚轝望)을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이 나라와 온 세계가 하루 빨리 코로나로부터 벗어나 일상생활로 돌아가길 바라는 간절한 기대에 부응하여 어서 빨리 더 확실한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어 이 난국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모두의 기대에 맞아 떨어져 준다면 그것이 곧 윤부여망이라 믿으며 발췌문은 고려 후기에 원나라에 굴복하여 황제직위를 원에 빼앗기고 원나라 임금을 황제로 모시는 서글픈 역사의 산 증거의 글이라 읽으면서도 오늘 날 우리의 환경과 너무나 흡사하여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서 빨리 남북이 하나 되어 저 광개토대왕이 삼성조께서 개국한 청구삼한의 땅을 찾으셨듯이 우리도 힘을 모아 필자 혼자만의 희망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램으로 윤부여망(允孚轝望)과 같이 부응하길 바라면서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7(경자)1214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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