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훈유경별 薰蕕竟別

백운선사 김대현 2021. 2. 8. 16:12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훈유경별 薰蕕竟別

향풀 훈누린내풀 유다할 경나눌 별

 

향기 나는 향초와 누린내 나는 악초는 함께 있을 수가 없다

 

이 성어는 조선 중기 택당 이식(澤堂 李植1584~1647)선생의 문집인 택당선생별집(澤堂先生別集)권구(卷九)에 능해군초당구공의 행장(綾海君草塘具公行狀)에서 발췌하다

 

然公絶不以文翰自任 寡與人酬唱 연공절불이문한자임 과여인수창

常謂世人掇拾小文藻 상위세인철습소문조

徒以爲災木計 干人何事 도이위재목계 간인하사

惟用誄詞贐章以應俗足矣 유용뢰사신장이응속족의

由是平生所置詞稿甚略 유시평생소치사고심략

始公數被籍躪 시공수피적린

雖儕友 亦以公爲疏戇壞事 수제우 역이공위소당괴사

視爲棄人 漸與之絶 시위기인 점여지절

及廢朝政昏 姦兇林立 급폐조정혼 간흉림립

一時名輩 以才望見容 일시명배 이재망견용

薰蕕竟別 竄貶殆盡 훈유경별 찬폄태진

至若前後翕赩 務以齮齕公者 지약전후흡혁 무이기흘공자

莫不名陷擣扤 막불명함도올

反正之後 次第訖于顯誅 반정지후 차제흘우현주

而公以早廢之故 卒爲完人 이공이조폐지고 졸위완인

持爵位以沒 其所樹立 皆關國家大體 지작위이몰 기소수립 개관국가대체

可傳於後世者 豈所謂不可及者耶 가전어후세자 기소위불가급자야

然此豈公智慮所炳 연차기공지려소병

亦惟正以竢之而其效如是矣 역유정이사지이기효여시의

 

그러나 공은 결코 문장으로 스스로 맡지 않았으며 사람들과 시를 함께 읊는 일도 드물었다

항상 말하길 세상 사람들은 글 짓는 작은 재주로 어휘들을 끌어 모아

그들은 나무를 깎아 내는 계책만을 일삼는데 이것이 사람에게 무슨 의미 있는 일이겠는가

생각건대 추도사나 전별사를 지을 줄 알면 세상에 응당히 충분하다 하였으니

이렇기 때문에 평생토록 지어 놓은 원고도 매우 간략하였다

처음에 공은 수차례에 짓밟히고 당하였으며

하물며 함께 어울리던 벗들도 역시 공이 데면데면하고 어리석어 일을 망치게 한다고 여기고

버린 사람같이 보며 점점 그들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광해군의 폭정에 이르러 정사가 혼미하자 간악한 흉도들이 수풀처럼 일어서는데

한 시대의 명류동배들이 재질과 명망으로서 용납되기도 하였으나

향기 나는 풀과 누린내 나는 풀이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거의 모두 조정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 같은 전후에 이르러 시퍼런 기세를 떨치며 공을 시기하며 미워하던 자들도

악인 도올의 이름을 면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반정 뒤에는 이에 차례로 공개 처형에 이르게 되었다

공은 일찍이 조정을 그만두고 나왔던 고로 끝까지 온전한 사람이 되었으며

작위도 모두 지닌 채 세상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 우뚝 세웠던 바가 모두가 국가의 큰 기둥과 관련됨으로서

가히 후세에 전해질만한 것으로 어찌 이른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것이 어찌 공이 슬기로운 생각으로 환히 비춰 보고 그렇게 하였겠는가

이 역시 오직 정의를 기다림으로서 이와 같은 본받을 만한 결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 중기 택당 이식(澤堂 李植1584~1647)선생이 초당 구성(草塘 具宬1558~1618)선생의 행장을 찬한 능해군초당구공행장(綾海君草塘具公行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초당 구성선생은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원유(元裕) 아버지는 좌찬성 구사맹(具思孟)이며 어머니는 증 영의정 신화국(申華國)의 딸이고 인헌왕후의 오라비이며 선조 18(1585)에 사마시를 거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가 되고 곧 박사로 올랐으며 1589년 승정원주서(承文院注書)로 천거되었으나 종형 구면이 한림(翰林)에 있어 상피(친족이나 서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는 같은 곳에서 벼슬하는 것을 피함)로 임명되지 못하였으며 그 후 예조좌랑지제교(知製敎)를 거쳐 정언(正言)으로 있을 때 기축옥사에 연루된 최영경(崔永慶)의 공초(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한 말)에 착오가 있어 파직되었다가 얼마 뒤에 병조좌랑으로 복직하고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병조정랑을 지냈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임금을 호위해 개성에 이르러 변란의 책임이 이산해(李山海)에게 있다고 주장하다가 대간의 탄핵을 받았고 이 일로 인해 이산해는 평해에 유배되었으며 시강원문학 지평(持平)을 거쳐 응교(應敎) 집의(執義) 사간 필선(弼善)을 역임하고 1593년에 동부승지 좌부승지 첨지중추부사를 거쳐서 1594년 형조참의 병조참의를 역임하고 1596년 호조참판으로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연경(燕京)에 다녀온 뒤 장례원판결사 해주목사를 지냈으며 1601년 대사성으로 승진했으나 사양하였으나 1602년에 정인홍(鄭仁弘) 등이 기축옥사 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홍주로 유배되었다가 1604년 아버지상을 당해 석방되어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 되었으며 그러나 이 때 대간의 심한 탄핵이 있을 때 1618년에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병으로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를 처벌하자는 대간의 논의가 있었으나 마침 병으로 죽었으며 인조반정으로 영의정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숙(忠肅)공이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향기 나는 향초와 누린내 나는 악초는 함께 있을 수가 없다 라는 의미인 오늘의 성어 훈유경별(薰蕕竟別)의 훈유(薰蕕) 즉 향초와 악초는 세상사 어디에든 늘 함께하기 싫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섞이게 되고 함께 자라는 것이 자연적 현상이라지만 명석한 두뇌와 지혜를 가진 우리 인간사에서도 향기 나는 향초 훈()만이 존재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인지 아니면 신의 장난인지 누린내 나는 악초 유()와 같은 인간도 세상사에 예나 지금이나 더러 존재하고 있으니 이 세상 인간사가 늘 시끄러운 것인가 보다 생각하며 훈유경별(薰蕕竟別)을 휘호하고 그래도 아름다운 고운 향내가 나는 세상을 꿈꾸며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는다

 

桓紀 9217(경자)1227일 저녁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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