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시설방략 施設方略

백운선사 김대현 2021. 2. 1. 17:06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시설방략 施設方略


베풀 시施 베풀 설設 모 방方 다스릴 략略

전반적인 계획과 책략을 차려놓고 베풀다

이 성어는 고려후기 문인 근재 안축(謹齋 安軸1282~1348)선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0년에 간행한 시문집 근재선생집(謹齋先生集) 권이(卷二)에 상주의 객관을 다시 짓고서 그에 부친 기문(尙州客館重營記)에서 발췌하다

夫治天下國家者 其猶作室 부치천하국가자 기유작실 
詩有稠繆牖戶之比 시유조무유호지비 
書有肯堂肯構之喩 서유긍당긍구지유 
公之坐廟堂 立陳經紀 공지좌묘당 립진경기 
施設方略 시설방략 
而再造王家 於斯可見 이재조왕가 어사가견
四年甲申 余自尙入參密直 사년갑신 여자상입참밀직 
公進拜都僉議贊成事 공진배도첨의찬성사 
明年 加左政丞 명년 가좌정승 
余亦再遷贊成事 日常攀附 여역재천찬성사 일상반부 
公謂余曰 尙之客館 공위여왈 상지객관 
余之所營 而子之所嘗見也 여지소영 이자지소상견야 
竊欲記其事 以傳於後 子其識之 절욕기기사 이전어후 자기식지 
余文學荒拙 不足以形容盛美 여문학황졸 불족이형용성미 
然重違嚴命 연중위엄명 
略記所聞於邑人者 寄書于館之東軒云 략기소문어읍인자 기서우관지동헌운

대개 천하의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시경에는 비 오기 전에 창호를 단단히 얽어매다 라는 비유가 있고 
서경에는 집의 터를 단단히 구축하여 집도 지어야 하지않겠는가 라는 비유도 있다
공이 묘당에 앉아 나라의 법도를 세우고 
전반적인 계획과 책략을 차려놓고 베풀어서
왕가를 다시 번성하게 한 것을 가히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원 지정 4년 갑신년(고려 충혜왕 복위5년 1344)에 나는 상주 목사에서 밀직으로 들어왔고 
공은 도첨의찬성사로 진급하여 관직에 배수되고 
다음해에 좌정승이 되었다 
나 역시 다시 찬성사로 옮겨서 늘 일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공이 나에게 말하길 “상주의 객관은 
내가 경영한 것으로 그대가 일찍이 보았을 것입니다 
몰래 그 일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하오니 그대가 그것을 알고 있으니 기록해주십시요.“
나는 글재주가 황량하고 졸렬해서 성대한 아름다움을 형용함에 부족하지만 
그러나 엄한 명을 어기기가 어렵기에 
고을 사람에게 들은 바를 간략하게 기록하여 객관의 동헌에 써서 붙이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고려후기 문인 근재 안축(謹齋 安軸1282~1348)선생이 상주 목사로 부임하고 난후 아마 전임 온재 김영후 (穩齋 金永煦1292~1361)선생으로부터 상주객관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쓴 상주의 객관을 다시 짓고서 그에 부친 기문(尙州客館重營記)인데 그 일부를 발췌하여 소개를 한 것이다 

근재 안축선생이 찬사한 온재 김영후선생은 근재선생보다는 나이는 열 살 아래지만 아마 벼슬은 더 높은 것으로 보이며 본관이 안동인데 안동을 본관으로 쓰는 김씨는 신라 경순왕 후손 김방경선생의 자손 구안동김씨와 고려개국공신 김선평선생의 자손인 신안동김씨 두 집안이 있는데 같은 혈연의 관계가 아니다 참고로 필자는 고려개국공신 김선평선생의 후손이다
  
온재 김영후선생은 신라 경순왕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방경(金方慶) 아버지는 중대광 상락군 판삼사사 김순(金恂)이고 고려 충숙왕 12년(1325) 7월 산원(散員) 장세(張世)가 소윤(少尹) 임준경(林俊卿)의 말을 빼앗은 일이 있었는데 지평으로서 장령 김원식(金元軾)과 함께 총신의 비호를 물리치고 치죄를 청하였으며 충숙왕 복위 8년(1339) 4월 삼사우윤으로 원나라에 가서 불화를 가져오고 또한 충혜왕이 자신을 헐뜯던 신청(申靑)을 이문소에 가두고 죄상을 행성에서 기록해 중서성에 올릴 때도 원나라에 갔으며 충혜왕 복위 2년(1341) 6월 조적(曺頔)의 난으로 왕이 원도(元都)에 갔을 때에 간신들이 변란을 꾸몄으나 왕을 시종한 공으로 삼사우사로서 일등공신에 봉해지고 전(田) 100결과 노비 10구를 받았으며 이듬해에는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모반에 참가하지 않고 원나라에서 충혜왕을 시종한 공으로 추성보절동덕익찬공신의 호를 받았으며 1343년 11월 원나라의 자정원사 고용보(高龍普) 등이 충혜왕을 잡아갈 때에 시종한 백관들이 모두 도망갔으나 끝까지 남아 있다가 창에 맞기도 하였으며 충목왕 즉위년(1344) 10월 찬성사가 되고 1345년 정월 정방이 부활하였을 때 찬성사로서 제조관이 되었으며 12월 좌정승으로 원나라에 방물을 공여하고 우정승에 승진되고 1346년 5월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공민왕 1년(1352) 8월 복창부원군에 봉해지고 서연에 입시해 변정도감을 파할 것을 주장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병을 칭탁하고 조정에 나가지 않았으며 1356년 원나라에서 왕에게 친인보의선력봉국창혜정원이라는 공신호를 내린 것에 사은하기 위해 원나라에 갔다온 뒤 상락후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정간(貞簡)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참조]

전반적인 계획과 책략을 차려놓고 베풀다 라는 오늘의 성어 시설방략(施設方略)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은 한자가 가진 뜻의 묘미는 알면 알수록 더 오묘하니 우리 선현들이 머리를 싸매고 일평생 학습에 전념해서 그 뜻만 쫒는데도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이 한자를 다 꿰뚫고 새로운 학문을 설파하셨던 선현들의 두뇌는 현대의 인공지능컴퓨터보다도 더 뛰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며 시설이 베품이란 걸 이제 알았으니 필자의 우둔한 머리가 한스럽지만 이것도 다 필자소관이니 붓 들고 시설방략(施設方略)을 휘호하고 백운필담에 담아놓는다

桓紀 9217(경자)년 12월 20일 아침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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