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선사 김대현의 세계/백운선사의 서예세계

[成語文集 白雲筆談] 휘음공창 徽音孔彰

백운선사 김대현 2021. 2. 12. 15:30

백운선사 김대현이 붓으로 풀어가는 주머니 속 성어이야기[成語文集 白雲筆談]

 

휘음공창 徽音孔彰

아름다울 휘소리 음클 공밝을 창

 

아름다운 풍문이 크게 빛나다 또는 아름다운 덕행의 소리가 크게 떨치다

 

이 성어는 조선말기 사간원정언 교리 중학교수 등을 역임한 학자이며 독립운동가였던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선생의 시문집인 향산문집(響山文集) 별집권사(別集卷四)에 봉사이공성승 묘안석고유문 본손을 대신하여 지음(奉事李公誠承墓安石告由文 代本孫作)에서 발췌하다

 

孝節名胄 內正賢庭 효절명주 내정현정

世厥勤學 抑抑典型 세궐근학 억억전형

冲挹其德 淸雅其風 충읍기덕 청아기풍

良玉雖韞 陰鶴自通 량옥수온 음학자통

帝謂東藩 乃父恩功 제위동번 내부은공

爰畀任子 盛代瞻聆 원비임자 성대첨령

欲報皇春 萬世堯蓂 욕보황춘 만세요명

民皆仁壽 我又希齡 민개인수 아우희령

有隕拕緋 榮於紆靑 유운타비 영어우청

乃續九老 龍山草香 내속구로 룡산초향

乃修愛日 漁辭載揚 내수애일 어사재양

是曰孝思 于前有光 시왈효사 우전유광

有德必配 忠定家娘 유덕필배 충정가낭

惟視襟鞶 惟勤酒醬 유시금반 유근주장

封爲命婦 徽音孔彰 봉위명부 휘음공창

粤昔國師 爲考奉令 월석국사 위고봉령

靈芝餘地 幼未省聽 령지여지 유미성청

竟躍雙劒 其眞其寧 경약쌍검 기진기녕

雲孱孑孑 未卽表銘 운잔혈혈 미즉표명

乃劂杏巖 先芬熒熒 내궐행암 선분형형

 

효와 절개의 이름 있는 집안의 주손으로 안으로는 현명하게 가정을 바로잡고

세세대대로 그 학문을 부지런히 닦아 삼가하고 조심하는 본질적인 전형이요

그 덕은 나아가고 물러남에 겸양하며 그 풍모는 티가 없이 맑고 아름답다네

좋고 아름다운 옥은 아무리 감추어도 깊은 산속 골짝의 학은 저절로 통하나니

황제께서 조선의 들녘이 휘황찬란함은 이에 그대 부친의 은혜와 공덕이라 하고

이에 자손에게 벼슬을 베풀어 주시어 태평성대에 뭇 백성들이 부럽게 보고 듣네

봄 볕 같은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만세 대대로 요순시대처럼 평화롭길 바라니

백성들은 모두 다 어질고 장수하며 나 자신 또한 드물게도 나이 일흔이 되었나니

붉은 비단 의복관대 내려 받았으니 자주 청색인 끈 관복보다 더욱 더 큰 영광이라

이에 원로들의 모임인 구로회를 이어 여니 물 맑고 시선한 용산의 풀 향기롭도다

이윽고 이 아름다운 터전에 애일당 지었으니 굴원의 어부사 노래 드높게 휘날리며

이것을 말로하면 효도하고 사모함이니 예전 앞 시대보다 더욱 더 빛이 있었도다

덕이 있으면 반드시 배필이 있으므로 변함없는 충성의 충정공 집안의 규수였네

오직 시부모도 부모같이 대하라는 금반을 보며 오로지 술과 장을 정성껏 빚었나니

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아 명부에 봉해져 아름다운 풍문의 소리 더욱 크게 빛이 나고

오호라 옛날에 덕망이 높은 국사께서 선친을 위해 묘지를 쓰라는 령을 주셨다던

불로초가 자라는 영지 산의 남아있는 명당자리를 너무 어려서 제대로 듣지 못하고

마침내 용천 태아 전설처럼 쌍검이 만나 합장하니 그 진실로 그것이 편안하리로다

드높은 산세의 구름처럼 혈혈단신 후손이라 묘표와 묘비명을 세우지를 못했지만

이에 행암촌에 행암대에 행암공에 새기니 선조의 향기로운 업적 찬란하게 빛나네

 

이 성어의 발췌문은 조선말기 문신이고 학자이며 독립운동가였던 향산 이만도선생이 봉사이공성승묘안석고유문을 본 손을 대신하여 찬한 글에서 발췌를 하였는데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선생은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관필(觀必) 경상북도 예안 출신이며 고종 3(1866) 정시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다가 병조좌랑에 제수되고 이어 사간원정언에 임명되고 홍문관부수찬으로서 남학교수를 겸임하고 또한 대신으로서 선전관을 겸하기도 하였으며 이 후 부교리 장령 지평 우통례 병조정랑 충청장시도사 교리 응교 사간 집의 중학교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명성이 높았으며 또한 시강 및 빈대 때에 이만도가 상주하는 말을 고종이 모두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하며 1876년 일본대사 구로다(黑田淸隆)가 와서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 최익현(崔益鉉)이 반대 상소를 올리자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한목소리로 공격을 하였는데 그 때 집의로서 탄핵문의 문구가 사리에 맞지 않다고 없앴다가 대사헌의 미움을 받아 집의직을 삭탈당하였으며 그 뒤 다시 복직되고 사성 응교 장악정 등을 역임하고 그 해 가을 양산군수에 제수되어 굶주리는 백성을 보살피고 탐관오리를 소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1878년 다시 집의에 임명되어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요직을 역임하고 1882년 통정대부에 올라 곧 공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사임하고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벼슬길을 단념 동부승지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고 그 뒤 백동에 작은 서재를 지어 놓고 경서를 연구하며 날을 보내다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예안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05년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매국죄를 통렬하게 공박하는 소를 올렸으며 1907년 순종이 즉위한 뒤 가선대부에 1910년 자헌대부에 승자되었으며 그 해 8월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이 병탄되자 유서를 지어 남긴 뒤 단식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조]

 

아름다운 풍문이 크게 빛나다 또는 아름다운 덕행의 소리가 크게 떨치다 라는 의미인 휘음공창(徽音孔彰)의 성어를 신축년 설날에 코로나로 인해 집안 세배도 다니지 못한 관계로 인하여 우연찮게 접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것만이 휘음공창(徽音孔彰)을 풀이하는 자세가 되리라 생각하며 성어문집 백운필담에 담고 휘호로 남긴다

 

桓紀 9218(신축)11일 설날 오후에 白雲仙士 金大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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